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주말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동네 산책이나 해볼까 싶어 나선 길이었다. 아파트 재활용하는 곳을 지나려는데 멀쩡한 1인용 소파가 거기 놓여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이사 가며 버리고 간 모양이었다. 어디 하나 뜯어진 데도 없는 멀쩡한 걸 왜 버리고 갔나 싶어 한참을 요리조리 살펴보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활용 하는 데 있지, 거기로 지금 빨리 나와.”

잠시 뒤, 왜? 뭔데? 하는 표정으로 나타난 남편이 재활용 딱지가 붙은 소파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해라, 안 된다.”
“왜? 멀쩡한데 아깝잖아.”
“남이 버린 걸 뭐 하러 주워 와!”
“쓸 데가 있다고. 나 혼자 무거워서 못 들어.”
“맘대로 해, 난 절대 못 해!”

돌아서 들어가는 남편에게 말했다.

“좋은 말 할 때 (소파)들어라.”

25년 동안 함께 살며 누구보다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구가 쪼개져도 한다면 한다!’ 내 고집을 꺾으려 드는 순간 자기에게 닥칠 후폭풍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어째, 소파를 들어 옮길 수밖에.

낑낑거리며 소파를 들고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얼굴이 시뻘게 질만큼 짜증이 나있었다. 있는 물건을 버리는 것도 싫어하지만 없던 물건을 구태여 집에 들이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걸 알면서도 기어이 1인용 소파를 집으로 끌어들인 건 사실 고양이들 때문이었다. 우리집에는 골드리트리버와 진돗개, 그러니까 등치가 산만한 개 두 마리가 산다. 거실 소파는 그놈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고양이들은 눈치를 보며 피해 다니는 형편이다. 그래서 안방에다 1인용 소파를 들여놓고 거기에라도 맘 편히 앉아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소파를 들고 들어와 깨끗이 닦아놓고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이건 내가 써야겠다!’

개고양이가 집안을 다 차지하고 앉아있으니 이 한 몸, 어디 맘 놓고 앉아 쉴 데가 없다.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쓸 내 공간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1인용 소파 하나쯤은 가져야겠다 싶었다. 폭신한 소파에 앉아 개고양이들을 불러모아놓고 말했다.

“이 소파는 엄마 거다. 물어뜯거나 훼손하면 D진다!!”

잡지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나한테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옷을 참 젊게 입고 다니시는 거 같아요~~!”

내가 평소에 출근할 때 입는 옷이, 중고등학교 때 아들 두 놈이 입던 거니 젊을 수밖에. 유행에 민감한 아이들은 옷도 신발도 수시로 바꿨다. 누군가 이사 가며 버리고 간 소파처럼, 어디 하나 뜯어지거나 닳지도 않은 멀쩡한 것들이었다. 청바지는 수선하는 비용이 아까워 아랫단을 접어 입었고 내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은 끈을 꽉 묶어 발만 빠지지 않게 해서 신었다. 후드티나 잠바는 품이 넉넉해 가을 겨울에 입기 편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 쇼핑하는 게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름다운 가게' 단골이다. 누가 봐도 멀쩡한 옷이며 신발이 만원 한 장이면 몇 개씩 골라올 수 있었다. 가끔은 천원 2천원짜리 책도 거기서 사왔다. 지구에 맨날맨날 물건들이 버려져 산처럼 쌓이는데도 끊임없이 새로운 옷과 가구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생각하면 쓸데없이 뭔가를 새로 사고 싶지 않았다. 지구를 위해 환경을 살리자고 캠페인을 벌리고 아무리 떠들어 봤자 실천하지 않는 대의는 별 의미가 없다. 에코백도 여기저기서 지나치게 만들어 뿌려대는 바람에 오히려 애물단지가 돼버린 것처럼.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한 뜻을 품고 재활용품을 쓰자는 건 아니다. 돈이 많다면 나 역시 이것저것 사고 바꾸고 쇼핑하는 재미에 빠져 살았을 지도 모른다. 월급 45만원으로 시작된 결혼 생활은 언제나 마이너스였다. 아이들에게 예쁜 옷도 척척 사주고 때깔 나는 가구로 집도 꾸미고 싶었지만 현실은 카드값 돌려막기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싸고 실용적인 것을 찾아 쓰는 눈을 갖게 된 것 뿐이다.

하물며 남편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고 원자력 발전소 폐기를 주장하며 지구 환경을 살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버려진 물건을 괄시하고 집에 들이지 않으려 하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그래서 결국 소파를 똭~~!!

기어이 들여놓은 소파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지 계속 툴툴거리며 못마땅해 하는 남편에게 목소리를 깔고 한 마디 해줬다.

“환경운동, 말로만 하는 거 아니다.”

사람도 물건도 어디에선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그걸 해내며 사는 게 결국 존재의 이유가 된다. 버려진다고 쓸모없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에겐 꽤 쓸모 있는 1인용 소파가 새로 생겼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