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오징어 게임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뤘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사람이 살아가는데 돈이 다는 아니다. 그런데 불편한 진실은 대부분은 돈으로 해결된다는 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다는 행복조차 “돈이 적어서 그런 것”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유행가처럼 퍼지고 있는 ‘물질만능의 시대’다. 전염병에 걸린 이들에게도 돈은 곧 생명과 직결된다.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순식간에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도 초기 발생 당시 확진자들이 즉시 관련 치료를 하지 못한 경우 순식간에 폐에 감염이 퍼져 사망한 사례가 많았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같이 누구나 응급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경우 사망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선진의료시스템을 자랑하던 유럽이나 미국도 한순간에 확진자들이 병원에 몰리자 의료시스템이 붕괴되자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없어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0’으로 기록된 북한에서 전염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지난 21년 9월에 OTT 사이트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화제작 ‘오징어 게임’에서도 전염병으로 죽어간 가족의 사연을 가진 탈북자 ‘새벽’의 이야기가 전 세계에 공개됐다.
 

ⓒ위클리서울/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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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휩쓴 전염병, 가족을 불태워야 했던 여자

“넌 여기 오기 전에 죽은 사람 본 적 있어?” 여자는 물었다. “어릴 때 우리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어. 마을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 군인들이 시체들을 한 군데 모아서 태웠어. 그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오빠까지 다 불에 탔어.” 새벽(정호연 분)은 함께 구슬치기 게임을 해야 하는 상대 지영(이유미 분)에게 자신의 고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얼마나 참혹했던 광경이었을까. 하지만 너무 많은 죽음을 묵도한 새벽은 그저 담담하게 당시의 아비귀환이었던 상황을 풀어낸다. 지영은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모습이다. 남한에서는 자신이 기억하는 한 그러한 정도의 전염병으로 인해 한 마을의 가족이 전부 몰살당한 없었던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염병은 비위생적이고 낙후된 환경에서 더욱 잘 번진다. 치료제를 구하기 어려운 시스템이거나 전염병의 원인을 모른다면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염병의 관건은 확진자 발생을 막는 격리와 개인위생이 기본적이면서 핵심이 되는 방역수칙이다. 콜레라와 흑사병이 유행했던 13~14세기에도 물을 끓여 먹고 개인위생을 철저하게 하고 환자들을 격리하는 방법만으로도 큰 예방 효과를 나타냈다. 의료시스템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기였지만 이런 방법들은 큰 성과를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어도 격리수칙 및 위생 관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떨까. 새벽이 살았던 북한 시골 마을에서는 전염병이 돌면 대다수는 죽음을 피하기 힘들었다. 의사보다 군인들이 더 많이 전염병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새벽은 그러한 곳에서 자랐다. 병이 퍼지기 시작하면 치료를 하기 보다는 그저 손놓고 앉아있다가 시체 수습을 해야 하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전염병은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예방수칙이 중요하다. 코로나19와 같이 치료제나 백신이 전무했던 시기에도 적절한 치료를 하면 생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의료시스템 하에서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그저 운이 좋아서 각자도생으로 자신만은 살아남기를 바라야 했을 것이다. 그런 처참한 환경 속에서 살다 죽을 고생을 하고 찾아온 남쪽에서는 살기 위해 죽음의 게임을 해야 한다.
 

ⓒ위클리서울/ 넷플릭스

전염병으로 가족을 잃고 게임으로 목숨을 잃는 아이러니

오징어 게임에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성기훈(이정재 분)은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공장에서 십수 년 일하다 공장이 폐쇄되자 파업에 참여했다. 직장을 잃고 난 후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치킨집 등의 자영업. 하지만 장사라는 게 쉽지 않다. 알량한 퇴직금과 모아놓은 돈을 전부 날린 후 그가 택한 것은 경마와 같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일이다. 기훈과 같은 쌍문동에서 자란 조상우(박해수 분)는 서울대학교를 수석입학한 수재다. 증권회사에서 잘못된 투자로 60억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고 자살하려 한다.

새벽(정호연)은 새터민으로 목숨을 걸고 동생과 함께 북한을 탈출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어느 날 게임을 제안하는 이에게 초대를 받고 상금 456억이 걸려있는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오징어 게임이란 과거 어린아이들이 많이 하던 전통 놀이 중 하나로 오징어 머리처럼 생긴 삼각형에 포개진 원 안에 공격수가 들어와 만세를 외치면 이기는 게임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벼랑 끝에 몰려있는 사람들 456명이 자신의 목숨 값 1억원을 두고 최후의 1인의 승자를 가르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다. 기훈과 상우, 새벽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돈이 더 절실한 상태다. 게임을 제안한 이들은 VVIP라는 이름을 달고 이들을 맞이한다. 돈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재밌는 자극이 없던 자들이다. 이들은 온라인 중계로 죽음의 게임에 참가한 이들의 승패에 희희낙락하는 모습이다. 돈 때문에 죽고 죽이는 모습이 모처럼 지루했던 자신들의 일상에 흥미를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죽고 누군가는 돈을 주고 이러한 절망과 죽음의 과정을 산다.

탈락이 곧 죽음인 공포의 게임 중 첫 번째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다.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공격수들은 술래를 향해 걷고 술래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멈춰야 한다. 이 게임으로 456명의 사람들 중 절반이 저격수의 총을 맞고 탈락했다. 두 번째 게임 참가자는 201명으로 줄었다. 이들은 찬반투표를 통해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들 쌓인 빚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게임장 바깥도 ‘지옥’이다. 그래서 생존자 201명 중 180명은 다시 이 지독한 죽음의 경기장으로 되돌아온다. 상우와 기훈, 새벽도 희망을 찾을 수 없어 다시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시작되는 또 다른 게임들. 설탕 뽑기와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를 통해 180명 중 3명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떨어져 죽는다. 여기에 징검다리 건너기에서 깨진 유리 파편을 맞아 중상을 입은 새벽을 상우가 급습해 죽이면서 마지막 게임 오징어 게임은 상우와 기훈의 둘의 혈전으로 치닫는다.

새벽은 유리 파편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자신이 죽었을 때 홀로 남을 어린 남동생을 걱정한다. 전염병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오빠를 잃은 기구한 운명의 그녀다. 한가족이 손도 못 써보고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탈출한 그녀는 이제 게임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이 없으면 죽는 것과 같이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가족을 찾았던 그녀는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전 세계 1위에 랭크되고 74년 전통의 에미상을 받는 등 화려한 행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일들이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씁쓸한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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