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참전군인 고엽제 후유의증, 지난해 정읍서만 관련 질환으로 8명 사망


 
한 남성의 부음을 들었다. 나이는 62세. 사망원인은 고엽제 후유증. 그 다음 월남참전용사란 말이 따라 붙는다. 고부면에 살았던 그는 고엽제 후유증이란, 이제는 널리 알려진 월남참전에서 얻어진 병으로 고통받다 지난 4일 사망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국 군인들의 90%가 앓는다는 그 고엽제 후유증은 사망원인이 될 정도로 참전했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이어지는 것이 두렵기보다 당장 고통받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수성동 샘골터널 지나자마자 왼쪽에 눈에 띠는 신축건물 3층에는 (사)대한민국 고엽제후유의증 전우회 정읍시지부가 입주해있다. 이 단체에 가입한 사람은 약 200여명정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고려한다면 정읍에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이 숫자를 초과한다는 이야기다.

`후유증`과 후유의증의 차이는...

단체 명칭은 원래 (사) 월남 고엽제 전우회였는데 대한민국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로 바꿔졌다. 이유는 전방에 거주하는 농민들도 고엽제 피해를 입고있기 때문에 그들까지 포괄하자는 의미에서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로 바꿨다.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 정읍시지부 김택술(66) 회장은 후유증과 후유의증을 구분해준다. 후유증은 명확하게 고엽제 후유증이란 진단이 나오는 경우이고 후유의증은 후유증일 것으로 의심되는 제반 중상들을 보이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후유의증도 진단이 나오면 등급에 따라 어느 정도의 혜택은 받는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판정받을려면 상태가 아주 안 좋은 경우로  1~7등급까지 있고 상이군경등급에 해당하는 혜택을 누린다. 따라서 국가유공자처럼 자식대까지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후유증 진단을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또한 헤택뿐만 아니라 고통까지 자식에게 물려준다. 정읍지역에서는 10여명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후유의증의 경우는 4 등급으로 나뉜다. 고도, 중도, 저도, 등외로. 고도로 판정받으면 월 48만원 정도 받고 내려갈수록 12만원씩 적게 준다고. 등외는 돈은 안 나오고 판정시 앓고 있던 병에 대한 고엽제의 영향을 인정하여 그에 대한 약값과 치료비 정도를 국가가 지급한다.

정읍지역 회원들은 고도 판정을 받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등외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등외 판정을 받은 경우가 절반에 해당한다. 그만큼 후유증은 커녕 후유의증 진단받기도 힘든 실정이다. 그 때문에 회원들은 육신의 고통과 함께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피해의식.

정읍에서도 작년에만 고엽제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질병으로 8명 죽었다

고엽제 후유증의 특징은 잠복기가 길다는 것. 개인에 따라 빠르게는 7~8년, 느리게는 15년 정도 지나야 구체적인 증상들이 나타난다. 그전까지는 시름시름 원인 모를 병마와 싸우게 된다.  병이 잠복기를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정상적인 생업에 종사하기가 힘든 상태. 병마와 싸우고 생계 위협을 받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정읍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 회원들의 연령 분포대는 56.7세~73세. 대부분의 회원들은 57세에서 63세 사이에 있다. 나이가 70을 넘긴 측은 주로 장교나 하사관 출신들이다. 아직 건강해야할 나이들인데 병마와 싸우며 초로를 소진시키고 있다.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광주 보훈병원. 그곳을 드나들며 치료받거나 아예 장기 입원했다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김회장은 전했다. 따라서 전우회는 일종의 위로 모임 성격을 띤다. 회원들간의 친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유대감은 끈끈하다. 서로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기때문이다.

미국, 주로 한국군 작전지역에 고엽제 살포

김 회장에 따르면 참전 후 나타나는 원인 모를 고통을 고엽제 후유증이라 지목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측은 미국 사람들이었다. 김 회장은 이점이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고엽제 살포지역은 주로 한국군 작전지역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미군은 단지 고엽제를 운반 수송하거나 공중에서 살포한 정도인데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고엽제가 살포된 밀림을 누빈 한국군은 어떻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소대장이었던 김회장은 아침에 눈을 뜨면 주둔지역 밀림의 야자수 나뭇잎 위에 하얗게 내려 앉은 가루들을 보았다. 그 가루가 몸에 닿으면 시원하기도 해서 병사들은 가루를 팔 등 몸에 묻히고 다니기까지 했다는 것. 그 사람들의 몸이 지금 어떤지 아느냐며 말끝을 흐렸고 눈빛은 고통으로 흔들렸다.

미국은 당시 고엽제를 뿌리며 단지 나뭇잎을 죽이는 것이라고 했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었다고 전했다. 밀림의 나무들을 베어낼 수 없어 하는 미봉책이란 설명을 들었었다고. 고엽제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측은 베트남인들과 한국군이었다고 말했다.

내장저수지에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를 합동으로 기리는 참전비 건립 예정

월남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중고에 시달린다. 병마와 생활고가 한 몸을 덮쳐버린 것. 또 한가지. 때 이르게 찾아올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동료들의 죽음에 초연할 수 없기에 마음은 늘 착찹하고 위안을 찾게된다.

대다수는 후유증 등급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누리는 혜택을 받고 싶어한다. 쉴새없이 육신을 흔들어대는 고통은 뒷전이다. 그런 혜택에서 소외되었다는 분노가 더욱 고통스럽다고 하소연 한다. 고통은 자식에게 대물림을 하면서 혜택은 줄 수 없는 점을 가슴아파하기도 했다.

최소한 6.25 참전 용사들이 받는 대접은 해달라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고엽제 전우회원들의 이러한 입장은 상징적으로 가시화되기에 이르렀다. 오는 9월 내장저수지 아래 호수공원에 세워질 참전비가 그것이다.

김택술 회장에 따르면 6.25참전 용사와 베트남참전 용사 양측을 동시에 기리는 참전비라고 전하면서 이렇게 동시에 기리는 비는 정읍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그 비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비를 통해 고엽제 전우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리도 그들처럼 대우받고 싶다"는 것.

동일한 혜택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병원치료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병원 치료만 혜택이 주어지는 등외 판정 받기도 어려운 현실이 그들을 분노케 하고 있었다.

 황성희 기자 redhann@yahoo.co.kr <이 글은 정읍지역 환경/생태 인터넷 언론 정읍통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병원치료라도 맘 편히 받고 싶다" 
[인터뷰]고엽제 후유증의 3중고 안고 사는 베트남 참전군인 김영한씨 

 
7일 오후 수성동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 사무실에서 나와 김택술 회장과 동행하여 만난 인사는 김영한(58) 씨. 고엽제 후유의증 등외 판정을 받고 치료중이었다.

김 씨가 살고 있는 상평동 들판 근처에 들어서자 지팡이를 짚고 김씨가 나타났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뇌경색으로 몇년 전 쓰러진 후유증으로 다리가 자유롭지 못하다. 하여 지금은 장애3급을 받은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팡이 없이는 외출이 어려운 상태였다.

"우리가 흘린 피로 경부고속도로 깔았다"

김 씨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피해의식이었다.  멀쩡하게 제대하고 고향에 돌아올 자신을 국가가 차출,  외국 전선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자신은 해병대였고 제대를 2개월 앞두고 있었다는 것. 원래 24개월이면 전역하는데 68년 김신조의 1.21사건이 터지면서 해병대 복무기간이 2개월 연장되었다고 전했다. 24개월을 다 채웠는데도 그러한 운명의 장난에 휘말려 강제로 월남에 파견되었다고.

그것도 최전선인 남부 베트남의 호이얀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생사를 넘나들면서 1년 넘게 있었다. 자신은 민간인 신분으로 전쟁터에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분개했다. 그곳에서 고엽제 가루에 노촐되었다. 인체에 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고 고엽제가 살포된 밀림을 헤집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파월 한국군에게 미국 당국이 지불했던 달러는 대부분 한국 산업화에 투입되었다고 분개했다. "우리 피로 경부고속도로를 깐 거죠. 하지만 그 댓가는 무엇입니까? 국가가 우리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던가요?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고통스러운 몸뚱아리나 좀 돌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차상위 계층-3급 장애인-고엽제 후유의증 등외 판정-벼농사 약간이 생계 수단

김씨가 사는 방식은 독특하고도 복잡하다. 차상위 계층- 3급 장애인- 고엽제 후유의증 등외 판정- 벼 농사 약간이 생계의 거미줄이다. 포장마차로 함께 생계를 꾸려왔던 부인이 죽고 나서는 아픈 몸으로 더 이상 포장마차도 못한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뇌경색때문에 다리를 못써 장애 등급을 받았으나 실업자인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못 받고 있었다.

고엽제 후유의증 등외 판정을 받으면 돈은 안 나오고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질병들에 대해서만 치료비를 지급한다. 하지만 보험 적용여부에 따라 보험이 안되면 비싼 치료비나 약값을 내야한다.

"병원치료라도 맘 편히 받고싶다"

이 날 만난 자리에서 김 씨는 술잔 기울이는 것을 즐겨했다. 쉴새없이 각성시키는 육신의 고통을 잊는 데는 술만한 것이 없다고 하며 술을 끊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우리같은 사람에게는 술이 진통제요." 고통은 비관을 가져와 자살 충동을 여러번 느꼈다고 전했다.

이 날도 몸이 아파 광주 보훈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농사일 때문에 잠시 나온 경우라고 말했다. 담당 의사가 잦은 외출에 대해 경고해도 농사란 때를 놓칠 수없고 딱히 거둘어줄 일손도 없는지라 아픈 몸이라도 끌고 나왔다고 웃었다. 웃음 속에는 서글픔 이상의 복잡함이 배어나왔다.

김 씨는 자신은 등외 판정이라도 받아서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방법이 없다고 암담해 했다. 그렇긴 해도 김씨의 등외 판정은 헤택의 폭이 적다. 치료시에도 꼭 정해진 병에 대해서만 치료가 들어가고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은 자부담을 해야한다.

김씨가 바라는 것은 국가유공자급 대우와 혜택이지만 당장 병원치료라도 맘 놓고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 만큼 현실의 고통은 사람을 타협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타협 폭은 강요하기에 너무 좁아서 김 씨가 조국을 두번씩이나 원망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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