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아래, 그가 내게 웃으며 찾아 왔다
성당 아래, 그가 내게 웃으며 찾아 왔다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3.06.01 0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쿠타이시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쿠타이시의 그 남자

쿠타이시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지아의 중간에 그 도시가 있다고 했고, 우리는 단지 수도인 트빌리시로 향하고 있었으며, 이왕 조지아에 온 김에 한 곳을 더 들려보고 싶었을 따름이다. 쿠타이시에 무엇이 유명한지, 어디를 둘러보면 좋은지는 물론 대충 찾아 보았는데, 구태여 많은 걸 알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도시에서 모르는 채로 있고 싶었다. 조지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는 했지만 쿠타이시의 규모는 부담스럽게 크지는 않아 마음이 편안했고, 너르게 펴진 그 도시에서 다른 생각 없이 걷고 싶었다. 조지아 사람들이 걷는 거리 옆으로 단지 걷고 싶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도시 중앙의 화려한 분수대를 지나 우리는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중심부의 높지 않은, 그래도 중심부의 이름값을 하는 화려한 건물들을 지나 샛길로 들어서면 금방 사람들이 살아가는 편안한 골목이 나왔다. 풀들이 이렇게 저렇게 자라서 흔들리고, 약간 낡은 건물들이 하나씩 이어서 있는 모습들은 조지아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보았던 장면이었다. 그러나 쿠타이시의 골목은 조금씩 더 길게 이어져 있었고, 그 늘어난 길이를 통해 이곳이 다른 곳보다 큰 도시임을 실감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진과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걸어다녔다. 쿠타이시의 언덕에 오래된 조지아 정교회 성당이 있다고 했는데, 그 옥색 성당을 보고 싶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그렇게 조지아의 담백한듯 밍숭맹숭한듯 털털한듯 편안한 거리를 걸어갈 때 어떤 청년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그는 영어를 시원시원하게 하는 호방한 성격의 남자였다. 어디에선가 보았던 인상을 가진, 자아로 충만한 남자 같았던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여행사를 한다며 명함 한 장을 남겼다. 이제 막 여행사를 차려서 운영하려고 한다, 나에게 꼭 연락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관심이 있으면 연락하라, 조지아와 쿠타이시를 찾는 친구들이 있으면 알려달라. 누가 보아도 흔한 호객 혹은 고객 관리처럼 보였지만 그의 태도는 약간 묘했는데, 정말로 연락을 안 해도 전혀 상관이 없는 말투였기 때문이다. 자신감으로 충만한 젊은 사업가라고 해야 할까. 사업이 어떻게 되든 자신이 똑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해 보였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나쁜 인상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가 그를 확신하는 만큼 우리가 그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약간은 느끼한 면이 있기도 해서, 또 아무래도 관광객에게 접근하는 흔한 장사꾼처럼 보이기도 해서 섣불리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말할 새도 없이 그는 그저 명함을 주고 우리가 별 말이 없자 알아서 웃으면서 자기 갈 길을 갔다. 특이한 사람이네, 약간 특이한 느낌이네. 진과 대화를 주고 받으며 그의 명함을 보았더니, 명함에는 여행사의 이름과 함께 영어로 ‘Friandly'라고 적혀 있었다. 친절하다는 의미의 프렌들리를 쓰고 싶었던 모양인데 중간의 알파벳 e를 a로 적어 놓은 것이다. 확실히 약간 나사가 빠진 사람인 건가 싶어서 괜히 웃겼다. 이상하지만 무해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도 쿠타이시를 생각하면 그의 첫 인상이 떠오른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신성은 일상의 문틈 사이로

그 남자를 뒤로 하고 진과 나는 쿠타이시 언덕 위의 성당을 찾아 갔다. 구글맵을 보고 버스를 타고 어떻게 찾아간 그 성당은 정말로 옥색이었고, 지어진 지 1000년쯤 되었다고 했는데, 1600년에 파괴되었다가 다시 지어졌다고 했다. 100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므로 그 긴 시간 동안 지어졌다가 세워졌다가 버려지기도 했던 이 성당이 시간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건물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쿠타이시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오롯이 솟아 있는 옥색 지붕의 바그라티 대성당. 어떤 도시에는 도시를 지키는 언덕이 있다. 세워진 십자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쿠타이시를 돌아보며 우리가 지나쳐 왔을 거리들을 생각했다. 이 성당이 쿠타이시의 상징이라고, 인터넷은 친절히 말해주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마침 일요일이라 성당에서는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개신교의 예배에 참여해 보지는 못했지만, 다녀본 기독교 의식 중에서 나는 정교회의 미사가 가장 좋았다. 가톨릭의 미사는 보다 세련되고 정돈된 느낌이 난다고 느꼈는데, 러시아나 조지아에서 경험한 정교회의 미사는 조금 더 ‘의식’에 가까웠다. 성당의 내부는 인위적인 빛 없이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만 있어 조금 어두웠고, 사제는 사슬로 묶인 연기 나는 작은 통을 흔들며 들어온다. 사람들은 성경의 구절을 노랫말처럼 외우고, 그 음은 명확하고 낮게 울려 퍼지는 화음이 된다. 빛과 소리, 그 모든 것이 성스러웠다. 성스러움의 감각을 설명하는 게 결코 간단하지는 않지만, 갑자기 일상 바깥으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한다는 면에서 정교회의 의식은 그야말로 ‘체험’에 가까웠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가톨릭과 정교회가 분리된 이후, 정교회는 가톨릭에 비해 비교적 예전 기독교의 의식을 지킨듯 보였다. 그 오래된 제의가 풍기는 신성은, 종교의 복잡한 교리를 이해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인도의 갠지스 강에서 진행된 힌두교 종교 의식인 푸자를 보았을 때처럼, 종교에 대한 믿음은 결국 어떤 작은 체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지 바그라티 대성당의 미사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종교를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다양한 종교에는 늘 이런 감각이 담겨 있었다. 문틈 사이로, 일상을 넘어서 있는 곳의 빛이 한 줄기 새어 나오는 듯한 감각. 스테인드글라스와, 불이 담긴 항아리와, 재가 담긴 램프와, 합창하는 사람들의 화음에 담긴 감각.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언덕에서 내려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우연히 아까 본 그 남자를 마주쳤다. 그는 우리에게 웃으며 반갑게 다가왔는데, 여전히 아까와 같은 신나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에게 네 회사 명함의 철자가 잘못되었다고 알려주었는데, 그는 도리어 웃으며 그게 자기가 원했던 바라고 했다. 일부러 철자를 틀리게 해놓으면, 그걸 고쳐주고 싶어서라도 다시 연락하게 되고, 혹은 반대로 자기를 더 기억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새로운 오타 마케팅인가 싶었지만 나름대로 귀엽고 일리도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간이 되면 지금 바로 앞에 있는 그의 집에 우리를 초대하겠다고 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가족들과 살고 있는 그의 집은 2층이었는데, 낮 시간에는 다른 가족들이 집을 비워 아무도 없었다. 약간 예스러운, 그러나 부티나는 집이었다. 생각해 보면 조지아 현지인의 집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그는 자기 여행사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신이 난 채로 집을 소개하는 데 열중했다. 베란다에서는 크고 검은 불독이, 지하에는 역시 조지아답게 와인 저장고가, 2층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고,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는 자기가 어디서 구해온 목도리 같은 걸 둘러보며 우리에게 자랑했고, 와인도 몇 잔 나누어 주었다. 이미 내 안에 있던 그에 대한 의구심은 약간의 귀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천진한 어린 아이의 얼굴. 남자 아이 특유의 확신과 허영심, 관심 받고 싶어하는 마음과 관심을 주고 싶은 호의. 그의 호의 덕분에 우리는 짧은 시간이나마 조지아의 일상을 깊이 둘러볼 수 있었다. 적당히 시간이 흘러 이제 그만 돌아보겠다고 하자, 그는 아무런 내색 없이 우리를 보내주었다. 여행 잘 해! 밝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아쉽게도 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둥그런 얼굴을 다시 보니 그를 한스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한스, 고마웠어. 여전히 그 명함을 쓰는지 궁금해. 나는 너의 일상을 통해 어떤 착한 마음을 보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의 일상에 가끔씩 비치는 작은 신성들을 떠올렸어. 연락처도, sns도 주고 받지 않은 한스를 다시 마주치는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한스를 다시 만난다면 이번엔 그의 집에서 하루 묵고 싶다. 아니면 내 집에서 그를 재우든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