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고미애의 일본…일본인 그 세 번째 이야기




삐릴리 삐릴리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린다. 어디서 나는 걸까. 한낮에 주택 가를 휘감으며 소리가 퍼져온다. 연이어서 삐릴리 삐릴리 반복해서 들리는 소리에 창문을 연다. 피리 소리에 이어 큰북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린지 궁금해서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본다. 도로에 가득한 사람들. 맨 앞쪽에는 경찰관이 서 있고 그 뒤로 긴 행렬이 이어진다. 아 오늘이 우리동네의 마쯔리가 있는 날이라는 것이 그제서야 떠오른다. 키타시나가와에는 키타시나가와진자라는 오래된 신사가 있다. 오늘은 키타시나가 와진자의 마쯔리 날인 것이다.
행렬의 맨앞으론 신사의 가마를 맨 사람들이 서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두줄로 줄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연이어서 큰북을 실은 가마가 있고 피리부는 사람이 옆에 서서 피리를 불며 걸어가고 있다. 큰북은 절에서 사용하는 크기로 한두 사람이 들수 없을 정도로 커서 여러 사람이 함께 매고 그 위에서는 북채를 쥔 사람이 북을 울리고 있다. 그 뒤로는 마을 사람들이 기모노나 유카다 혹은 평상복 차림으로 뒤 따르고 있다. 아이들도 있고 나이 드신 분도 있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잇고 있었다. 피리와 북의 박자에 맞추어서 사람들은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아들 녀석이 자기도 따라 다니고 싶다고 해서 오후에 마쯔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점심을 서둘러 먹고 이웃에 사는 일본인과 함께 마쯔리 구경에 나섰다. 신사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신자 앞에 있는 상점가를 먼저 보기로 했다. 평상시 차가 다니던 도로를 사람들만 다닐 수 있게 제한해 놓았다.
길 양쪽으로는 홍등이 길게 달려있고 노점상들이 이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신기하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한쪽 길모퉁이에서는 카드뽑기를 하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아들녀석은 이웃친구와 함께 구경에 나섰다. 요즘 일본아이들 사이에서는 ‘무시킹구 카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포켓몬스터카드처럼 카드마다
힘의 세기가 달라서 센 아이가 이기는 모양이다. 무시킹구는 우리나라 사슴벌레로,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가진 카드를 다른 친구와 바꾸기도 하고, 힘센 카드 한장하고 약한 카드 여러장하고 교환하기도 한다. 그 가게 앞에는 아이들이 계속 모여든다.
우리는 다른 노점상으로 이동한다. 센베과자에 그림을 그려서 먹는 곳에는 여자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딸아이는 별로 재미 없을 것 같다며 그냥 보기만 한다. 그 옆에는 우매보시 위에 설탕시럽을 발라서 먹는 캔디를 파는 가게가 있다. 보기만 해도 달 것 같은데 꼬마들이 긴 줄을 서 있다. 생맥주를 파는 가게, 꼬치구이를 굽는 가게 들이 계속 이어진다. 가족이 모두 나온 사람들이 참 많았다. 꼬마들이 뒤뚱거리며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사내아이들은 유카다를 입고서 잘도 뛰어다닌다. 여자아이 중에는 기모노를 입고 얼굴에 분화장까지 한 아이들도 보였다. 우리는 일본의 떡인 단고를 사서 먹어본다. 사람들이 너무 맛있게 먹어서 우리도 먹어 본다. 일본의 단고는 보통 조청을 발라서 달기때문에 우리는 김으로 싼 단고를 주문했다. 한잎 크기의 떡 위로 간장을 바르고 김으로 쌌는데 짜지만 먹을만했다. 계속 행렬을 따라간다. 행렬의 끝쪽에서 빙수를 사서 길가에 앉았다. 옆에는 우리처럼 앉아서 빙수를 마시는 사람들이 제법있다. 앉아서 보니 앞쪽으로 사람들의 이름과 돈의 액수가 적힌 나무팻말이 수십개 현수막처럼 걸려있다. 일본친구에게 물어보니 올해 이 마쯔리 준비를 위해서 돈을 낸 사람이나 상점의 이름과 액수를 적은 푯말이라고 한다. 기록하고 알리는 것을 참 중요하게 느끼는 것 같다. 누가 얼마를 냈을까 궁금해 하는 것 보다는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사로 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친구는 금붕어 낚시가 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아들녀석도 한번 해보고 싶단다. 큰 통에 물고기들이 있고 얇은 종이가 유리 대신 붙어 있는 돋보기만한 채로 움직이는 금붕어를 잡는 것인데 자기가 잡은 것은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한다. 집에 가져가기 싫은 사람은 한번 더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집에 안 가져가기로하고 두번을 하여 통에 금붕어를 다시 놓아주었다.
우리아이 친구는 두마리를 잡아 의기양양하며 자기 집에 금붕어 보러 놀러 오란다. 아들녀석이 좋아한다. 신자를 향해가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우비 를 입고 우산을 챙겨든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들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함께 간 일본인 이웃의 둘째 아이가 어려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빗속에서도 사람들은 신사로 신사로 향해간다. 우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쯔리는 3일동안 계속된다. 사람들은 신사에 가서 소원을 빌고 축제를 즐기는 것 같다.
항상 조용하던 동네가 3일 동안 흥청거린다. 하루 한번씩 마을을 도는 행렬. 그 기운찬 함성때문인지 행렬을 둘러싼 마을의 거리와 상점들이 생기가 도는 듯하다. 내 기분도 상쾌해지는 것 같다. 피리 소리의 여운이 길게 남는 하루다. <이 글은 남편의 해외 근무 때문에 지난해 6월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주부 고미애씨가 현지에서의 느낀 점들을 담은 것입니다. 고미애 아줌마는 매주 일본에서의 생활과 느낌, 그리고 다양한 소식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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