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위클리서울=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 어느 사회에서나 참사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사 이후 대응에 따라서 그 사회는 달라집니다. 적어도 ‘이 참사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와 참사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밝히는 것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재발 방지를 위한 지침이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참사 등을 겪은 우리 사회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이태원 참사입니다. 우리는 159일 전의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사람들의 마지막 시간들을 모릅니다. 희생자들의 마지막 시간들을 숨기지 말고, 올곧게 밝히는 것은 미래세대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이태원 참사 고 김산하 씨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의 마지막을 알고 싶습니다. 아이의 마지막을 몰라서 우리 아이의 마지막을 몰라서. 제 머릿속에 상상만 하지 않도록 제 아이의 마지막을 알고 싶어요.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아이의 죽음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서 우리에게 왔는지 그 마지막 시간들을 정확하게 알고 싶을 뿐입니다. 국가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장영식
아이가 왔을 때, 얼굴 외에는 하얀 천으로 감싸 있었습니다. 사상경찰서에서 장례를 위해서는 조서를 써야 한다고 해서 갔습니다. 조서가 엄청나게 두꺼웠어요. 그 두꺼운 조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아이의 사진이 있었어요. 100장 가까운 많은 사진에는 아이의 옷이 다 벗겨 있었어요. 알몸이었어요. 그 사진들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이의 동선을 확인해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서울 용산경찰서에 가서 해야 한다고 해요. 그러면 아이의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면서. 아이의 신분을 확실하고, 사인도 분명한데도 아이의 알몸 사진들을 찍은 것이었어요.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울고만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이를 변사체로 취급한 것이었어요. 나중에 유가족 158명에게 물어보니 모두 똑같은 대답이었어요. “왜 우리 아이들의 옷을 다 벗겼느냐” “누가 했냐?”라고 물었더니 “과학수사대가 했다”라고 했어요. ⓒ장영식
아이가 왔을 때, 얼굴 외에는 하얀 천으로 감싸 있었습니다. 사상경찰서에서 장례를 위해서는 조서를 써야 한다고 해서 갔습니다. 조서가 엄청나게 두꺼웠어요. 그 두꺼운 조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아이의 사진이 있었어요. 100장 가까운 많은 사진에는 아이의 옷이 다 벗겨 있었어요. 알몸이었어요. 그 사진들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이의 동선을 확인해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서울 용산경찰서에 가서 해야 한다고 해요. 그러면 아이의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면서. 아이의 신분을 확실하고, 사인도 분명한데도 아이의 알몸 사진들을 찍은 것이었어요.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울고만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이를 변사체로 취급한 것이었어요. 나중에 유가족 158명에게 물어보니 모두 똑같은 대답이었어요. “왜 우리 아이들의 옷을 다 벗겼느냐” “누가 했냐?”라고 물었더니 “과학수사대가 했다”라고 했어요. ⓒ장영식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 의하면, 참사가 일어나고 희생자들의 시신은 모두 용산구 다목적체육관에 있었습니다. 그 희생자들을 누구의 지시로 40여 곳으로 분산해서 옮겨졌는지 밝혀져야 합니다. 사인이 분명하고 신분이 확인된 희생자들을 변사체처럼 알몸으로 사진 100여 장을 찍고 처리했는지 밝혀져야 합니다. 서울에서 죽은 희생자들의 시신을 경기도 외곽 지역 등으로 분산해서 옮긴 과정이 밝혀져야 합니다. 누가 지시했고 감독했으며, 은폐한 이가 누구인가를 밝혀져야 합니다. 왜 신분이 확인된 희생자들이 어느 곳으로 안치됐는지조차 TV 자막으로 안내하지 않았는지 밝혀져야 합니다.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서 올라온 부모들이 아이들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밤새도록 미친 사람처럼 절규하며 여기저기를 찾아다녀야 했던 그 애타는 마음을 가로막은 자들이 누구인지 밝혀져야 합니다.

 

아이를 봤을 때, 경찰들이 손도 대지 말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의 마지막까지 손도 만지지 못했어요. 얼굴도 만지지 못했어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껴안아 보고 만져 보고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모든 아이들의 엄마 아빠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지시를 내렸나요. 우리는 궁금하고 알고 싶어요. ⓒ장영식
아이를 봤을 때, 경찰들이 손도 대지 말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의 마지막까지 손도 만지지 못했어요. 얼굴도 만지지 못했어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껴안아 보고 만져 보고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모든 아이들의 엄마 아빠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지시를 내렸나요. 우리는 궁금하고 알고 싶어요. ⓒ장영식

희생자들의 시신을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었던 사람,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져야 합니다. 그날의 진실이 규명되고, 그날의 진실에 따라서 대통령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그날의 책임자들이 처벌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159명의 희생자들을 올곧게 추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159명의 희생자들이 올곧게 부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아이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를 토대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아이를 보낼 거예요. 저는 아직도 아이를 보내지 못하고 데리고 있어요. 유골이라도 내 집에 아이 방에 그대로 있어요. 사람들은 “이제 그만 보내자”라고 말하지만, 저는 보낼 수가 없어요. 내가 살기 위해.... ⓒ장영식
저는 아이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를 토대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아이를 보낼 거예요. 저는 아직도 아이를 보내지 못하고 데리고 있어요. 유골이라도 내 집에 아이 방에 그대로 있어요. 사람들은 “이제 그만 보내자”라고 말하지만, 저는 보낼 수가 없어요. 내가 살기 위해.... ⓒ장영식
10.29 이태원참사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진실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온 유가족들이 부산시민공원 앞에서 특별법 국민동의청원 서명을 받은 후, 부산 시민들과 함께했다. ⓒ장영식
10.29 이태원참사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진실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온 유가족들이 부산시민공원 앞에서 특별법 국민동의청원 서명을 받은 후, 부산 시민들과 함께했다. ⓒ장영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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