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버섯 캐는 할머니

[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2019-09-30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pixabay.com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남편은 2박3일 제주도로 연수가고 나 혼자 오늘도 산에 올랐다. 가을이라 솔솔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기분 좋게 샤샤 훑어주고 간간히 들려오는 산새소리의 청량함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 할머니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한참 산을 오르고 있는데 길옆 수풀에서 할머니 한 분이 까만 비닐에다가 뭔가를 부지런히 주어 담고 계셨다. 처음엔 도토리나 밤을 주우시나 보다 그랬다.

“그거 주워가면 다람쥐가 겨울에 굶어요. 할머니!”

뭐 이런 참견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눈길만 흘큼 주고 지나가려했다. 그런데 내 눈에 휘딱 들어온 건 할머니 손에 들린 버섯이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말해주었던 광대버섯 같이 생겼는데 먹으면 큰일 나는 독버섯이었다. 아 진짜! 요즘 슈퍼만 가도 먹을 수 있는 버섯이 오만가지인데 뭐 하러 산에 와서 저런 위험한 걸 따 가시나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할머니를 말려야겠다 싶었다.

“할머니. 그거 먹는 버섯 아니에요!”

“(휘딱 한번 돌아보더니) 나도 알어 못 먹는 거.”

“(이 할머니 킬러인가?) 그럼 갖다가 뭐 하시려구요!”

“사람 다니는 길에 피었자너. 눈에 띄길래 그냥 캐다 버릴라 그래. 애들이라도 손대고 눈 비벼봐. 클나.”

 

산에는 이름모를 버섯들이 지천이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사람 다니는 등산로에 자란 독버섯을 행여 누가 따다 먹거나 애들이라도 만질까봐 캐다 버리시려는 거였다. 할머니, 와 씨… 갑자기 코가 찡 눈물이 핑글 돌았다. 아름답다 저 마음. 할머니 예쁘고 착한 사람이네 진짜. 못 먹는 버섯을 따러 다니는 이상한 할머니라니!

저렇게 쭈그리고 앉으면 무릎도 아프실 텐데 말이다. 힘드니까 그만하시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돌아서서 다시 산을 올랐다. 뭔가 엄청 아름다운 꽃을 본 듯도 하고 뭔가 엄청 따뜻한 풍경을 바라본 듯도 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으로 다시 산을 오르다 내 앞에 걷고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됐다. 한 아이는 등에 업고 또 다른 아이는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젊은 아빠. 그리고 몇 발짝 앞에서 빈 몸 빈 손으로 가볍게 걸어가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내내 아이 둘 돌보느라 힘들었을 아내 대신 두 아이를 업고 걸려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옛날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거다. 주말이었고 남편은 집회에 나가고 없었다. 심심하다며 아파트에서 쿵쿵 뛰는 에너자이저 두 놈을 데리고 광교산에 올랐다. 신나게 한참을 뛰어올라가던 둘째가 저만치서 갑자기 우뚝 서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리를 꼬는가 싶더니 산 한쪽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일이다. 누구나 부모는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동환아. 너 왜 그래? 킁킁.. 헉! 너 똥 쌌니?!”

평소에 장이 약했던 아이가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을 두개나 먹더니 그만 실수를 해버린 거다. 큰아이는 이미 산 위로 뛰어올라가 버린 뒤라 보이지도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던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갈아입힐 옷 가지고 여기로 빨리 좀 와줘.”

“나 사람들하고 집회 끝나고 한 잔 하고 있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지금 올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일단 나는 큰아이를 잡아오기 위해 산위로 뛰어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찬 뒤에야 겨우 큰애를 따라잡았다. 손을 끌고 둘째가 있는 곳까지 뛰어내려왔다. 아이는 쪼그려 앉아 떨고 있었다. 둘째를 업었다. 산 밑까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집에 가서 빨리 씻기고 싶었지만 냄새 때문에 버스를 탈 수 없어 그냥 걸었다. 하지만 집까지 걸어갈 거리가 아니었다. 택시를 잡아 사정사정을 했다. 요금에다 세탁비 까지 드리겠다고. 하지만 고개를 젓고 가버리는 택시 두 대를 보내고 나자 눈물이 터져버렸다. 내가 울자 큰아이가 택시를 잡겠다고 찻길가로 뛰어갔고, 나는 그 아이를 잡으려고 또 뛰었다. 그때 등에 업혀있던 둘째가 내 귀에다 대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미안… 울지 마.”

 

아이를 업고 걸려서 산을 오르던 아빠의 뒷모습. 마치 순례자의 뒷모습 처럼 숭고하게 느껴졌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집에 와 목욕을 시키고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저녁을 먹여 재우는 동안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입을 꾸욱 다물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에게 화가 나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 때문에 그때는 아이의 감정까지 살피지 못했다. 나는 그 일이 오늘까지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괜찮아”라고 따뜻하게 말해줬어야 했는데 말이다.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조금 더 보탬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늘 바빴던 남편이지만 럭비공 같은 아들 둘 키워내느라 나 혼자 동동거리며 울 때도 참 많았다. 그 때문인지 지금 내 앞에 보이는 저 아내가 나는 참말로 부러웠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는 얼굴에서 조금 전 만났던 독버섯 캐던 할머니의 미소를 보았다. ‘남을 위한 배려’는 저렇게 사람 얼굴에서 빛이 나게 만들고 예뻐 보이게 만드는 구나….

욕심과 아집과 어리석음에 쩔은 못난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런 시국에 얼굴에 시멘트를 쳐 발랐는지 세상 근엄하고 굳건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몰려다니며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고 추한지조차 모르는 무리들. 같은 인간 참 다른 얼굴들이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할머니가 따간 독버섯 개수만큼 산삼의 기운이 되어 오래오래 건강하시라고 빌어드렸다. 힘들었을 아내 대신 아이들 업고 걸리며 열심히 산을 오르던 그 젊은 아빠도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리고 어디서든 대박나라고도 빌었다.

도대체 가을은 어쩌자고 이렇게 자꾸 아름답냐 말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두 달만 이렇게 가을을 만끽하다 놓아주고 싶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