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부처와 신선이 함께 만든 것
공자와 부처와 신선이 함께 만든 것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3.05.11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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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책 읽는 일기] 사유의 충돌과 융합, 최광식 저, 21세기북스, 2023
ⓒ위클리서울/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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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당연한 것은 실은 당연하지 않다. 이를 테면, 우리 집 앞에 수많은 교회가 있고 또 바로 근처에는 절 하나가 있는 것. 또 그런 와중에 젊은 사람들이 노출 있는 옷을 부담스러워 하며 스스로를 유교걸, 유교보이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다. 한국에 살아온 나로서는 지독하게 당연했다. 교회야 많은 게 교회이고, 산에 가면 꼭 하나씩 절이 있고, 명절에는 조상님들을 향해 음식을 차리고 몇 번씩 절을 한다. 아이들은 여름성경학교에 다니고, 등산을 하다가 목탁 소리를 듣고, 청학동에는 훈장님이 있다.

1년에 몇 번 안 피게 되는 병풍 앞에서 큰아버지는 우리 가계의 전통에 대해 말하곤 했는데, 나는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족보가 과연 진품일지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 이제 우리 집도 다른 집들처럼 점점 제사가 간소화되어서, 이제 제사상에 올릴 음식들을 모조리 준비하느라 분주하지 않고, 코로나 통에 명절에 보지 않는 날도 늘고 있지만, 아직 우리 문화는 조상님을 향해 빈다. 가끔 길거리에서 눈동자가 흔들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묻기도 하지 않나? 도를 아십니까. 어딘지 모르게 이 ‘동양적인’ 느낌. 훈장님 하고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은 느낌. 이 ‘동양적’이라는 느낌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인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풍경은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조금씩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네팔에서 보게 되었던 티베트 불교의 사원의 의례는, 태국인들이 이야기하는 그들의 불교는,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불교와 전혀 달랐다. 아예 다른 결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 불교의 옆자리에는 기독교가 없었고, 유교가 없었다. 오히려 이슬람 혹은 힌두교와 붙어 있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다. 분명히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그냥 ‘불교’라는 이름을 가진 익숙한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했는데, 누구의 곁에 서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어색할 이슬람교와 힌두교 옆에 별다른 이질감 없이 놓인 불교의 모습을 보며, 내가 보고 자란 환경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국은, 어떤 ‘특이한’ 문화적 토양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최광식의 '사유의 충돌과 융합' ⓒ위클리서울/ 21세기북스

여러 사상과 사유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관습과 제도가 섞여 만들어지는 것이 문화겠지만, 넓게 보면 주요 종교의 조합이 특정 문화권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이를 테면 기독교가 대부분인 곳, 기독교와 이슬람이 섞인 곳, 이슬람과 힌두교가 섞인 곳, 힌두교와 불교가 섞인 곳, 불교와 유교가 섞인 곳 혹은 둘 이상의 종교가 각자의 퍼센트를 차지하고 조화롭게 섞인 곳 등등. 문화는 조합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배스킨라빈스 파인트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더 이상 생각해 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냥 혼자 조금씩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보았다. 1~8세기에 동아시아를 만든 세 가지 생각을 다룬다고 하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 보면 1~8세기 동아시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거의 몰랐다. 한국사야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배워 왔으니 삼국시대 즈음이라는 것은 알았다. 김유신이 말의 목을 잘랐다는 것? 광개토대왕이 북쪽으로 자꾸 갔다는 것? 삼국시대가 막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까지의 약 700년.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가서 불국사에 가고 첨성대도 구경했는데, 언덕 같은 왕릉을 보고 미끄럼을 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돌이켜 보면 도대체 삼국 시대의 문화가 어땠는지,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지는 아는 바가 없었다. 우리 역사가 겪은 사유에 대해 자주 들었던 것이라곤, 조선시대부터 유교가 득세를 했고, 고려 때는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것 정도. 그 이전의 문화에 대해서는 완전히 공란이었다. 차라리 기원전 그리스의 철학자들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을 1~8세기 동아시아 사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나? 나는 왜 유교보이가 되었고, 동네 뒷산에는 왜 절이 있고, 가끔 신선을 생각하고,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되었나?

조선시대 후기에 기독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그러면 그 전에는? 공자의 유교, 부처의 불교, 노자의 도교가 섞여 있었다. 시기마다 강조점이 달라지기는 했을 테지만, 동아시아 사상의 특이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 불교, 도교의 조합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생각이다. 바로 그 시작점이 되었던 것이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삼국시대는 사실상 지금의 동아시아 문화가 형성된 첫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도, 불교도, 도교도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종교는 아니므로, 결국 어디에선가 유입되어 섞였을 텐데, 바로 삼국시대가 그 섞임의 시대인 것이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이 세 종교의 조합이 한·중·일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문화권을 만들었다.

여러 국가가 난립하던 고대 중국, 각각의 사상들이 함께 분출하던 제자백가 시대를 거쳐 중국에는 유교, 도교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 상황 속, 인도에서 기원후 1세기 불교가 유입된다. 내가 중국 서쪽에서 만났던 불교는 어쩌면 처음 불교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웠을지 모르겠다. 이제 유교, 불교, 도교의 조합은 지금 동아시아를 사는 우리에게 어색하지 않은 한 쌍이 된다. 이 세 가지 사유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점차 확장되었고, 이른바 지금까지도 특정한 문화를 공유하는 ‘동아시아 세계’를 만들어냈다.

다른 문화권도 민간신앙과 다양한 종교들이 난립했을 텐데, 비교적 하나의 종교로 수렴한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는 특이하게도 세 가지 종교가 각각의 영역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발전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충돌과 갈등이 있었고, 한 종교가 한 종교를 탄압하는 일도 발생했지만 유교, 불교, 도교는 특이한 균형을 이루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 통치는 유교대로 할게. 장례는 불교대로 하자. 산에 가면 신선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렴. 아마도 동양과 서양의 종교관 차이가 클 것이다. 종교는 곧 ‘유일한 인격신’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유대교 계통의 서양 종교와는 다르게, 동양의 종교는 그런 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물론 조상에게 빌고, 신선에게 빌고, 부처에게 빌고, 극락왕생을 바라더라도 세 종교는 서로의 포기할 수 없는 핵심을 크게 침범하지 않는다. 부처를 믿을 수도 있고, 조상한테 빌 수도 있다. 큰 문제가 안 된다. 때로 한 종교를 더 높이 샀던 지식인들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기도 했지만, 대중의 전반적인 인식 속에서 세 종교는 셋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삼자택일의 기로에 놓여 있지 않고, 세 종교가 적절히 섞인 문화의 향유로 이어졌다.

아쉽게도 이 책이 직접적으로 세 종교가 어떻게 섞일 수 있었는지, 서양과 동양의 종교적 특질이 무엇인지, 세 종교의 조합이 만들어낸 특이성이 무엇인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오래된 고전의 기록 속에서, 충돌하고 융합했던 우리가 모르던 우리의 사상사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모르던 것을 궁금하게, 궁금해서 알고 싶게 만드는 게 좋은 책이라면 이 책은 내게 좋은 책이었다. 공자와 부처와 신선이 함께 만든 내가 살고 있는 이 동아시아라는 세계. 이제 예수까지 들어온 이 세계. 저자의 말대로 극심한 갈등을 앓고 있는 이 사회가, 동아시아 문화 속 조화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조화롭고 싶다는 마음으로 갑자기 조화가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더 많은 조건 속에서 세 사상은 융합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를 우리 바깥에서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무가 뿌리박힌 땅을 빼놓고 한 그루의 나무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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