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이 절로 나는 품바타령, 5일장 구경 가세”
“흥이 절로 나는 품바타령, 5일장 구경 가세”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3.04.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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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탐방] 모란민속시장 5일장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매월 4와 9가 들어가는 날 이곳은 매우 흥하다. 흥겨운 노랫소리와 각설이 품바타령이 천막 사이를 헤집고 장날 분위기를 돋운다. ‘얼쑤’ 하는 춤사위에 덩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웃음소리에 따라간다. 왁자지껄 막걸리를 한잔 따라놓고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노천 식당 사잇길을 걷다 보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외칠 만도 하다. 국내 유명 5일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란민속시장은 매월 4일과 9일에만 열리는 대규모 5일장이다. 그래서인지 모란시장 5일장이 서는 날에는 전국 각지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가 즐비하다. 아마도 시골 오일장과는 또 다른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5일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남시 대규모 광장에서 펼쳐지는 흥겨운 5일장

모란시장은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하고 있는 재래시장이다. 지하철 8호선 분당수인선 모란시장역 환승역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 및 수도권에서는 더욱 이동이 손쉽고 전철역에서도 도보로 10분 거리에 5일장이 열려 접근성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장이 열리는 4일과 9일에는 주변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차들이 진입한다. 하지만 대규모 공영주차장이 완비되어 있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도 끄덕 없다. 그래도 주말과 공휴일이 5일장과 겹치는 날에는 많은 차량이 운집하며 이에 따라 불법주정차가 성행해 단속이 심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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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조선시대 재래시장은 3일장과 5일장으로 열렸다. 시장이라는 형태는 소상인들이 모여서 서로의 물건을 판매하는 노점이나 상점에서 판매하는 전통적인 상거래 행위에서 발전되었는데 매일 시장이 열리기에는 적합하기 않았기에 주로 5일에 한번 시장이 열리고 그날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았다. 그러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소상인들이 연합체로 결성한 형태의 상점으로 발전했고 정기상설시장으로 시장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제 재래시장은 1년 365일 상시로 열린다. 그러자 5일장은 자취를 점차 감추게 됐다. 모란민속시장 5일장은 그런 사라져 가는 시장의 한 형태다. 그러기에 모란시장 5일장은 더욱 풍성한 시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5일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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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은 보통 재래시장과는 어떤 다른 장점이 있을까? 일단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각종 농산물과 해산물, 곡물, 한약재 등을 즉석에서 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뿐만이 아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골동품 같은 중고용품과 각종 특색있는 액세사리, 전자제품 등 눈요깃거리가 쏠쏠하다. 속삭이듯 지저귀는 새들이 담긴 새장 안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들과 함께 군것질거리를 하며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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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5일장은 첫 입구에서부터 봄 내음이 물씬했다. 알록달록한 봄꽃들이 좌판을 나서서 오가는 행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화려한 색깔의 라넌큘러스, 구문초, 알리움, 금잔화 등 아름다운 꽃 화분은 물론 체리톱스, 백봉국 등 각종 다육이와 묘목들, 양파처럼 생긴 뿌리를 가진 무스카리 등 뿌리근도 저렴한 가격에 구매의 손길을 기다렸다. 가격을 물어보고 화분을 사가는 손님들과 검은 비닐봉지를 무심한 듯 툭툭 끊어 화분과 함께 건네는 상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간 천막 안에는 각설이 품바와 부채춤을 추는 여인의 공연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진달래를 닮은 꽃분홍 저고리와 반짝이는 짧은 초록 치마를 입은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자 사람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열광했다.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장내가 꽉 찼다. 저마다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복장을 갖춘 각설이 패들이 품바 공연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품바란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를 뜻한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이어지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각설이 품바는 여느 드라마에서 잊지 않고 사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각설이 타령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순간이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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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팔도 싱싱한 제철식품이 한 자리에

신선한 제철 농산물과 곡물을 만날 수 있는 것도 5일장이기 가능하다. 참깨, 햇차조, 메주콩, 햇늘보리, 적두, 강낭콩, 통녹두, 율무쌀, 햇 찰보리 등 마트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다양한 곡물들이 좌판에 깔렸다. 각종 ‘말랭이’들은 어떠한가. 표고버섯, 은행, 마을, 고구마, 호박, 연근 등을 곱게 말려 판매하는 노점에는 과자 대신 건강한 간식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인기다. 전국에서 올라온 막 담근 싱싱한 젓갈들도 대기 중이다. 토하, 낙지, 오징어, 창난, 갈치속젓 등 여러 가지 젓갈들이 좌판에 늘어졌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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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알송알 지저귀는 소리를 따라가 보니 새장 안에 새들이 가득이다. 새장이 가득 쌓여 있는 풍경, 서울에서 이런 구경은 쉽게 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 상점 앞에는 어린아이들로 북새통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새들을 가리키며 저마다 즐거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바닷가 산지에서 바로 온 각종 건어물들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북어, 꼴뚜기, 오징어, 명채, 오징어실채, 멸치, 문어 등 상점 주인은 “국내에서 자연건조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석에서 바로 들기름에 재어 구워주는 맥반석 구이 김의 냄새에 홀려 사람들의 지갑이 열렸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 상인들의 직접 더덕이며 쪽파를 까면서 손님들을 기다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혼자 까기 힘든 마늘과 쪽파, 더덕, 도라지 등의 껍질이 오랫동안 숙련된 장인의 손길을 타고 순식간에 벗겨졌다. 물에 씻지 않았는데도 말끔하게 모습을 드러낸 채소들의 모습이 정갈하다. 바닥에는 껍질을 벗긴 도라지의 흔적이 가득하다. 하루종일 채소를 손질한 탓이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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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면서 잠깐잠깐 즐기는 호떡과 국화빵, 커피, 식혜 등 각종 간식거리는 시장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오후까지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군것질만으로는 부족하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지금 시각은 더욱 그러하다. 출출한 배를 달래줄 먹거리 노점을 찾아본다. 김치만두, 잔치국수, 칼국수 등 간단한 요깃거리에서부터 입맛을 돋울 열무국수, 이색 별미 팥칼국수 등 다양한 식사메뉴가 거대한 천막촌 식당에서 펼쳐진다. 허파볶음, 가오리찜, 돼지껍질. 머리고기, 닭발, 주꾸미 볶음 등 수십 가지 다양한 술안주들은 본격적으로 허리띠를 풀고 앉아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게 만든다. 친구, 가족, 연인들과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세상 행복이 따로 있지 않다. 작고 소박한 소소한 행복이 전부 녹아내리는 순간이다. 간간이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바로 그 증거다. 비록 좁고 낡은 간이 의자라 불편하지만 이런 재미는 5일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가 아닐까.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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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기 시간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해가 저물자 상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물건을 거의 다 판매한 상인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조금 남은 물건들을 ‘떨이’로 서비스하는 모습은 빠질 수 없는 5일장의 묘미다. 빠진 장보기 목록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는 행인들과 상인들의 모습에서 다음 5일장이 기대된다. 상인들은 다음 9일에 나올 것인지 서로 논의한다. 이불 품목을 판매하는 상인은 “9일에 비 소식이 있다며 비가 오면 안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야외 시장이다 보니 날씨에 제약을 많이 받는 것이다. 봄날은 지금도 간다. 짧은 인생, 짧아지기만 하는 봄이다. 봄이 가기 전에 가벼운 차림을 하고 5일장 구경에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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