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변함없는 일상 속에서 나의 근본 없는 패션과 질서 없는 옷 생활을 개선하고 정리하려고 애쓴 지가 꽤 되었다. 나름의 변화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개선 속도가 느려서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입었을 때 활동하기 편하고 내 몸이 쾌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옷’이라는 조건에 나의 심미적 기준을 만족시키는 색상과 핏을 적용한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정말 쉽지 않았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옷 입기’라고 말로 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옷’이라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기본적으로 상의, 하의, 양말, 신발뿐만 아니라 속옷이 있어야 한다. 외출 시에는 가방을 들어야 하고 그날의 날씨에 맞춰 모자와 스카프 혹은 머플러도 준비해야 한다. 거기에 약간의 멋 내기를 위해 목걸이나 팔찌, 헤어핀, 허리 벨트 등을 추가하면 상당한 양의 아이템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 ‘옷 입기’란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 같은 미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릴 때 아무리 많은 계획과 미적 감각이 있어도 일단 도구와 재료가 있어야 한다. 미술과 패션은 둘 다 아이디어를 물질적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미술에는 물감, 종이, 찰흙 등의 재료와 붓과 나이프 같은 도구가 필요하고 옷 입기에는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 같은 실제 제품이 필요하다. 그 말은 바로 물질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 죽이든 밥이든 시작이 된다는 것, 즉 돈이 든다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옷에 드는 돈은 솔직히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냥 입어서 대충 불편하지만 않으면 됐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좀 더 몸이 더 편안하고 마음도 흡족한 옷 생활을 하려고 결심한 이상, 어떤 옷을 저렴하게 판다고 해서 막 집어들 수는 없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어떤 도구와 재료가 내게 맞는지를 찾으려면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손에 잡고 한 번이라도 써봐야 그것이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옷을 그림도구와 재료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의 마음은 좀 편해졌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옷에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투자를 해보기로 했다. 일단은 옷을 사는 데 초기 지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였다. 그동안 패션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던 나로서는 심리적 저항감이 있었지만 그 기분은 극복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비용에 쇼핑의 시행착오로 인한 지출이 추가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했다. 그런 지출은 당장은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용이 일종의 교육비와 다름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배우는 것이 있고 내 옷 생활에도 발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결심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계절마다 상황과 환경에 맞춰 적당하면서 내 마음에도 드는 옷을 잘 구입해서 입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난겨울에 샀던 바지들 중 몇 벌은 세탁 몇 번에 보기 싫게 심한 보풀이 일었다. 모처럼 구입한 니트 스웨터는 밖에서는 따뜻해서 좋았지만 실내에 들어갔을 때는 더워서 몇 번 입지 못했다. 그렇게 내 옷장에는 어떤 부분은 좋지만 어떤 부분은 문제인 여러 옷들이 쌓여 있다. 그 옷들을 입을지 갈등하면서 하면서 꺼냈다 넣었다 했던 고민의 시간은 내 옷장을 다시 엉망으로 만들었다. 애써 시간을 내어 정리를 해도 다시 어지러워지는 옷장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간 나는 더 나은 옷장 정리를 위해 틈틈이 옷장 정리를 위한 책과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았다. 대다수의 정리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내 옷장에 넣을 수 있는 양의 옷만 사서 채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 같은 초보자에게 그런 가이드라인은 꿈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필요한 옷의 종류와 적절한 원단, 어울리는 핏, 조화로운 색상 매치 등에 대한 지식과 고민이 부족한 채로 옷을 샀기 때문이다. 이미 내 옷장에는 최대 20년에 걸쳐 구입한 옷들이 뒤섞여 있다. 그중에는 쇼핑에 성공해서 건진 잘 어울리는 옷과 저렴하고 막 입기 편안한 옷이 있다. 하지만 또 어머니가 사다 주신 옷과 선물 받은 옷, 쇼핑을 갔다가 그냥 예뻐서 구매한 옷도 있다. 그렇게 여러 경로를 통해 내가 갖게 된 옷들을 두고 매일 하게 되는 나의 옷입기는 여전히 내 옷장만큼이나 뒤죽박죽이다. 옷장을 몇 번 정리해 보면서 나는 계속 한계에 부딪혔다. 지금 가진 옷을 싹 다 버리고 새로 하나씩 구입한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의 원인은 옷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지금 완벽한 옷장 정리에 필요한 옷에 대한 많은 지식과 경험치를 단기간에 쌓는 것은 시간 면에서나 에너지 면에서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면서 문득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옷장 정리는 보편 공식이나 정답에 맞춰서 해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지금 옷과 나의 관계를 반영하는 결과물인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옷장 정리 전문가가 있지만 그들의 기준으로 만든 틀에 나의 개인적인 생활이 정확히 구획되어 들어갈 수는 없다. 나는 또다시 헝클어진 옷장 앞에서 드디어 생각했다. 지금 생각한 기준에 맞춰 당장 옷장을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말자. 옷과 친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정리를 해서 언젠가 내게 딱 맞는 효율적인 옷장을 갖는 것을 목표로 삼자. 그 과정에서 옷이 헝클어지고 정리가 안 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단지 더 아름답고 효율적인 옷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만 계속 유지하자.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유를 갖자. 이제 처음 옷 입기에 진지해진 내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정리된 옷장을 갖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나는 앞으로 그 과정 속에 보게 될 옷장 안의 혼란한 모습에 최대한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사실 이전에 나는 정리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라보았다. 몇 번 입지도 않고 그냥 갖고 있는 옷은 과감히 처분하라. 나는 그 말에 맞춰 옷을 몇 벌 내다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버린 주황색 체크 셔츠를 나는 곧 아까워하게 되었다. 그 옷을 구입했을 때는 주황이 내게 잘 어울리는 색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 옷을 몇 번 입지 않았던 것은 내가 그 옷을 다른 옷과 어울리게 입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모처럼 옷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렸다면 그 옷을 예쁘게 입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오래되었거나 자주 입지 않으면 버린다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 옷을 옷장에서 퇴출하는 것은 내게는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내가 왜 그 옷을 샀는지, 왜 좀 더 활용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 보고 자연스러운 결단이 내려졌을 때 버렸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게다가 옷을 한 벌 살 때마나 나는 여러 가지를 투자한다. 고르는데 드는 시간, 사겠다는 결단을 내리기 위한 에너지, 최종적으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돈이 그것이다. 그러니 섣부른 판단으로 옷을 버리는 것은 그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무시하는 행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가지 교훈을 얻고 봄을 맞으면서 나는 오래된 아이보리색 겨울 코트를 한 벌 버렸다. 이제 옷장의 공간과 나의 시간을 다른 옷에 내어주어야 할 때라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옷을 버릴 때는 전혀 아쉬움이 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옷을 버릴 때는 얼마나 오래됐는지 얼마나 자주 입었는지 같은 수치상의 역사보다는 내 마음을 기준 삼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기 위한 마음의 기준을 만들려면 내 옷과 실제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사람 관계처럼 물건과의 관계에서도 친해질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는 헤어질 날이 오지만 남의 기준을 따라 별생각 없이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실 구입한 옷들이 때로는 나의 생각과 생활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바꾸기도 한다. 집안에 물건을 함부로 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인가 보다. 하지만 당장 이유를 몰라도 마음이 미쳤다면 일단 들여놓고 봐야 아는 것도 있다. 옷장에 두어도 보고, 몇 번 입어도 보고, 그에 대해서 고민도 해보고 그러다 언젠가 버리기도 하면서 옷을 입는 나라는 나의 일부분도 성숙해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성장에 맞춰 내 옷장도 천천히 완성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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