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키워보셨어요?
토끼 키워보셨어요?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3.05.03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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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쥴리는 파양된 토끼다. 나이는 한 살, 동화책에 나오는 피터레빗을 닮았다. 토끼라면 응당 그러하듯, 쫑긋한 귀와 실룩이는 귀여운 코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몸값이 비싼 토끼는 아니다. ‘롭 토끼’처럼 밑으로 축 처진 커다란 귀를 가진 독특한 외모도 아니고 판다처럼 투톤컬러 무늬를 가진 ‘더치토끼’도 아닌 그냥 평범한 집토끼다. 이미 우리 집에는 커다란 개 두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가 있던 터라 토끼까지 키우는 건 결사반대였다. 하지만 아들은, 갈 곳 없는 토끼를 집으로 데려왔고 어쩔 수 없이 거실에 울타리를 만들어 그 속에서 쥴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개와 고양이에 비해 토끼는 손이 많이 안 간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단 토끼는 큰 소리로 짖지도 않고 뭉친 털을 빗겨줄 필요도 없다. 울타리를 박차고 나온다거나 발톱으로 벽을 벅벅 긁어 놓지도 않는다. 개들처럼, 목줄을 묶어 산책을 시켜주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토끼가 만만한 동물은 아니다. 애완동물들이 하는 예쁜 짓, 쓰다듬어 주면 골골 소리를 내며 좋아하는 고양이나 개껌 하나만 던져줘도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어 대는 개와 다르다. 생긴 것과는 달리 성질이 사나워 손을 깨물기도 한다. 깨물려보지 않은 사람은 ‘토끼가 물어봤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다. 눈물 나게 아프다. 피가 날 정도로 야무지게 문다. 거기다 똥을 엄청나게 싸댄다. 뱃속에 똥만 들었나 싶게 쉴 새 없이 싼다. 하지만 건초와 간식을 사각사각 씹어 먹을 때 오물거리는 입을 보고 있노라면 앞에서 말한 괴로움 따위 다 잊어줄 만큼 귀여운 구석도 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은 토끼를 대하는 개의 태도였다. 리트리버 종인 코난이가 등치 값도 못 하고 허구한 날 쥴리가 사는 울타리 앞에 서서 커다란 얼굴을 디밀며 컹컹 짖어대거나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같이 놀자는 건지 나와서 한 판 붙어보자는 건지 암튼 그랬다.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눈만 뜨면 커다란 개대가리가 24시간 지켜보고 있으니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그래서 쥴리를 잘 키울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토끼 키우기의 어려움에 대해 사람들이 제법 많이 알고 있다는 거다. 순해 보여도 말도 못하게 사납다더라, 깨끗해 보여도 냄새가 장난 아니라더라, 털도 숭숭 빠지고 똥통 갈아주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라더라 등등등. 그래서 일단은 ‘토무자(토끼무식자)’를 찾아야 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동생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길래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다가 내가 물었다.

“너 혹시 토끼 키우지 않을래?”

“왠 토끼?”

“집에 토끼가 있는데 우리 개가 괴롭혀서 못 키울 거 같아서...”

“에이, 그래도 내가 토끼를 어떻게 키워요.”

“아냐, 너 정도 인격이면 충분히 키울 수 있어. 그리고 부모님이 귀촌해서 시골 사신다며. 거기 데려다 놔도 되고.”

“저희 아빠가 당장 토끼탕 해먹을 걸요.”

“그럼 니가 일단 키워봐. 울타리 만들어서 거기 넣어두기만 하면 돼. 아침에 건초 채워주고 나가면 손 갈 일도 별로 없어.”

“에이, 그래도 토끼는 좀...”

이 친구에게 쥴리를 보내고자 했던 이유는 세 가지다.

일단,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리다. 생긴 건 고릴라 같지만 자기보다 약한 생명체를 함부로 다룰 놈이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혼자 산다고 했다. 옆에서 부추겨 당장 내보내라고 닦달할 사람이 없다는 거. 세 번째 이유는, 내가 밀어붙이면 어쩔 수 없이 들어주리라는 만만함이었다.

은혜는 소고기로 갚기로 하고 결국 쥴리는 그 친구 집으로 떠났다. 전화 한번 잘못 했다가 토끼 한 마리를 얻게 된 셈이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지금부터는, 쥴리를 키우게 된 고릴라의 이야기다.

“쥴리는 잘 크고 있냐? 너무 귀여워 죽겠지~~~?”

“누나, 쥴리 다시 데려가요...”

“왜?!!!”

“어제도 쥴리한테 발가락 물렸어요. 소파도 다 물어뜯어 놨고요...”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이빨 있으니까 가끔 물기도 하는 거고 토끼는 굴 파는 동물이라 소파 같은 데 올려놓으면 안 돼. 무조건 물어뜯고 파게 돼 있어.”

“좁은 울타리에만 갇혀 있으니까 불쌍하잖아요. 나와서 돌아다니는 재미도 없으면 쥴리가 얼마나 답답하겠냐고요.”

“그래, 너 말이 옳다. 내가 물리적 피해는 배상할 테니(나중에 성공하면) 언제 수원 한번 와라. 소고기 사줄게.”

며칠 뒤, 또 전화가 온다.

“누나, 쥴리가 똥을 너무 많이 싸서 힘들어요. 하루면 똥통이 넘쳐서 매일 치워야 돼요...”

“너 생각해봐라. 좀 매정해 보여도 걔가 속으로는 음청 고마워하고 있을 거야. 밥 주지, 똥 치워주지, 소파 뜯게 해주지, 대가리 처박고 괴롭히는 개새끼도 없지, 쥴리에겐 거기가 파라다이스야. 그런 연약한 토끼를 힘들다고 내치면 네 마음이 편하겠냐. 아니지? 그러니까 잘 키워보자. 화이팅!”

그러다 어느 하루는 이런 전화도 온다.

“근데 누나, 쥴리가 있으니 좋은 것도 있긴 해요. 밤늦게 집에 들어갔을 때 두 발로 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거든요. 요즘은 머리 쓰다듬어도 가만 대주고 있고, 나 닮아서 영특한 거 같아요, 헤헤~~”

쥴리를 보낸 지, 넉 달.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누나, 쥴리 데려가면 안 돼요?’라던 전화도 이젠 뜸하다. 아니, 오히려 쥴리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보내며 ‘천재토끼, 근육토끼’ 같은 자랑을 늘어놓는다. 분명한 건, 쥴리가 지금 사랑받으며 살고 있다는 거고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쥴리 아빠야, 정말 고맙다. 은혜는 절대 잊지 않으마!!”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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