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박석무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박석무] 오는 4월 7일은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지 187주년의 기일(忌日)입니다. 세상은 썩어문드러졌다〔腐爛〕면서, 그대로 두고 있다가는 반드시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라는 탄식을 멈추지 못하고 살으셨던 74년의 평생을 그날 마감하셨습니다. 요즘도 나라는 위태롭기 그지없는 시절입니다. 검찰독재가 기승을 부리고, 북핵 위기는 고조되고, 친일파들의 득세로 일본의 과거 악행은 모두 묻히고 독도까지 자기네 땅이라 우겨대는 이런 엄중한 시기, 이런 상황에서 선생의 기일을 맞고 보니 더욱 선생에 대한 그리움과 사모의 정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우리 다산연구소는 출범한 2004년 다음해인 2005년부터 선생의 기일에는 언제나 묘제를 봉행했습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3년간은 약식으로 봉행했는데, 이제 조금 풀린 금년에는 과거처럼 전통 제례의식대로 묘제를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미풍양속의 아름다운 전통 예법이 모두 사라져가는 오늘, 우리는 조선의 전통과 예의(禮儀)에 그렇게 밝았던 다산선생 묘제만은 부끄럽지 않게 전통적 예의를 그대로 살려 봉행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그렇게 해오고 있었습니다. 완전무결한 의식이야 제대로 복원해내기 어렵지만 큰 틀에서는 별다른 차이 없이 전통적인 예법을 따르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묘제(墓祭)란 묘소에서 올리는 제사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선조의 묘소에 후손들이 모여서 지내는 제사이지만, 특별한 경우 후손이 아닌 타인들이, 존경과 숭모의 정을 잊지 못해 그리움과 사모의 마음을 바치기 위해 올리는 제사의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올리는 다산선생의 묘제는 바로 특별한 경우의 제사로, 후손이 아닌 타인들이 모여서 올리는 제사입니다. 조선 최고의 학자?실학자?경세가로서 만인의 숭앙을 받는 분이자, 세상이 어지럽고 나라가 시끄러운 때 언제나 생각하는 재상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에  뵙고 싶은 현인이어서, 우리는 묘소를 찾아가 제사를 올리며 나라를 위해 선생께서 밖으로 나오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묘제를 올립니다.    

음력으로 1836년 2월 22일, 그날은 선생이 홍씨부인과 결혼식을 올린 60주년을 맞는 날로, 일가?친척?제자들까지 모여 회혼례(回婚禮)를 올리려고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식을 거행하기 직전 8~9시경 다산선생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선생은 그 무렵 노병이 깊어져 신음하셨는데, 운명하기 3일전인 19일, 약간의 정신과 기운이 조금 돌아오자,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제목하여 「회근시(回?詩)」, 결혼 60주년을 맞는 기념시라는 뜻이었습니다. 

  육십년 풍상의 세월 눈 깜빡할 사이 흘러가

  복사꽃 활짝 핀 봄 결혼하던 그해 같네

  살아 이별 죽어 이별 늙음을 재촉했으나

  슬픔 짧고 기쁨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

  ………

다산의 절필시입니다. 75년, 결혼한 때로 60년, 긴 인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삶을 결론지었습니다. ‘슬픔 짧고 기쁨 길었다’는 척단환장(戚短歡長), 모진 풍상의 세월, 죄없이 국청에서 당하던 고문, 감옥살이, 18년의 모진 유배살이, 그런 고통쯤이야 짧았고, 500권의 저술을 남기며 학문하던 열락(悅樂)이 길고 길었다니, 역시 다산다운 자신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 학문의 대업을 이룩한 평생을 기쁨과 즐거움의 세월이라 평가한 그의 긍정적인 마음, 우리는 그 분을 사모하고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움, 사모하는 마음, 우리 모두 묘소에 모여서 제사를 올리며 풀어봅시다. (음력 2월 22일은 양력으로 4월 7일이었습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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