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노회찬이 쓰는 난중일기

 

5월 6일 (금) 비


<불교신문>에서 석가탄신일 특집으로 청탁한 원고 25매를 겨우 끝내다. 

시간에 쫓기며 쓰다보니 달리는 말 위에서 글을 쓴 느낌이다.


올해의 석가탄신일 슬로건은 <우리도 부처님 같이>와 <나눔으로 하나 되는 세상>이다.

나눔으로 하나 되는 세상은 불교에선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바다이고 세속에선 <복지국가>이다.


10시 인터뷰 전문기자인 지승호씨가 찾아오다.

이번엔 <인물과 사상>을 위한 인터뷰다.

작년 4.15총선을 두달 앞두고는 서프라이즈의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났다.


그는 잘 준비된 인터뷰어이다.

인터뷰이에게 직접 물어봐야만 하는 것 이외엔 모두 사전에 파악하고 온다.

준비가 부족한 인터뷰어들은 인터넷만 뒤지면 금방 알 수 있는 것까지 묻는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어떤 내용이죠?>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12시 10분 주한 프랑스대사관 오찬모임에 가다.

프랑스와 데스쿠엣 주한 프랑스대사가 한불친선의원협회 회장단을 초청한 자리이다. 송영길, 고진화의원 등 세사람이 초청되었다.

프랑스측에선 장뤽 말랭 프랑스문화원장과 두 참사람이 배석했다.


건물 칭찬부터 하였다.

1961년 김중업씨가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저는 한국 건축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이다. 2년 전 권영길 당 대표, 최순영 부대표와 함께 왔을 때도 내가 건물 칭찬을 하자  데스쿠엣대사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었다.

지금 프랑스의 집권당은 우파인  국민운동연합(UMP)이고 프랑스와 데스쿠엣대사는 자신의  말대로 우파 정치인이다. 그러나 2년 전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인 것은 그와 대화할 때 마치 민주노동당 당원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노사문제, 사회복지,  한미관계, 이라크 파병문제, 빈곤문제,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만이 아니라 그가 속한 우파정당까지도 열린우리당보다 훨씬 좌파적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개혁정당이라 자부하면서 그래서 어떤 경우엔 보수정당이라는 규정마저도 거부하는 열린우리당이 유럽의 보수정당보다도 훨씬 오른 쪽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중도우파 로 보이는 것도 그만큼 한국의 정치지형 전반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좌파인플레이션 현상에 다름 아니다.


15시 문효남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찾아오다.

대선 불법자금 수사 때 대검 수사기획관으로서 안대희 중수부장과 함께 이름을 떨쳤고 그 전에는 마약과의 전쟁에 신화를 남긴 사람이다.

안대희 고검장과 마찬가지로 얼굴만 봐도 검사임을 알 수 있는 강골형이다.

그러나 검찰측의 답변이 뻔할 것 같아 면담을 사양했는데 결국 들어보기로 하였다.

 

수원지검 조사부의 한 검사가 삼성전자에서 고소한 사건을 직접 맡아 수사하고 기소한 후 이 재판이 계속되던 중에 삼성전자의 상무보로 취업한 사건 때문이다. 지난달 법사위에서 법무부장관에게 이 문제를 거론하며 공직자윤리법 위반여부를 추궁한 것에 대한 해명이다.

검찰은 현재의 공직자윤리법 취업제한 조문으로는 이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검사의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대기업을 수사하던 중견검사가 수사기법을 지낸 채 해당 기업으로 취업하는데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법문을 심층 검토하되 필요하다면 법률개정을 추진키로 하다.

  

19시 공무원노조 원주시 지부의 초청강연에 참석하다.

원주시지부는 지난해 11월 공무원노조 파업찬반투표 사태로 20명이 파면, 해임 당하는 등  모두 395명이 징계처분을 당한 대량살상극이 벌어진 현장이기도 하다. 지부장은 지금 감옥에 있고 얼마전 감옥에서 나온 도본부장이 따뜻하게 맞이한다.


공무원노조에 관한 한 노무현정부는 교사가 웬 노동자냐며 전교조를 탄압했던 노태우정부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한국이 공무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하여 OECD에서 이 나라를 특별감시국으로 지정을 한 지 수년째인데도 누구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정부가 앞장서서 공무원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광분할 때 열린우리당 386출신 중에서  <그래선 안된다>며 이의를 제기한 의원 한 사람 없었다.


구속된 지부장의 부인을 포함한 가족대책위 성원들의 표정도 밝다. 한 해고자는 스무명이나 해고되어 외롭지 않다며 웃는다.

횡성에서 민주노동당 준비위를 만들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결혼한  따님과 사위와 함께 왔는데 모두가 당원이라 하신다. 데리고 온 외손주가 자꾸 나의 머리를 만지며 묻는다.

<머리가 왜 벗겨지셨어요?>

옆에 앉은 할아버지 당원이 미안해 하신다. 괜찮다며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그래 네 머리가 벗겨지기 전에 좋은 세상이 올거야.> 밤비 속에 새싹이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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