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타고 도는 고소한 냄새, 기름거리를 아시나요?
골목을 타고 도는 고소한 냄새, 기름거리를 아시나요?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3.05.25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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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탐방] 모란전통기름시장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이곳은 중원구 성남동 1590-3번지 일대. 지하철 수인분당선 5번 출구에서 내려 골목으로 걸어 들어오면 골목 어귀마다 꽉 차는 고소한 냄새가 펼쳐진다. 대왕기름, 서울기름, 삼미기름, 쌍둥이네 기름, 금천기름, 형제기름 등 기름집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는 이곳은 성남 모란전통기름시장이다. 길목마다 참기름, 들기름, 살구씨 등 직접 짠 다양한 기름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이 이색 시장은 지난 1960년대 난전이 모여들면서 시작됐다. 약 300m 구간 길을 마주하고 양쪽에 기름집이 늘어선 특이한 전통시장이다. 시장에는 약 30여 군데의 기름집이 직접 깨를 공수해 와서 기름을 짠다. 고소한 내음이 진동하는 이 이색적인 시장은 지난해 중소기업벤처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백년기름특화거리’로 지정해 더욱 유명해졌다. 전국 유일무이한 최초로 기름으로 특화된 재래시장이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골목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입맛을 돋우다

이곳에는 대를 이어 기름을 짜서 판매하는 장인들의 가게가 많다. 1960년~1980년대 난전이 모여들면서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기름집들이다. 무려 짧게는 십 수년, 길게는 50여 년 이상을 시장에서 자리 잡고 장사를 하다 보니 이제는 부모의 대를 자식까지 이어받고 있다. 대부분의 기름집들이 가족들이 많이 참여하는 편이다. 시장의 쌍둥이 형제들도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들, 딸 모두 모여 가업을 이어받은 집도 있다. 할머니, 아버지, 손자까지 3대를 이어 참기름을 짜는 기름집도 있다. 그러다 보니 50년 전통, 아니 60년 전통을 가진 기름집까지 있을 정도다. 기름골목 상점 중 30년 이상이 되면 ‘백년가게’, 15년 이상이면 ‘백년소공인’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기름시장에서 백년가게는 10개, 15년 이상 된 가게도 5개나 된다. 이렇게 유서 깊은 가게들이 많다 보니 모란기름시장은 지난해 ‘대한민국 제1호 백년기름특화거리’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모란기름전통시장에 들어서면 직사각형으로 된 지정 명판이 아스팔트 거리에 당당하게 새겨져 있다. 본격적으로 시장 구경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기름집이 있다. 아버지가 하던 기름집을 이어받아 아들이 운영하는 기름집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시장에서 기름집을 28년을 운영해 왔다. 이버지에게 배웠다는 아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시장에서 취급하는 기름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 흔히 재래시장에서 사는 기름하면 참기름, 들기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들기름, 생들기름, 홍화씨, 살구씨 등 이곳 기름 골목에서 취급하는 기름은 다양하다. 참기름, 들기름이라 해서 뭐가 다른가 싶지만 기름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일단 참기름도 어린이 참기름, 국산 참기름, 중국산 참기름, 유기농 참기름으로 구분되고 들기름도 원산지에 따라 국내산, 중국산, 인도산으로 나뉜다. 볶지 않는 기름도 있다. 압착방식에 따라서도 기름이 달라진다. 여기에 들깨, 참깨, 콩가루, 고춧가루 등 각종 가루 종류와 고추장, 된장, 조청 등의 식품도 함께 취급한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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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시장의 상인들은 어떤 재래시장보다 더 일찍 아침을 연다. 가장 먼저 가게를 열고 하는 일은 깨를 씻는 일. 커다란 들통에는 깨가 한가득이다. 들통에 깨를 넣고 물이 나오는 호스를 돌리면 깨를 깨끗하게 씻어진다. 과거에는 이런 일도 모두 일일이 손으로 해야 했다. 가마솥에서 깨를 볶고 씻고 모두 엄청난 노동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대를 물려가며 일을 하다 보니 ‘젊은 피’가 수혈되어 여러 가지 혁신이 가게에도 일어났다. 형제참기름집 김상기 대표는 아들의 권유에 따라 깨를 씻는 통이나 다른 장비들을 가게에 들여놓은 뒤로 예전보다 수월하게 일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마트에서 사는 공산품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먹다가 시장에서 직접 짠 참기름과 들기름을 먹으면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 신선하게 즉석에서 깨를 씻고, 볶아 짜는 기름 맛이 공장에서 생산된 기름과 같을 수 없다. 한국인의 밥상에 참기름, 들기름이 빠질 수 없다. 볶음이나 무침 반찬에 마지막 음식에 한 방울 참기름이 들어가면 맛과 풍미가 올라간다. 그냥 계란에 간장, 참기름만 넣어도 밥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참기름을 비빔밥을 비벼먹을 때도 빠질 수 없지만 고기를 먹을 때 기름에 소금을 넣어 먹는 맛도 포기할 수 없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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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기름으로 먹어야 제대로 된 효과 있어

참기름, 들기름은 맛의 품격을 높여주지만 리놀렌산 성분과 ‘오메가-3’ 불포화지방산이 들어있어 다양한 혈관질환을 예방해준다. 최근에는 생들기름을 한 숟가락 아침 공복에 복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발암효과를 낸다고 한다. 뇌건강에도 좋다. 들기름에 들어있는 오메가-3가 백혈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효능은 좋은 기름을 먹었을 때 이야기다. 기름은 양질의 기름으로 잘 가려서 먹어야 한다. 건강한 기름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깨를 깨끗하게 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으로 깨를 볶는 것. 이때 볶는 온도가 중요하다. 과거에는 높은 온도에서 약간 태우듯이 볶았다. 그래야 고소한 맛이 더 나기 때문이다. 높은 발연점에서 볶아 깨가 타게 되면 암 유발인자가 생성된다. 깨를 볶을 때 높은 온도에서 볶으면 벤조피렌 성분이 나오는데 이 성분은 1급 발암물질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는 깨를 고온에서 볶는 기름보다 저온압착 된 기름이 선호되고 있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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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는 과정만큼 요리를 해서 먹는 방식도 중요하다. 들기름과 참기름은 발연점이 170도로 낮다. 튀김과 같이 180도 넘는 높은 온도에서 조리를 하면 ‘아크롤레인’이라는 발암물질이 나온다. 때문에 들기름이나 참기름은 열에 조리하기보다 먹기 전 첨가하거나 무침과 같은 열을 사용하지 않는 요리에 더 적합하다. 좋은 기름을 선별해서 먹어야 하는 것만큼 기름을 잘 보관해서 먹는 것도 중요하다. 들기름은 산패하기 쉬워 공기 중에 접촉되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름의 유통기간은 어느 정도일까? 깜짝 놀랄 일이다. 너무 짧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들기름의 유통기간은 뚜껑을 개봉하기 전 6개월, 개봉한 후에는 1개월을 넘기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기간이 너무 짧다 보니 이 기간을 지켜서 먹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소비할 수 있도록 한다. 어디다 보관하는 것이 좋을까? 들기름도 참기름과 마찬가지로 냉장보관을 해야 한다고 하니 명심하자.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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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골목 안쪽에는 일단 기름집들과는 다른 공간도 펼쳐진다. 바로 로스팅 랩(기름연구소)다. 원두를 로스팅하는 것처럼 깨도 볶는 과정을 겪는다. 그렇게 로스팅한다는 의미다. 로스팅랩 기름연구소는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전통방식으로 기름을 착유할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체험자들은 재료를 먼저 선별하고 세척한 후 로스팅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로스팅된 깨는 식혀 착유된다. 과거에는 소주병에 참기름을 담았지만 요즘은 유리병도 다양하게 골라서 담을 수 있어 위생적이다. 연구소 안에는 참깨와 들깨의 역사가 세계 지도로 표기되어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인간이 기름을 얻었던 과정은 3천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삼국시대 이전에 전파되어 참기름을 먹었던 것으로 기록된다. 이에 비해 들깨는 한반도 토종작물로 조상 대대로 활용했던 것이다. 몰랐던 사실도 알아가고 여러 가지로 유익하다. 이번 주에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기름골목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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