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주그디디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당신은 택시를 믿으시나요?

택시는 종교일까. 진은 택시를 믿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때로는 믿을 수 없는 게 택시 기사인데 어떻게 외국에서 택시 기사를 믿겠느냐고 진은 물었다. 내가 끄덕일 때 진은, 물론 좋은 택시 기사도 있겠지만 외국인인 우리가 그걸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구글맵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지도의 경로와 대중교통의 시간표에 대한 모든 정보가 구글에 있는 것은 아니기에, 택시 기사는 지나가는 여행자를 속이기 너무나 간단하다. 인천공항에서 줄지어 서 있는 택시 기사들이 때로 한국에 온 여행자들을 속이기도 한다는 것도 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정보가 많지 않은 곳을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에게 택시란, 비싸고 두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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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나는 조지아의 첫 도시였던 바투미에서 메스티아로 넘어가려고 했다. 메스티아는 조지아 서북쪽에 있는 한 마을인데, ‘스바네티’라는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 중 하나였다. 안 그래도 나라 전체가 산맥으로 둘러싸인 조지아인데, 스바네티는 서쪽에서는 산맥에 가장 바짝 붙어 있는 곳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안에 있는 강원도 같았다. 지역색도 뚜렷한 편이라고 하던데, 모든 게 신기해서 다 조지아로 보이는 우리에게 그걸 구별할 감식안은 없었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자주 찾는 좋은 산골이라고 들었다. 우리는 서쪽 끝의 해안가를 통해 조지아에 들어왔고, 동쪽에 있는 수도 트빌리시까지 조금씩 나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니, 우선 스바네티의 메스티아를 들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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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미에서 메스티아로 한 번에 가는 교통편은 없었다. 보통 ‘마슈르카’라고 하는, 열 명 남짓이 탈 수 있는 봉고차에 타고 도시를 지나야 했다. 우선은 주그디디라는 작은 도시에 들려 차를 갈아타야 했다. 핸드폰을 들고 우왕좌왕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택시 아저씨들이 온다. 그들은 참과 거짓을 섞는다. 참: 메스티아로 가려면, 우선 주그디디에 가야해. 거짓: 지금 주그디디로 가는 차편이 끊겼어. 내게 비척비척 다가오는 택시 아저씨들을 보며 나는 이런 일을 처음 겪었던 때를 생각했다. 시베리아의 한중간에서 만났던 그 택시 기사 아저씨, 앞으로 당신 같은 사람을 얼마나 더 많이 만나야 했는지 그때 나는 몰랐다.

그래도 조지아의 아저씨들은 수수한 편이었다. 별다른 강요도 없었고, 어딘지 약간은 서툴렀다. 조지아를 여행하는 내내 비슷한 수수함을 느꼈던 것 같다. 음식이 짜서 그런지(내가 먹은 곳만 짰던 것인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담백했다. 부담스럽게 친절하지도, 눈에 띄게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바깥과는 조금 다른 산골 마을 특유의 수수한 담백함이 나는 좋았고, 때로는 조지아가 하나의 거대한 산골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조지아라는 나라를 거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조지아는, 내게 모르는 산골이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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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 사이에는, 무엇이 있나?

메스티아로 넘어가기 전에 들려야 하는 주그디디에 몇 시간이 지나 도착했을 때, 다시 몇몇 택시 기사를 지나 정확한 정보를 찾았다.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3시간 후에 출발한다고 했다. 시간이 나는 김에 진과 함께 주그디디 곳곳을 둘러보고 다녔다. 여행객들이 부러 들릴 일이 없는 도시에는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면이 더욱 도드라진다. 주그디디는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생기를 잃어버리지는 않은 작은 도시 같았다. 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모습을 보았고, 공원을 지나치며 풍선을 든 아이들과 얼마나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을지 모르는 회색 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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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조지아가 여전히 생소했기 때문인지, 이리저리 살피며 걸어도 흥미로웠다. 투박한 소련의 느낌이 남아 있었고, 산골 특유의 수수함, 이 지역에서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 특유의 문화, 조지아 정교회의 깊은 신앙심과 안정감 같은 것들이 어우러졌다. 점차 긴 여행을 하며 내가 세상을 너무 좁게 보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무슨 세상사는 이치를 새로 얻어온 것은 아니고, 단지 정말 ‘모르고’ 있었다는 걸 되레 알았다. 서쪽에는 유럽과 미국이 있고, 동쪽에는 동아시아가 있다. 그 밑으로는 동남아시아도 있고, 또 옆에는 인도도 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나? 땅은 참 넓게 이어지는데.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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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물론 석유 나는 아랍이 있다는 건 알았다. 그런데 이란이 아랍이 아니라는 것을, 또 그 사이에 국가를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숱한 민족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알다시피, 유럽과 아시아는 분리된 대륙이 아니다. 그러면 어디까지가 유럽이고, 어디부터 아시아인가? 유럽과 아시아는 지리적 구분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정치적/문화적 구분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스와 터키가 해협에서 끊어지는 경계야 비교적 분명한 편이지만, 그 밖의 경계는 실은 모호하다. 특히 러시아는 역사 내내 스스로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고민해야만 했다. 조지아는 스스로를 유럽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 이 문제 역시 분명하지는 않다. 특히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조지아가 어디에 속하는지는 관심거리가 아니다. 그냥 멀리 있는 소국이니까.

우리의 관심에 잘 포착되지 않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국가들은 정말이지 각각의 언어와 문화를 가졌다. 조지아는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 즈음부터 지금의 코카서스 지역에 왕국을 만들어 지속해 왔고, 로마보다 빠르게 기독교를 공인했다. 더불어 많은 소수민족들이 곳곳에 이어져 있다. 조지아 서쪽 지방인 압하지아와 중앙의 남오세티야는, 사실상 조지아로부터 독립해 국가를 이룬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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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모조리 한국인이 사는 게 이상할 게 없고, 외국이라면 무조건 바다를 건너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전형적인 한국인인 내게, 여행에서 마주친 새로운 문화들은 그래서 흥미로웠다. 유럽은 그냥 유럽이고, 아시아는 그냥 아시아고, 별로 고민할 게 없던 내 생각 사이로 들어온, 내가 모르던 땅과 사람과 문화들은 내 좁은 마음을 조금은 넓혀 주었다. 여행을 꼭 무언가를 배우고 돌아오는 교훈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분명 여행은 모르고 있던 걸 조금은 느끼게 한다.

3시간 동안 주그디디를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꼭 무언가를 생각하고 남겨야만 한다는 것도 강박이다. 계속 걸으며 주그디디 냄새를 맡았다. 공원에는 개들이 많았고, 개들은 나의 냄새를 맡았다. 낯선 서로를 조금씩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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