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현 다테에 있는 응급가설주택에는 많은 분이 떠났습니다. 가설주택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는 부산에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특히 도요다 나오미 사진가가 저를 부산에 있는 고리 핵발전소와 신고리 핵발전소를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사진가라고 소개하니 더욱 반갑게 두 손을 잡고 맞아 주셨습니다.할머니는 저를 보고 단번에 “속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해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8년이 흘렀다”며 “값싼 전기라는 말에 속았다”고 한탄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우리는 과학이 무섭다”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설 명절 연휴 바로 전날인 2월 1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핵발전소 4호기의 운영허가안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이번 원자력안전위원회 의결이 위원 4명의 회의로 결정된 점은 충격적이다.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인 원안위 위원 중 현재 4석이 공석이며, 국회 추천(야당) 위원 2명의 임명동의안이 작년 연말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임명절차를 밟지 못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총장과 여당 추천 위원 1명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 회의엔 1명이 불참해서 4명만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원자력안전위
설날에 합의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이에 따라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측은 설날에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합동 차례와 기자회견을 하고, 오는 9일 고 김용균 님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어머니는 “지금도 용균이 동료들은 생사를 오가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들이 저 같은 아픔 겪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부산에서는 청년들이 매주 토요일 서면 쥬디스 태화 앞에서 고 김용균 님의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추모제에서 부산청년유니온위원장인 하정은 씨가 고 김용균 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평생 여성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로 사셨던 김복동 할머니께서 1월 28일 영면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 달라”고 말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 불어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수요시위에 참여하셨습니다.14살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갔던 할머니는 60대가 되어서야 자신이 일본군 성 노예로 끌려갔던 피해자임을 고백했습니다. 그 이후 할머니의 삶은 일관되게 평화와 인권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일본군 성 노예 피해자로서만이 아니라 일본의 전쟁범죄를
천주교는 철저히 여성을 타자화했습니다. 여성은 곧 죄인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여성의 사제직을 수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오랜 낡은 전통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시대에서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촛불혁명정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촛불혁명조차도 사유화한 발언입니다. 역사적 통찰과 깊이가 없는 일방적 발언이지요. 문재인 정권이 촛불혁명정권이냐 아니냐는 민중이 판단할 일이고, 역사가 판단할 일이겠지요.지금 우리는 또 다른 고통의 시대를 걷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분명히 노동 중심이 아니라 재벌 중심의 정권입니다. 이
그들이 땅을 밟았다.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고공 위 하늘 감옥에서 돌아왔다.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새들도 울고 나무들도 울었다.그들은 그들의 걸음으로 올라갔고그들은 그들의 걸음으로 내려왔다.살기 위해 올라갔고살기 위해 내려왔다.408일을 하늘에 있었고408일을 땅 위에 있었다.426일을 하늘에 있었고426일을 땅 위에 있었다.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우리는 승리한다는 믿음 하나로모질고 질기게 버텨 온 노동의 숫자다.살아 살아서 땅을 밟았다.함께 울고 함께 웃던 동지들의 힘으로함께 먹고 함께 굶던 동지들의 힘으로그 뜨거운 연대의 힘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꽃은 마을입니다.마을의 복지관은 특정 종교와 특정 재단의특정 목적을 위한 사유화의 대상이 아닙니다.마을의 복지관과 복지관의 노동자들은 마을의 소중한 공공재입니다.공공재는 민간에 위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공성을 강화해야 합니다.공공재의 위험한 외주화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그럼에도 특정 재단의 특정 이사장의 특정 목적을 위해마을의 복지관과 노동자들을 사유화하려는A재단과 이사장은 물러가야 합니다. 이사장은 복지관 위수탁이 결정된 후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것이 위수탁의 원칙임에도12월 14일(금)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의 복지관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구청으로부터 위수탁으로 운영하던 모 학교법인의 사정으로 위수탁을 철회해서 다른 법인이 2019년 1월 1일부로 위수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위수탁 심사 과정에서 내정했던 시설장의 전문적 운영 방침과 발표 등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법인이 시설장과의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공채라는 이름으로 시설장을 새로 채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공정하고 평등한 민주주의적 방식인 ‘공채’라는 허울 속에는 법인의 검은 그림자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새로 위수탁을
오늘 금속노조 경남지부 파인텍지회(지회장 차광호)가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와 만난다고 합니다. 박준호, 홍기탁 조합원이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고공의 하늘감옥에서 411일을 맞는 날에 들려온 소식입니다.차광호 지회장은 2015년 7월 8일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현 파인텍)에 있던 지상 45미터 굴뚝농성장에서 408일 만에 땅을 밟았습니다. 최장기 굴뚝농성 기록이었습니다. 회사와 지회는 신규 설립법인에 해고자 11명을 복직시키고, 단체협약을 승계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이 단체협약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16년 1월
석포 영풍제련소 제3공장의 역할은 분명하다. 석포 영풍제련소 1, 2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슬러지들을 처분하는 시설로 제3공장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3공장은 1, 2공장에서 배출된 대규모 폐슬러지들을 다시 가공해서 금과 은, 인듐 등의 귀금속을 추출한다. 그 후의 폐슬러지들은 석탄을 이용해서 태워 버린다. 태울 때 나오는 기체는 대기로 배출하고, 다시 물과 모래를 섞어서 거른 뒤에 하루 동안 대형 수송차량에 실어 두었다가 시멘트 공장으로 이송한다. 이 마지막 폐슬러지들은 산업폐기물 재활용이라는 이름으로 상품으로까지 등록되어 시멘트
2014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영풍제련소 문제가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국회의원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한정애 의원실은 (주)영풍 석포제련소 주변지역 중금속 오염 실태를 보고하면서 영풍제련소가 폐수를 무단방류하는 것을 확인하고, 성분을 직접 측정한 상황에서 환경부에 전체적인 토양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영풍제련소 인근 석포초등학교에서 토양오염을 측정한 결과 각종 중금속이 기준치를 수배 초과하고 있고, 농작물에서 검출되는 중금속 수치가 심각하므로 환경부에 주민 건강에 대한 유해도 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
영풍제련소는 양파 껍질입니다. 우리는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듯 영풍제련소의 과거와 현재를 집요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해방 전후사 그리고 5.16쿠데타 이후의 ㈜영풍의 성장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영풍의 자본이 어떻게 석포를 소유하고 낙동강을 소유했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제련기술자로 시작했던 영풍 자본이 어떻게 자연생태계와 시민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침해하고, 어떠한 비리와 만행을 통해 지금의 ㈜영풍을 일구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 천민자본주의가 권력과 결합하여 얼마나 쉽게 절묘한 ‘조
자본의 끝없는 탐욕은 물의 고갈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은 참담했습니다. 나쁜 정치인들과 못된 토건세력의 탐욕을 위해 전국의 강은 황폐화되었습니다. 4대강 사업의 선전전에 동원된 거짓 전문가들은 자연을 보존과 미래세대의 벗으로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연을 오로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았습니다.낙동강 최상류인 봉화군 석포면의 영풍제련소는 상상하기 힘든 충격 그 자체입니다. 1970년부터 48년간 지역 주민을 기만하고, 온갖 불법으로 자연과 노동을 착취한 결과는 참혹함 그 자체입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제련소를 다녀왔습니다. 부전역에서 석포역까지는 약 6시간이 걸렸습니다.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영동선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영남 지방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빠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가을 풍경 안에는 슬픈 낙동강이 함께했습니다.영풍제련소의 역사는 연화광업소로부터 시작합니다. 1930년대 일제가 연화광업소에서 소규모의 아연을 채굴하였습니다. 일제가 패망하고 철수한 뒤 1961년에 영풍광업주식회사가 인수하면서부터 대규모 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영풍광업주식회사는 주로 원석을 수출하였으나, 석포에 영풍제련소
안동댐을 다녀왔습니다.먼저 안동댐의 크기에 놀랐습니다. 그 다음으로 안동댐 때문에 조성된 인공호수인 안동호의 풍광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가장 놀라웠던 것은 풍광에 가려진 안동댐 전 구간에서 나타나는 녹조였습니다. 특히 도산서원이 있는 안동댐 상류 지역의 상황은 참혹했습니다. 마치 유화 물감을 풀어 놓은 듯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참담한 녹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산서원의 단풍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낙동강사랑환경보존회 이태규 대표는 필자를 붙잡고 “1300만 국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낙동강 상류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독극물과 중금
국내 핵발전소의 격납 건물에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영광 한빛 핵발전소 4호기뿐만 아니라 2호기에서도 숱한 공극을 발견했다고 합니다.지난 1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더 충격적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한국전력컨소시엄이 짓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핵발전소 1호기에서부터 4호기에 이르기까지 핵반응로(원자로) 격납건물 벽 안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발견되어 보수공사가 진행 중임을 밝힌 것입니다. 핵반응로 격납건물은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2016년 완공된 영주댐의 목적은 수질개선이었다. 4대강 사업의 하나로 영주댐을 건설하는 데 1조 1000억 원이 투입됐다.낙동강의 수질개선을 위한 영주댐이 완공된 뒤, 영주댐은 ‘녹조 배양소’가 되었다. 영주댐은 이미 완공 첫해인 2016년에 이어 2017년 여름까지 심한 녹조가 발생했다. 결국 시험담수도 포기하고 영주댐의 수문을 열었지만, 수질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영주댐의 건설로 ‘운포구곡’이라 불렀던 사행하천의 전형적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던 내성천의 비경은 완전히 사라지고 황폐화되었다. 금강마을과 같이 100
해마다 추석이 되면 고향 땅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970년, 작은 전기 공장 하나를 짓는다고 고향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입니다. 마을 아이들은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고향 땅을 두고 온 사람들입니다.코흘리개 철부지 어린아이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실 때, 눈물을 흘리며 “고리에 가고 싶다”라는 말씀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동무들과 뛰어놀던 고리의 황금빛 백사장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소금강을 방불케 하던 아름다운 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바닷가에 울창했던 소나무 숲과 기암괴석은 여전히 변함없이
대밭을 걸으며자연의 살을 만져 보고자연의 숨을 느껴 보고자연의 소리를 듣기 위해비우고 낮아지고 작아지길 기도합니다.
KTX 승무원들의 눈물겨운 복직 투쟁이 끝나고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생각에 웃을 수 없었다는 KTX 김승하 지부장은 대한문 분향소로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김승하 지부장은 쌍용자동차 김득중 지부장의 손을 꼭 잡고 “그동안 우리는 쌍용자동차 동지들을 생각하면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복직의 기쁨을 누리고 표현하며 웃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10년의 싸움, 10년의 눈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