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박쥐’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신부 ‘상현’(송강호 분)은 무기력하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도 마다하고 하고 신부를 택했는데 그가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모두 살아서 들어와 죽어서 나간다. 피리를 불어주는 것과 사죄경을 읽어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상현은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기만 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질려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백신 연구에 참여하고자 프랑스로 떠난다. 상현은 그곳에서 바이러스 ‘이브’에 감염되어 사망한다. 분명히 죽었다. 그런데 살아났다. 의사가 사망 선고를 했는데 상현은 다시 자가 호흡을 하기 시작한다. 치료제가 없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한 자가 다시 살아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은 글로벌 거장이 된 박찬욱 감독의 2009년 개봉 영화 ‘박쥐’에서 일어난 일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치료제가 없는 ‘이브’ 바이러스, 홀로 생존하다

바이러스명은 ‘이브’라고 했다. 이 바이러스는 현재 치료제가 없다. 프랑스의 연구소에서는 비밀리에 백신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임상시험을 위한 대상자를 공식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현은 그런 점을 알고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그곳에는 상현과 같은 종교인들이 많았다. 이제까지 500여 명이 연구소를 거쳐 갔다고 했다. 연구소에서는 시험 대상자에게 비활성 상태의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백신을 주입한 뒤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본다. 감염이 될 수도 있고 활성화될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백신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지금 실험은 그러한 모든 과정이 필요한 실험이다.

증세는 먼저 손발 끝에 수포가 나타난다. 그리고 전신으로 퍼진다. 수포들은 뭉쳐서 크기가 커지고 결국 터지는데 만약 이 병변이 근육에 생긴다면 큰 궤양이 만들어져 출혈이 생기고 장기 내부에 이르면 피를 토하다 결국 과다출혈로 죽게 된다. 연구소 소장은 상현에게 연구소장은 “치료법이 없으니 실험 중에 감염이 되면 손을 쓸 수 없게 된다”라고 엄중하게 경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현의 의도가 순교가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다. 소장은 “기도가 무력감을 느끼고 극적인 자살을 꾀하려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요. 원래 심리적으로 순교와 자살을 구분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요?”라고 묻는다. 상현은 그런 질문에 놀라기라도 한 듯 움찔하다 피식 웃으며 기도가 무력해서 온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비닐이 사방으로 둘러쳐진 사각의 커다란 침대로 상현은 안내받는다. 옷을 갈아입고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주사와 백신 주사를 맞는다. 그는 쏟아가는 햇살 속에서 이런 기도문을 외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 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 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입술과 혀를 짓찧으시어 그것으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시며 손톱과 발톱을 뽑아내어 아주 작은 것도 움켜쥘 수 없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떤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세상에 이런 저주에 가까운 기도문을 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기도를 마친 상현의 얼굴은 편안하다.

상현과 같은 시험 대상자들은 서로 배구도 하고 편지도 쓰고 책도 읽으며 저마다의 시간을 보낸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후 상현도 다른 이들처럼 감염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손에 꽈리 같은 수포가 생겼다. 손톱은 작은 마찰에도 그냥 떼어졌다. 체념하듯 피리를 불어 본다. 과거 그가 죽어가던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불러주던 피리다. 아름다운 음률의 피리를 불던 상현은 갑자기 피를 토한다. 피리의 숨구멍 사이로 피가 콸콸 쏟아진다. 지나치게 많은 양이다. 병변이 장기에 침입한 모양이다. 이제 상현은 처음 연구소장의 말처럼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얼마 안 가 상현의 심장은 멈추고 의사는 사망 선언을 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생긴다. 상현의 얼굴을 덮은 침대보 사이로 상현의 입이 달싹거린다. 침대보가 들썩거린다. 기적이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
 

외형만 인간이라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살았지만 수포는 그대로다. 상현은 하얀 붕대를 온몸에 감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상현을 연호하며 찾아온다. 500여 명 시험자 중 생존자는 오직 상현 뿐이기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살아온 그를 사람들은 성자로 생각하고 있다. 상현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상현은 암에 걸렸다는 환자를 찾아 병원에 방문한다. 환자 강우(신하균 분)는 알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강우의 집에 자연스럽게 방문하게 된 상현은 여동생이라고 생각했던 태주(김옥빈 분)가 현재 강우 처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태주는 상현의 욕망의 버튼을 누르게 하는 시발점이었다.

상현은 어느 날 강우의 집에서 열린 마작 파티에서 태주에게 그동안 신부이기 때문에 억누르고 있었던 성적 판타지를 느끼게 된다. 또한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 또한 태주를 통해 처음 느끼게 된다. 이날 태주에게 피 냄새를 맡은 상현은 이후 피에 집착하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한 여성에게 성호를 그어주고 기도를 해주다가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급하게 핥던 상현. 급기야는 코마 상태에 있던 환자 병실에 가서 링거를 뽑고 환자의 피를 링거줄로 흡입하기에 이른다. 피를 마음껏 마시자 수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치욕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몸의 변화를 느낀 상현은 부끄러움과 두려움, 자괴감에 휩싸여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다. “쿵”하는 소리와 차량 지붕이 완벽히 찌그러졌다. 하지만 수초 후 상현은 멀쩡한 몸으로 다시 일어났다. 그는 불사의 몸이었던 것이다. 그는 ‘박쥐’였다. 잠을 잘 때는 거꾸로 매달려 잤고 하늘을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피를 마셔야만 수포가 가라앉았다. 상현은 ‘흡혈귀’가 됐다. 낮에는 돌아다닐 수가 없었고 피를 마셔야 하는 초자연적 상태가 된 것이다.

상현은 친구의 아내인 태주와 정을 통하고 강우를 살인하기에 이른다. 이어 또 살인, 살인이 이어진다. 이제 상현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원해서 이런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상현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자원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코로나19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도 세계 각국에서 확진자들이 백신 연구 대상이 됐다. 수많은 사람들의 협조 덕분에 코로나19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빨리 백신을 만든 경우가 됐다. 그런데 그 결과가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가 된다면, 어떤 다른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되었다면? 흡혈귀는 되지 않겠지만 부작용의 정도는 신약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늘 초래되는 일이기도 하기에 영화를 그냥 오락영화로만 볼 수 없다.

이러한 문제 의식으로 인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는 개봉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던져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의문을 던진다. 감독이 현재 코로나19라는 초유의 바이러스 팬데믹을 겪고 이 영화를 다시 만든다면 어떤 결말과 메시지를 줄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 영화와는 다른 또 다른 걸작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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