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진화한 황소개구리
진화한 황소개구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모두가 놀랐다.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황소개구리 맞아? 이 한 문장을 간신히 중얼거렸을 뿐, 아무도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4월이면 붕어들의 짝짓는 소리가 방안에까지 들려와서 까닭도 없이 나를 설레게 하던 방죽을 끝내 폐쇄하던 날이었다. 끝도 없이 나를 바쁘게 하고, 뿌듯하게 하고, 신나게 해준 붕어들이 죄다 잡혀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우울해서 나는 전날 밤에 혼자 조용히 콧물을 흘리며 소주를 마셨다.

산다는 게 결국은 이런 것이로구나. 어떤 방식이 됐든 만나면 헤어짐이 예약돼 있는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내 눈에서 찔끔거리는 이 눈물의 정체는 무엇이냐?

눈물의 정체를 찾는답시고 또 한참을 허둥거렸다. 붕어들과 함께 한 세월 속의 풍경이 압축된 영화처럼 지나가고, 이어서 그 이전의 상황들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또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이십 년도 넘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이 집에 이사를 왔을 때 출입문 옆으로 습지식물 미나리가 무성했고, 철사 그물이 둘러쳐져 있었다. 철사 그물은 전에 살던 사람이 오리를 키운 흔적이라 했다. 오리고기를 워낙 좋아해서 오리를 키운 게 아니라 물이 항상 고여 있는 까닭에 이걸 어쩌나, 어쩌나 하다가 생각난 게 오리여서 새끼 오리를 사다가 넣었다는 다소 재미난 일화가 있었다.

그 자리에 물이 고이는 이유는 과거에 우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기모터가 위력을 보이면서 우물은 흙으로 채워졌지만, 지하의 수맥은 바뀌지 않고 남아 있어서 지상으로 물을 길어 올린다. 그래서 장마철에는 물이 제법 콸콸 소리를 내며 흘렀고, 비가 없는 계절에도 물은 마르지 않고 습지식물을 키워냈다.

새로 집 주인이 된 나는 우물 자리에 수련을 심기로 했다. 삽으로 흙을 파내서 삼십 센티미터 정도 깊이의 웅덩이를 만들고, 흰 것과 빨강 그리고 보라 세 종류의 수련을 사다가 심고 가장자리는 창포로 채웠더니 보기에 참 좋았다. 그 정도로 만족하고 해마다 그 보기 좋은 장면을 누리기나 했으면 좋았을 것을, 미련하게도 더 좋은 풍경을 만든다고 색깔이 붉은 물고기를 사다가 넣었다. 이것이 내 슬픔의 시작이었다.

 

우렁이들
우렁이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연못이라 이름을 붙인 웅덩이에 물고기가 있는 것을 본 후배 몇 녀석이 낚시를 갔다가 붕어를 열 마리도 넘게 가져와서 연못에 넣었다. 이 또한 보기에 좋았다. 손톱만한 크기의 새끼 붕어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게 태어나서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이 무엇보다 나를 황홀하게 했다. 붕어는 그렇게 해마다 식구를 불려 나갔다.

그런 어느 해인가 이박삼일로 비가 내렸다. 소나기가 주룩주룩 쏟아지고, 그쳤는가 하면 보슬비가 내리고, 또 그쳤는가 하면 이슬비가 추적거리고, 그것이 그쳤는가 하면 다시 소나기가 한 줄기 쏴악, 쏟아지는 식이었다. 게다가 바람도 제법 거세었다. 멍청한 나는 물고기들이 비를 만났으니 매우 행복하겠다,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연못이라고 하는 작은 틀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차마 해보지를 못했다.

“어매 아저씨, 이것이 뭔 일이다요?”

밤새 비가 내린 다음날 아침이었다. 한 손에 커다란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에 호미를 들고 고추밭 물 단속을 나가던 아랫집 아주머니가 날카로운 소리로 나를 불렀다. 깜짝 놀라서 뛰쳐나가본 즉, 연못을 탈출한 붕어들이 도로에 쫙 깔려 있었다. 흐르는 물을 따라서 신나게 헤엄치며 연못을 빠져나오긴 했지만, 빠져나오는 순간 콘크리트가 깔린 삭막한 도로를 직면하고 보니 자기 몸 하나도 감출 수가 없고, 헤엄을 칠 수도 없어서 그냥 펄떡펄떡 뛰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또 한 번 바보 같은 결정을 하고 말았다. 물고기란 그 속성상 물을 따라 움직이게 돼 있는 것을, 바보 같은 나는 깊이가 너무 낮아서 붕어들이 답답한 마음에 그만 탈출을 감행한 것으로 여기고 연못을 대폭 확장하기로 한 것이었다.

삽으로 흙을 파내고 또 파내기를 며칠이나 했던가. 그리하여 연못은 일 미터도 넘는 깊이에 넓이도 큰방 하나 정도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수련은 죄다 죽어 버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수련은 수생식물이지만 물이 너무 깊으면 태양과의 교섭이 안 돼서 죽어버린다는 것을.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꽃이야 뭐 수련이 아니라도 마당에 널리고 널렀으니 수련은 포기하기로 했다. 새끼 붕어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 그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연못이란 명칭을 포기하고 방죽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방죽 가장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새끼 붕어들을 관람하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미 붕어는 산란철이 아니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지만, 새끼 붕어들은 세상 경험이 없는 까닭에 사람이 보고 있어도 숨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어미 붕어들이 노상 사람을 두려워해서 숨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연애를 제대로 하면 두려운 게 없어지듯이, 붕어들 또한 봄날 한철 ‘그때’가 되면 사람 따위 두려울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듯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자유자재 그 자체가 되어간다.

 

붕어들
붕어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배가 불룩한 암컷 붕어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지나가면 수컷 붕어들이 떼를 지어 따른다. 그냥 따르는 게 아니라 싸우면서 따라간다. 주둥이로 경쟁자를 밀어내기도 하고, 꼬리를 힘차게 휘둘러서 상대를 때리기도 하고, 펄쩍 뛰어올랐다가 경쟁자의 몸 위로 떨어져 내리기도 하고, 하여튼 맹렬하게 싸운다. 그러다가 암컷이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알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일시에 싸움이 중단되면서 희뿌연 정수를 뿜어내기 시작하는데 누구의 정수가 알에 붙어 화학작용을 했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수컷들은 인사불성이 돼서 그냥 싸우기만 할 뿐 싸움의 이유가 애매해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 애매한 싸움을 구경하는 재미는 황홀경 그 자체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 방죽에 물고기가 있다는 소문이 어떻게 돌았는지 황소개구리가 찾아들고, 가끔은 해오라기나 두루미 같은 녀석이 마당에까지 날아들기도 했다. 해오라기와 두루미들이 보기에 우리 집 방죽은 스케일이 너무 작았던 것인지 몇 번 보이다가 더 이상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황소개구리는 천국이라도 발견한 듯이 몰려들었다.

인기척이 들리면 찍, 하고 자발스런 소리와 함께 방죽 속으로 풀쩍 뛰어들어서 잠수를 해버리는 황소개구리, 턱관절이 없어서 자기 몸보다 큰 물고기도 거침없이 삼켜버린다고 하는 황소개리의 출현으로 나는 새롭게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 말도 들어보고 저 사람도 말도 들어보고, 인터넷을 포함한 온갖 방식의 경로를 통해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황소개구기를 완전 퇴치하기까지 꼬박 삼 년이 걸렸다. 황소개구리 세계에서도 아마 나에 대한 악명이 제법 짜하게 돌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세 마리를 잡아내면 한 마리쯤 새로 유입될 만도 하건만 뚝 끊어졌다.

그랬다. 나는 황소개구리를 다 퇴치했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 중에 한 마리가 진화해서 물 밖으로 호흡기관을 내밀지 않고도 살아가는 기술을 개발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를 못했다. 더 이상은 안 보여서 마침내 황소개구리를 완벽하게 퇴치했다고 의기양양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방죽을 폐쇄한다는 슬픈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모든 붕어를 황소개구리한테 뺏기고 난 뒤에까지도 원인을 몰라서 그것 참, 그것 참, 소리나 중얼거리고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붕어 방죽을 폐쇄하자는 결정을 내린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내가 이제 곧 이 집을 떠나야 할 것 같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 즉 물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물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아마 대충 계산해 봐도 칠팔 년은 넘었을 것이다.

 

작업자와 구경꾼
작업자와 구경꾼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언제부터인지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눈이 없었고, 여름에는 비가 없었다. 여름에 비가 내린다 해도 우산이나 챙겨들게 할 뿐 비다운 비는 구경하기 어려웠다. 장마철이 됐어도 이슬비나 보슬비가 추적거리는 마른장마가 해마다 반복되었고, 어쩌다 가끔 서비스처럼 소나기가 쏟아진다 해도 십여 분을 넘기지 않고 뚝, 그쳐버리는 식으로 목마름을 가중시켰다.

그 바람에 나는 지하수를 뽑아 올려서 말라가는 방죽을 채워야만 했다. 처음에는 이제 곧 비가 오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지하수를 뽑아 올렸다. 결과론적으로 그것은 사실 미친 짓이었다. 하루 종일 지하수를 뽑아서 방죽을 채워놓으면 이틀도 안 돼서 반으로 줄어들고, 그러면 또 지하수를 뽑아 올린다. 그러면 다음 날 또 반으로 줄어든다. 그 많은 물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일부는 지하로 스며들었을 것이고, 일부는 바싹 마른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어느 하루 문득, 아 내가 지금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여기저기 사방에서 일어난 산불 관련 뉴스를 접하고서였다. 그날 결정했다. 더 이상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명연장을 위한 가벼운 몸부림에 불과한 짓이라고.

다음 날 즉시 소문을 냈다. 오랜 세월 나를 기쁘게 해준 붕어들을 내 손으로 직접 잡아낼 용기는 아무래도 없어서였다. 누구든 생각이 있는 사람은 와서 우리 집 방죽에 붕어들을 잡아가 다오, 했더니 후배 몇 녀석이 수중모터까지 트럭에 싣고 달려왔다.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수중모터로 물을 빼내기 시작한 지 한 시간여, 붕어들이 펄떡펄떡 뛰면서 조금이라도 깊은 곳을 찾아 모여들고, 우렁이들이 시커멓게 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우렁이들이 흙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면서 방죽으로 들어간 여인이 어느 순간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았다.

뭐여, 뭐여. 남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토해내며 두리번, 두리번, 하다가 발견한 그것은 실로 놀라웠다. 방죽 바닥의 흙이 뭉텅이로 꾸물꾸물, 움직이는데 누구 한 사람도 그것의 정체를 지목하고 나서지를 못 했다. 감히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 하고, 손을 내밀어볼 엄두는 더더욱 내보지 못한 채로, 일단 붕어부터 잡아낸 다음 커다란 소쿠리를 동원해서 조심조심 들이밀어 보았다.

 

수중모터
수중모터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소쿠리를 바닥으로 깊이 찔러서 들어 올리는데 허리가 휘청할 정도로 무거웠다. 그렇게 간신히 방죽 밖으로 끄집어낸 그것은 전대미문의 괴물이었다. 그랬다. 황소개구리처럼 생겼다고만 할 뿐, 누구도 그것을 황소개구리라고 단정을 짓지는 못했다.

우선 크기부터가 엄청나게 컸다. 내가 그동안 잡아낸 황소개구리는 가장 큰 녀석이 내 주먹 정도밖에 안 됐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살짝 과장을 하자면 내 머리통만이나 하다. 얼마나 많은 붕어를 잡아먹었는지 배가 양쪽으로 불룩불룩 튀어나왔고, 개구리 특유의 점프력을 발휘하지도 못해서 엉금엉금 기어 달아나고자 하는데 그 속도가 개구리는커녕 거북이보다 훨씬 느렸다.

디테일한 정체야 어쨌든 황소개구리 계열임은 분명해 보인다고 우리는 합의를 보았다. 녀석은 아마 방죽 바닥에 용궁 같은 것을 지어놓고 앉아서 붕어가 지나가면 날름, 날름, 삼켰거나 아니면 붕어들 중에 한 마리를 대장으로 지목해서 날마다 몇 마리씩 자신의 먹이로 바치라는 지시를 내렸거나 하여튼 어떤 식으로든 폭압적인 제왕 노릇을 해 왔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내 눈에 한 번도 안 띌 수가 있었던 거지?

나는 마침내 그 문제에 봉착했다. 개구리는 사람을 피해서 물속으로 깊이 잠수를 했다 해도 금방 다른 쪽 수면 위로 코를 내미는 동물이었다. 내 인식 속의 개구리는 그런 호흡기관을 장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이렇게 커다란 체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내 눈에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혹시 진화? 그동안 열심히 진화해 왔던 거야?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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