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 김혜영 기자
  • 승인 2024.02.02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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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탐방기] 평창국제평화영화제 4화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전경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전경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횡계리의 두 번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장대비는 끊이지 않고 계속 내렸다. 리셉션이라 불리는, 게스트들을 위한 작은 파티가 취소됐다. 천막 아래를 가득 메운 각각의 테이블에는 음식과 음료가 이미 가득했다. 오후께 케이터링 업체에서 준비하고 나를 포함한 단기 스태프들이 정성스럽게 배치해 둔 것이었다. 설마 다 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일까. 걱정하던 차에 결정권을 지닌 실무자들이 등장했다. 폭우가 쏘아올린 큰 공들을 수습하시느라 바쁜 와중이었다.

“나머지 업무는 우리가 할 테니까, 어서 퇴근하세요.”

“비도 오는데 너무 고생했어요.”

예상치 못한 초과 근무가 마음에 걸리신 듯했다. 원한다면 음식과 음료수를 먹어도 된다는 배려를 마지막으로 남기고서는 다시 빗속으로 성큼성큼 사라지셨다.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지만 무언가를 묻고 답을 들을 여유도 없었다. 잠시 눈치를 보던 우리는 슬금슬금 부침개와 메밀전병을 집어 먹었다. 기껏 준비한 음식이 빛을 보지 못하는 줄 알고 황망한 표정을 짓던 사장님도 금세 활기를 되찾으셨다. 미처 포장을 뜯지 못했던 떡과 과일도 전부 내어주셨다. 아직도 비가 오는 가운데,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먹는 새참은 정말 특별한 맛이 났다.
 

타인을 걱정할 수 있는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제 막 개막식을 치른 날이지만, 꼭 폐막식 뒤풀이 같았다. 술을 마시거나 억지로 흥을 돋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부분이 대학생인 스태프들은 머뭇거리는 동료 앞에 음식을 놓아주고, 너무 맛있는 음식은 한 번씩 맛을 볼 수 있도록 양보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슷한 나이였던 과거를 돌아보게 됐다. 그때 나는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성숙함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던 것 같다.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조차 어렵다. 어떤 공동체 안에 속한다는 것은 타인의 삶을 지켜보고 배울 기회가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부덕함에 대한 염치 때문에 이제야 늦깎이처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함께 웃고 떠들던 휴식 시간이 슬슬 끝나갔다. 하나둘씩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챙겼다. 더 늦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 내일의 일과를 준비할 수 있었다. 총괄팀장님은 일일이 얼굴을 확인하며 수고 인사를 건넸다. 내일은 늦게 출근해야 한다는 공지도 힘을 주어 강조하셨다. 우리는 서로가 챙겨준 작은 머핀과 조각난 수박이 가득 담긴 종이컵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자진해서 초과 근무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장 낮은 직급에 속했지만 타인을 걱정할 여유가 있었다. 상급자들이 더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등바등 분투하지 않아도 모두의 몫이 충분했다. 긴장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넉넉하게 서로를 챙길 수 있었다. 환경이 그러했고, 사람들의 마음이 그러했다.

 

쿠오바디스, 아이다 포스터
'쿠오바디스, 아이다'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이웃의 아픔을 외면했다

국제평화영화제여서 그런지, 아이다가 생각났다. 그녀는 보스니아 내전을 그린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의 주인공이다. 선생님이었던 삶을 뒤로 하고 UN군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아이다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곤 한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겁 없이 뛰어들고, 이웃을 도우려 철옹성 같은 상사에게 끈질기게 매달린다. 그러나 동분서주하는 것은 그녀뿐이다.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서 아이다는 마을과 이웃, 끝내는 가족을 지키는 일에 실패한다.

실제 사건인 스레브레니차 학살의 무게감도 상당하지만, 마을과 이웃 등을 하나하나 포기하는 아이다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무척 고통스럽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난민을 보며 기함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가족을 찾던 아이다, 뜨거운 절규와 냉정한 명령 속에서 오직 남편을 살려둬야 하는 이유만을 피력하던 아이다, 지푸라기를 붙잡듯 애원하는 이웃을 외면하고 아들을 숨기려 애쓰던 아이다. 드라마틱한 상황이지만 정작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 시간도 없이 호흡을 고르기에 바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녀는 잠시 고민하거나 눈물을 흘릴 여유도 없다.

 

엠엔엠 인터내셔널
'쿠오바디스, 아이다'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Quo vadis, Aida

영화의 이름은 신에게 어디로 가시냐는 물음 뒤에 아이다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녀 또한 절박한 희생자지만, 탱크에 마을이 짓밟힌 주민들은 그녀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UN군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아이다뿐이다. 그녀의 위치와 영화의 이름을 연관하다 보면 그 뜻이 의미심장해진다. 난민이 되어버린 주민들을 아이다가 마치 출애굽기의 모세처럼 생명이 있는 곳으로 이끌고, 이 모든 기회를 쥐고 있는 신(영화에서는 UN 혹은 다른 국가들로 비유될 것이다)과의 관계에서 중개자 혹은 전달자가 되는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모세는 성공하고 아이다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다는 선지자도, 영웅도 아니지만 죄인도 아니다. 그녀와 합심하여 도움의 손을 뻗는 사람이 있었다면, 학살을 눈감지 않는 국가가 있었다면 그녀는 더 많은 선택지 속에서 모두를 챙겼을 것이다. 원한 적 없더라도 기꺼이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고 제 가족만을 구하려던 아이다의 선택은 이기적이라 명명할 수 없는 단념이다. 그녀처럼 큰 사람이 마모되고 조각나던 과정을 떠올리면 내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성숙하다 자부한 행동은 얼마나 큰 행운을 바탕으로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나라면 어땠을까를 상상할 필요도 없다. 아이다는 고민했지만,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나의 가족만을 챙겼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만큼 용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새삼 내가 서있는 영화제의 이름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세계인이 화합하는 올림픽 이후, 그 거대한 이름 아래에서 평화의 뜻을 이어온 영화제다. 그런 단어들은 익숙하리만치 반복하고 강조해도 좋다. 그것만으로 이 축제의 가치는 충분하다.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분위기 속에서 함께 하는 삶의 즐거움을 다시금 감각하는 일. 평화와 공존을 담은 영화를 통해 그 가치를 음미하는 일.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나는 관객이 아니었으므로 실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고,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운영되고 진행된 일들도 알 수 없다. 적어도 함께 비를 맞으며 일한 사람들은 그 의미에 반하지 않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안다. 평창의 넓은 들판이 나를 다시 사랑하게 했고, 어떤 얼굴들을 떠올리게 했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냐고 물을 수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저마다의 삶과 이야기가 가득한 우주

끝없는 생각들을 뒤로 하고, 호텔에 가까워질수록 긴장이 풀리고 미뤄둔 피로감이 몰려왔다. 스태프들 모두 말수가 줄고 볼륨이 작아졌다. 만원 직전까지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는 비 냄새와 적막만이 가득했다. 귓가에는 사정없이 내리던 빗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았다. 층층이 문이 열릴 때마다 룸메이트끼리 둘씩 짝을 지어 내렸다. 다 함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수고하셨다, 고생하셨다는 인사만은 힘차고 밝게 외쳤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질척이는 신발과 양말부터 벗어 던졌다. 온몸이 탈수하지 않은 빨랫감처럼 무겁고 축축했다. 살갗에 달라붙은 옷들의 물기를 짜낸 뒤 옷걸이에 걸었다. 자리가 협소해 창가에도 펼쳐두었다. 두 사람의 옷이 모이니 양이 꽤 많았다. 와중에 샤워를 하려던 J가 수건이 부족하다는 비보를 전했다. 아껴썼지만 이제는 수건을 말릴 공간도 없었다. 여분이 있을까 걱정하며 함께 로비로 내려갔다.

다시 찾은 1층에는 새 수건을 받으려는 동료들이 모여 있었다. 다른 업무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구석 모퉁이에 줄을 섰다. 그들은 차례대로 수건을 받고 감사 인사를 잊지 않은 채 줄줄이 퇴장했다. 뽀송한 수건을 두 손으로 귀하다는 듯 받아 든 모양과 행복한 미소가 사랑스러웠다. 아직 이름을 외우지 못했지만 얼굴이 눈에 익어갔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저마다의 삶과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을 한 명 한 명이 궁금해졌다. 다만 영화제를 무사히 치르는 것이 중요하므로 코로나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따로 자리를 가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즐겁게 지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수고 인사와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는 것,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이른 정을 간직할 수 있었다. 구름이 걷힌 내일은 별이 더 빛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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