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빌리시를 사람으로 기억했다
나는 트빌리시를 사람으로 기억했다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3.07.04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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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트빌리시1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습기 없는 물의 도시

그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게 아쉽다. 당장 구글지도를 켜서 확인해 보면 알 수야 있겠지만 그토록 좋은 기억을 남기고 온 곳이 곧바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특별한 일이 있었냐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몇몇 사람들을 만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고, 돌아 왔을 때도 그 모습 그대로였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게스트하우스를 떠올린다. 물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만 있는 것 같은 게스트하우스. 약간 반지하를 닮아 밤마다 창문 옆으로 취객들의 소음이 들리고, 배게가 너무 높아 밤마다 목이 아파 뒤척거렸지만 그래도 좋았던 그 게스트하우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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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는 조지아 여행을 결심하기 전부터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던 조지아의 도시였다. 수도였던 까닭도 있겠지만, 내가 트빌리시를 처음 접한 것은 한 방송이었다. ‘세계테마기행’인지 ‘걸어서 세계 속으로’인지 아무튼 한 남자가 모르는 도시를 혼자 기웃거리며 중간중간 국어책 읽는 듯한 톤의 나레이션을 덧붙이는 친근한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여행 오기 한참 전 나는 내가 직접 트빌리시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한 남자가 트빌리시라는 도시에서 환대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현지인들의 환대가 나를 들뜨게 했다, 어색한 나레이션은 계속 이어지고, 전통복을 입은 조지아 사람들이 떼지어 춤추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은 풍성한 치마를 휘날리며 웃는 조지아 사람들의 얼굴. 여행 프로그램을 한두 개 본 것도 아닐 텐데, 조지아와 트빌리시를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그 환대의 분위기가 그만큼뚜렷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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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타이시를 떠나 진과 함께 트빌리시로 왔다. 나는 어차피 동쪽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고, 트빌리시 위쪽에 카즈베기라는 산골 동네도 가보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트빌리시는 꼭 가보고 싶었다. 진은 트빌리시 이후에 유럽으로 바로 들어갈지, 우크라이나를 들렸다가 갈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서 우리의 갈 길이 정해지고 있었다. 항공편 여러 개를 놓고 고민하던 진은 우선 트빌리시와 카즈베기까지는 나와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그 여행을 마치고 진은 결국 우크라이나로 떠났는데,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한번 보자는 말을 아직도 서로 지키지 못했으니 그때 우리는 한동안 한참을 마주하지 못하게 될 마지막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함께 하는 여행이 막바지에 닿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고, 딱히 아쉬워하지 않았고, 막상 떠나고는 조금 아쉬워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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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는 물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기분 좋은 생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물의 도시’라는 이름에는 어떤 습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왜인지 초록색과 푸른색 산뜻함이 느껴졌는데, 내 느낌 그대로 트빌리시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보낸 여름의 트빌리시였기 때문일까, 트빌리시는 너무 무덥지도 너무 어둡지도 너무 습하지도 않은, 빛나는 햇볕 속에 오래된 나무들의 잎들이 초록색으로 빛나고, 그 밑의 그늘에서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는 공원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적당한 넓이의 강이 낮게 흐르고, 마냥 깔끔하기만 해 재수없는 인상을 풍기기도 하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는 다르게 동구권 특유의 투박한 분위기가 쌓인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느꼈던 우직하고 거대한 느낌이 아닌, 무척 섬세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었다. 고상한 예술과 반대편에 있는 거리의 예술이 분분하고, 그 감각이 너무 섬세하고 예민해지지는 않도록 동구권의 투박함이 도시의 밑바닥에 깔린 이상한 자유로움. 누군가 내게 긴 여행 중 기억에 남는 도시가 있었냐고 물을 때면 종종 트빌리시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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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받지 않는 마음

아마도 숙소 예약 어플인 부킹닷컴에서 적절한 가격과 리뷰를 보고 찾아 들어갔을 그 게스트하우스에는 중정 같은 것이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건물 내부에 널찍한 정원이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그렇다고 건물 사이에 둘러쌓인 중정 같은 느낌도 아니고, 마치 방문처럼 어느 문을 열면 갑자기 테라스인지 정원인지 하는 야외 공간이 나왔다. 거기에는 혼자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에 구슬 같은 똥을 싸놓는 토끼가 한 마리 있었다. 너무나 희게 빛나는 토끼 한 마리. 그 토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러시아인 다냐의 토끼였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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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조지아와 러시아의 전쟁 이후, 조지아 사람들이 러시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친러파와 반러파의 의견이 대립하는 것처럼도 보였는데 자세히 찾아보지는 못했다. 다만 우리가 처음 트빌리시에 도착한 날에도 의사당 건물 앞에서 시위가 한참이었다. 나중에 그 시위가 반러 시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일에 대해 다냐에게 물어보았던 것 같다. 토끼를 쓰다듬고 있던 다냐는 무슨 말을 했던가. 다냐는 아마도 국가와 국가의 일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자기도 종종 위협을 느낄 때가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며 금발의 머리를 털었던 것 같다. 다냐는 약간, 무엇인가에 구애받지 않을 것 같은 몸짓으로 움직이는 사람 같았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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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냐와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가 인상에 깊게 남았다. 함께 만나 새로운 기억을 주고 받게 될 사이가 아니라,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잠시 스쳐 지나는 느낌이 강했다. 다냐는 진과 나에게 예의바르지만 사무적이지는 않았던 호의를 베풀었는데, 듣고 보니 이곳에서 좋은 한국인을 만났다고 했다. 그 한국 남자는 품위 있고, 예의 바르고, 너무나 멋진 사람이었다고, 어느 날 함께 맥주를 먹다가 다냐는 말했다. 다냐는 추억하고 있었다. 그 한국 남자를 좋아했을까? 떠올리면 짙게 남는 추억을 다 돌아보고 다시 우리를 다정하게 쳐다보며, 그러나 그 추억을 무언가로 덮어 씌우고 싶지는 않다는 듯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다냐가 나는 좋았다. 자기를 잘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아닌가, 괜히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다냐가 누군가에게 선물 받아 자기가 지켜내고 있다는 토끼를 가만히 쳐다보기도 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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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함께 묵는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방의 사람들은 계속 바뀌었지만, 우리가 카즈베기를 다녀오기 전과 후, 태국인 바툼은 계속 거기에 있었다. 태국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심적으로도 물적으로도 여유로워 보였고, 그렇기에 그 어디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소탈하게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휴가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편하게 자른 빡빡머리에 수더분하게 티셔츠를 하나 걸치고 웃으며 기타를 치던 그의 모습을 나는 좋아했다. 포트에 물을 끓여 그가 준 태국 라면을 먹으면서, 함께 마트에 슬리퍼를 끌고 가서 과일을 둘러보면서, 언젠가 태국에 오게 되면 자기가 운영하고 있는 숙소에 와서 묵으라던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한국에 오대산(설악산도 아니고)에 온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트빌리시를 점점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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