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우리 집에는 예전부터 식물이 꽤 많았다. 어머니가 화분에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옷방과 세탁실을 제외하면 우리 집에 식물이 없는 공간은 없다. 그 식물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연과 경로로 하나둘씩 들어와 집안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 세어보니 우리 집의 화분 개수는 거의 60개고 수경재배 중인 관엽 식물까지 합치면 총 식물 수는 70개가 넘는다. 그중에는 어머니가 선물로 받으신 서양란과 동양란, 오래전에 유행했던 벤저민 고무나무, 아는 분의 꽃집 개점 기념으로 사 오신 길고 뾰족한 스투키, 널따란 화분 위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넓혀온 다육식물도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의 다양한 식물 중에서 어머니가 특히 애정을 갖고 계신 것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다. 오렌지 재스민, 미니장미, 채송화, 히아신스, 딸기, 서양란 등.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집 베란다에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한 것은 형형색색의 제라늄이다. 유럽의 주택 창가에 놓인 식물로 흔히 볼 수 있는 제라늄은 우리 어머니의 소위 ‘최애’ 식물이다. 잎에 난 털과 쓴 냄새 때문에 벌레가 생기지 않고 실내에서는 겨울에도 다양한 색의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 속에 자란 우리 집 제라늄들은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감탄할 정도로 항상 아름답게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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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식물들이 있는 집에 살지만 나는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식물들을 돌본 적은 있지만 집에서 정말로 ‘내 식물’을 직접 키워본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안 계실 때 가끔 수경 식물들에 물을 주거나 시든 잎을 몇 개 잘라준 적은 있지만 어떻게 자라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식물은 거의 없었다. 어머니가 꽃이 피었다고 자랑스럽게 보여주실 때나 좀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집콕이 일상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내 방이 좀 더 초록초록해지도록 식물을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답답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마침 그즈음 자연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쓴 책도 한 권 읽게 되었다. 책에 따르면 사람이 자연 속에 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만약 자연이 가까이 없는 곳에 살고 있다면 주변에 식물이라도 두라고 했다. 식물을 가까이 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마침 외출이 어렵고 꺼려지던 시기였다. 실내 식물이 기본적으로 공기도 정화 시켜주는 데다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이번에 한 번 해보자 싶었다. 사실 내 방에는 이미 어머니가 주신 수경 스킨답서스와 개운죽이 있었었지만 워낙 손이 가지 않는 아이들이라 기른다기보다는 두었다는 말이 더 맞는 수준이었다. 이왕 식물을 사는 거라면 내 마음에 드는 아이들로 구입해서 길러보자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양한 식물 기르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단 온라인 쇼핑몰에서 식물 사진들과 정보를 보며 마음에 드는 작은 식물들을 여러 개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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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솔직히 말하면 거의 대부분이 실패했다. 내 방의 창문은 베란다로 나있기 때문에 분명히 빛이 든다. 하지만 창문의 유리 몇 개를 통과해 들어오는 빛이라 총 광량은 부족했다. 때문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의 경우 꽃을 제대로 피우기 어려웠다. 손이 좀 덜 가겠지 싶어 구입한 작은 미니 선인장도 결국에는 썩 상태가 좋지는 않은 상태가 되어 이별해야 했다. 게다가 항상 방의 창문을 열어둘 수 없는 노릇이라 내 방의 통풍도 매우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작은 잎이 너무 귀여워 샀던 트리안에는 통풍이 잘 안된 탓인지 잎마다 벌레가 생겨 버릴 수밖에 없었다. 좋은 볕과 바람이 필요한 식물들은 내 방에서는 잘 살아갈 수 없었다. 내 방의 환경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식물은 살아 있는 것이라 집에서 함께 살려면 조금이라도 사람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수경이 아닌 흙이 있는 화분의 경우 기본적으로 물을 잘 챙겨 주어야 한다. 하지만 물을 주는 주기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틈틈이 화분의 흙이 말랐는지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신없이 바쁘거나 일상의 일들에 쫓기다 보면 그 작은 일을 처리하는 것도 미루고 빼먹기 일쑤였다. 한 예로 나는 남자친구가 크리스마스에 사 준 작은 포인세티아 화분을 내 책상 위에 두었는데 잎들이 시들어 축 처질 때까지 물 주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많았다. 그 모습을 여러 번 보신 어머니는 불쌍하다며 결국 그 포인세티아를 베란다로 가져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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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은 실패를 겪고 난 후 나는 욕심을 줄이고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물을 제때 챙겨 주는 일을 아직 제대로 못한다면 차라리 뿌리를 물에 담가 두는 수경식물을 여러 개 두면 어떨까. 그래서 이번에는 다양한 수경 관엽 식물들을 사들였다. 벌레도 안 생기는 관엽 식물이니까 쉽게 자라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내 방으로 들어온 테이블 야자와 아이비는 내 방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잎이 노랗게 변하거나 성장이 더뎠다. 반대로 몬스테라는 너무 쑥쑥 자라 작은 유리병을 견디지 못했다. 많이 상한 아이들은 버려야 했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화분으로 옮겨 베란다로 이사 갔다. 결국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스킨답서스와 개운죽 외에 내 방에서 건강하게 성장한 것은 스파티필름뿐이었다. 뿌리 없이 사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틸란드시아와 벽에 걸려 잎이 달린 줄기를 예쁘게 아래로 늘어뜨린 디시디아는 솔직히 잘 자라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거듭된 실패로 내 방에 둘 수 있는 식물 종류에는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이번에는 베란다에 허브 화분들을 조금 들였다.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허브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허브는 빛을 많이 받아야 하고 물도 많이 먹어야 한다며 어머니는 탐탁지 않아 하셨지만 새로 산 화분을 치우라 하지는 않으셨다. 그렇게 들어온 허브들 중 페퍼민트와 레몬밤, 타임은 잘 자랐고 장마철에도 그런대로 잘 버텨주었다. 하지만 딜은 키가 심하게 웃자라면서 쓰러져 버렸고 로즈메리는 매일매일 잎이 마르면서 떨어져 내려 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이탈리안 파슬리에는 의외로 날벌레가 생겨 결국은 처분해야 했다. 그렇게 2년간에 걸친 나의 식물 집사 도전기는 대부분 실패로 점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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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식물 키우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도서관에서 식물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면서 식물로 집을 장식하는 ‘플랜테리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물이 가득한 사진 속의 집들은 참 예뻐 보였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방과 집을 갖고 싶어졌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식물들을 길러보니 플랜테리어는 장점이 많은 만큼 다른 어느 인테리어보다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공간마다 수경이든 화분이든 분재든 생육환경이 맞는 식물을 잘 선택해서 들여야 하고 식물들 각각의 성격에 맞게 꾸준히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살펴서 물을 주고 통풍에 신경 쓰고 시든 잎은 잘라내고 병이나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며 때로는 영양제나 비료도 주어야 한다. 요즘 미디어에서는 ‘식물 집사’라는 말이 유행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식물을 길러보니 반려동물처럼 배변활동을 하거나 사람과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르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동물을 기를 때처럼 식물과 함께 사는 생활에 적응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그래서 초록색 식물로 가득 찼으면 하는 기대로 부풀었던 나의 방에는 아직도 초보자에게 친절한 몇 가지 식물만이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숙련된 식물 집사가 되어 나와 잘 맞는 식물들로 아름답게 플랜테리어가 된 방과 집을 꾸리게 될 때까지 꾸준히 도전을 이어갈 생각이다.

그렇게 나는 올봄 우리 집 베란다에 라벤더를 새로 들였다. 초보 집사의 서툰 보살핌 때문에 물이 부족해 종종 시들해지면서도 꿋꿋이 버틴 이 라벤더는 작은 꽃대 네 개를 올렸고 귀여운 보랏빛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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