[재래시장 탐방] 잠실 새마을 전통시장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잠실 새마을 전통시장은 과거 잠실주공아파트 단지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엘스, 리센츠, 트리지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 단지들이다. 이 아파트 단지가 과거 잠실주공아파트들이 재건축되어 새 이름을 부여받은 지도 벌써 15년이 지났다. 시장과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잠실새내역. 과거에는 ‘신천역(新川驛)’이라 불리었던 곳이다. 신천이란 한자로 ‘새로운 개울’이라는 뜻이다. 새내는 신천을 순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아파트도, 지하철역 명도 바뀌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변치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잠실의 명물 ‘새마을 전통시장’이다. 잠실 롯데월드를 지나 한참 걸어가다 트리지움 아파트가 나오면 시장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사거리를 지나 더 걸어가다 보면 새마을 시장 공영 주차장 표지가 나온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50여 년 역사에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좁은 2차선 도로를 아파트와 마주 보며 상권을 이루고 있는 새마을 전통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차장이었다. 오랜 역사 그 자리 그대로 지키고 있는 시장이다 보니 도로 확장 및 별도의 대지를 이용한 주차장이 없다는 점이 상권 활성화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곤 했다. 이면도로에 차량을 주차하는 노상주차장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수의 차량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4년 전 새마을 전통시장은 원활한 전통시장 및 주변 상권 활성화를 위해 기존의 노상 공영주차장 자리를 더욱 확대하면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그동안 새마을 시장은 공영주차장이 없어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어왔다. 공영주차장이 확장되면서 내방객들이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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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전통시장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새마을 시장은 네이밍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시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새마을’이라는 명칭 자체가 1970년대부터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사회 개발 운동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50년은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 무려 53년의 역사를 가진 시장이다. 주변 아파트들이 허물어지고 다시 새워지고 전철이 들어오고 새로운 전철명으로 또 바뀌어도 시장만큼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상점들이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변모하긴 했지만 새마을 시장만큼 과거 전통시장의 모습을 가진 시장도 드물 것이다.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분주해지는 모습을 보니 시장이 가까워진다는 증거다. 시장 인근부터 재래시장임을 알리는 전통 먹거리 판매가 보인다. 남해와 완도에서 직접 공수한 원초를 들기름과 참기름으로 숙성한 후 당일 직접 만든 순두부와 콩국수를 판매한다는 문구에 입맛이 돈다. 생과일과 채소를 해산물과 함께 갈아서 만든 소스에 버무린 순살 닭강정에도 마음이 쏠린다. 원재료는 닭뿐만 아니라 새우도 사용한다. 그렇게 새우 강정도 만든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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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니 꽃들이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 쏟아진 붉고 노란 꽃과 파릇한 화분들이 오가는 손님들에게 봄을 사가라 손짓하는 듯하다. 그러다 한가득 꽃과 화분 사이로 ‘금이빨 삽니다’라는 직사각형의 팻말이 생뚱맞게 나와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한번 피식 웃으며 쳐다보게 된다. 국내산 소꼬리와 우설도 가판대에 나왔다. 9만 9천원부터 시작이다. 저녁에는 제육불고기를 생각하는 주부가 고기를 썰어달라 청한다. 사장은 익숙하고 경쾌한 손놀림으로 즉석에서 바로 고기를 손질해 건네준다.

이제 육중한 잠실 새마을 전통시장을 알리는 아치문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잿빛 레고를 층층이 쌓아 올린 것 같은 시장의 대문이 인상적이다. 봄이 오니 새 옷 한 벌 마련하고 싶은 주민들이 가벼워 보이는 상의를 고른다. 어떤 색깔이 좋은지 상점 주인에게도 물어본다. 주인은 두 번째 옷을 가리키며 추천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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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에 없는 이들의 음악이 울러 퍼지면

옷가게와 약국을 지나치면 본격적인 시장 나들이가 시작된다. 듬성듬성 먹기 좋게 잘린 족발이 둥근 은빛 알루미늄 쟁반에 놓여있다. 주인은 돼지 족발을 삶아 매대에 올려놓는다. 편안한 운동화에 움직이기 편안하게 크로스 가방이나 배낭을 멘 손님들이 지나가며 뜨끈한 족발이 나오는 광경을 구경한다. 두 중년 여성의 도란도란 나누는 담소와 함께 장보기는 계속된다. 은발의 멋쟁이 할머니도 유모차를 끌고 가며 시장보기에 여념이 없다. 유모차는 걷는 보조수단이자 장바구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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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활어회와 초밥을 판매하는 상인은 직접 매대로 나와 적극적으로 손님맞이에 나섰다. 광어, 우럭, 도미 등 펄떡거리는 생선들이 손님들에게 팔려간다. 이색 강정을 판매하는 가게도 있다. 직접 손으로 만든 수제 강정집이다. 수제 강정집이야 여느 곳에도 있지만 이곳은 좀 독특하다. 수제 강정이라는 간판 옆에는 ‘중앙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는 글과 함께 한 중년의 여성이 석사모를 쓴 커다란 증명사진이 간판에 붙어 있다. 어디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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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의 매력은 가판대에 나와 있는 싱싱한 농수산물을 구경하는 묘미에 있다. 전국 산지에서 직접 공수해온 농수산물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산지에 따라 같은 어종이어도 이름이 다르다. 제주에서 올라온 갈치는 ‘은갈치’, 목포에서 올라온 갈치는 ‘먹갈치’다. 상인은 둘 다 원양산에 비해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라 설명한다. 저녁 반찬으로는 뭐가 좋을까? 오늘은 남해안에 잡은 생물 대구와 포항에서 올라온 참가자미와 삼치의 물이 좋단다. 대구탕이나 가자미구이로 저녁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 여수산 생물 민어로 찜이나 탕을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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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의 또 다른 묘미는 방앗간을 구경하는 것이다. 최근 전통시장에서도 원산지 표시에 열심이다. 공주 햇밤, 보성 쪽파, 돌미나리, 달래, 냉이 등 전국에서 올라온 제철 식품들이 반갑다. 그런데 수입산이 부쩍 늘고 있다. 수산물이나 과일, 채소 등은 국내 산지에서 오는 상품이 많다. 축산물은 국산이 너무 비싸 수입산으로 많이 대체된 지 오래인데 이제는 농산물도 그런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에는 국산 제품을 찾기 조차 쉽지 않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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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숫가루, 들깻가루, 고춧가루, 깨, 참기름, 들기름 등 국산은 몇 종류 되지 않고 가격도 비싸다. 국산을 먹고 싶지만 지갑 사정에 반값 정도 하는 수입산으로 발길을 옮기기 마련이다. 국산 참기름은 350ml 한 병 당 3만 5천 원~4만 원에 육박하지만 중국산은 단돈 1만 원이니 고민을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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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구경을 하다 보니 출출하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분식집에서 조촐하게 떡볶이와 순대, 김밥, 어묵을 시켜 허기를 달래 본다. 그런데 오래된 명성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때 그 맛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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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시장을 구경하다 보니 인근 잠실새내역 번화가까지 흘러왔다. 시장은 잠실새내역 번화가와 바로 이어진다. 어둑해지는 시간, 취객들이 하나둘 마음에 드는 주점으로 향한다. 상권이 활기차게 움직였다. 코로나19 이전의 익숙했던 모습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촉촉하면서 진득한 블루스풍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게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다. 거리에서 음악을 들어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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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따라가 보니 셰프가 직접 운영한다는 ‘음악 분식점’이다. 떡볶이를 먹으며 원하는 음악을 신청할 수 있다. 내부를 보니 벽면 선반에 빼곡히 들어찬 LP판이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조명에 바와 빈 테이블들은 음악과 함께 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거친 외부 벽면에는 마이클 잭슨, 게리 모어, 김광석 등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위대한 사람들의 빛바랜 앨범이 걸려있다. 50여 년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에서 듣는 1970년대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오래된 시간만큼 농익은 음악이 있는 전통시장에서의 하루를 즐기고 싶다면 잠실 새마을 시장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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