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상지대 홍성태교수


    
 
2005년 6월 14일 오전 5시, 대우그룹의 회장이었던 김우중이 귀국했다. 한때 현대, 삼성, LG와 함께 한국의 4대 재벌로 꼽혔던 대우가 망했다는 사실에 모든 국민이 놀랐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사람들을 부추기던 김우중이 해외로 도망쳤다는 사실에 다시금 모든 국민이 놀랐다. 그 주범이 5년 8개월의 도망생활 끝에 돌아온 것이다.

그는 41조원의 분식회계 지시(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10조원의 사기대출(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200억 달러(당시 25조원)의 외환유출(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국외재산도피 및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모두 ‘76조원’이라는 상식적으로 헤아릴 수조차 없는 엄청난 금액을 단 한 사람이 멋대로 주무르고 한 나라의 경제를 망쳤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그에게 감동해서 통곡했다던 김용옥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김우중은 ‘세계경영’을 외치며 해외를 떠돌았다. 그러나 그 실체는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차입경영’이었다. 그는 대우가 망하면 은행도 망한다는 협박으로 은행에서 계속 돈을 빌렸다. 그러나 차입금액이 너무 커지면서 협박도 통하지 않게 되자 회계장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분식회계’를 작성해서 은행을 속이고 돈을 빌렸던 것이다. 그 금액이 무려 41조원에 이른다.

2004년 기준으로 한국의 예산은 일반회계 118조 3560억원, 특별회계 67조 6668억원, 합계 186조 228억원이었다. ‘분식회계’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사기’를 뜻한다. 김우중이 이러한 분식회계로 빼돌린 41조원의 돈은 2004년 총예산의 22%에 이른다. 제멋대로 주무른 총액 76조원은 2004년 총예산의 40.8%에 이른다. 4800만명의 국민에게 나눠준다면, 일인당 158만원씩 받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다. 단군 이래 최대 도둑으로 꼽히는 전두환이 1조원 정도를 빼돌린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김우중은 그보다 무려 76배나 많은 돈을 빼돌렸던 것이다.

김우중의 죄는 다른 몰락한 재벌총수들과 비교해도 단연 두드러진다. ‘이데일리’는 6월 13일치에서 다른 몰락한 재벌총수들의 죄상과 근황을 전했다. 먼저 ‘마름’ 발언으로 악명이 자자한 한보그룹의 정태수는 한보철강의 대출금 5조 9000억원으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7공자’ 출신인 동아그룹의 최원석은 9200억원 정도를 분식회계하도록 명령해서 재판을 받고 있다. 신동아그룹의 최순영은 1억 6000만 달러 정도를 해외로 빼돌리고 1조 2000억원 정도를 계열사에 불법대출해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자들의 공통점은 이런 엄청난 죄에도 불구하고 호사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김우중과 비교해서는 ‘새발의 피’도 안 되는 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김우중은 ‘단군 이래 최대의 도둑’인 것은 물론이고 ‘인류 역사상 최대의 도둑’이다. 인류 역사상 그보다 더 많은 돈을 훔친 자는 없다. 물론 도둑이라고 해서 모두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역사에는 ‘의적’들도 많지 않은가? 그러나 김우중은 아무래도 의적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는 BFC(British Finance Center)라는 회사를 영국에 차려 놓고 200억달러의 외화를 외국으로 빼돌렸다. 당시 환율로 계산해서 25조원에 이르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다. 대우는 157억 달러는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는 데 썼고, 30억 달러는 해외사업에 투자하는 데 썼으며, 13억 달러는 외국에서 빌린 돈의 이자로 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3억 달러에서 상당액이 뇌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의 검찰조사에 따르면, 김우중은 프랑스에서 포도농장을 사는 데에 500만 달러(당시 60억원), 그리고 아들 유학비로만 무려 250만 달러(당시 30억원)를 썼다. 이 돈은 해외로 몰래 빼돌린 회사 돈이었다.

김우중의 죄는 무겁디 무겁다. 그는 단순히 돈을 빼돌린 도둑이 아니라 나라의 경제를 빼돌린 도둑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단순히 세계 최대의 도둑이 아니라 세계 최악의 도둑이다. 김우중의 도둑질은 이를테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비견할 만하다. 이준이 ‘부패와 부실의 먹이사슬’을 통해 부실한 삼풍백화점을 지어서 502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것처럼, 김우중도 똑같은 방식으로 부실한 대우그룹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이 나라의 경제를 수렁 속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2001년에 노동자들이 김우중 체포결사대를 만들어서 파리까지 갔겠는가?

우리가 반드시 따지고 밝혀야 할 또 다른 문제들도 있다. 첫째, 김우중은 인터폴의 적색수배자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상태에서도 유럽과 베트남을 오가며 ‘세계경영’을 펼쳤다. 인터폴은 도대체 뭐하는 조직인가? 이렇게 떳떳이 유럽과 베트남을 오가며 사업을 펼친 범죄자조차 잡지 못한 인터폴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다니는 범죄자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김우중은 인터폴의 존재이유 자체를 없애 버렸다. 인터폴은 아예 해체되는 것이 낫겠다. 한국 정부도 차라리 즉각 인터폴에서 탈퇴하길 바란다.

둘째, 인터폴의 적색 수배자인 김우중이 인터폴을 우롱하며 세계를 오갈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 정부의 어떤 협조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인터폴이 완전히 유명무실한 조직이 아니고서는 사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인터폴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이런 의혹에 대해 숨김없이 밝혀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누가 김우중을 비호했는가에 대한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세째, 김우중은 18년 전인 1987년 4월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면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프랑인인 김우중이 어떻게 나라 살림의 1/4에 이르는 막대한 돈을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었는가? 이 나라가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가? 정치권과 관료들의 비호가 없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프랑스 경찰은 왜 김우중을 체포하지 않았는가? 프랑스 경찰이 무능해서인가, 한국 정부가 유능해서인가?

이 나라의 재벌은 사실 모두 ‘죄벌’이다. 엄청난 죄를 지어서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재벌들이 모두 나서서 김우중을 두둔하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재벌들의 정체가 ‘죄벌’이라는 사실을 김우중은 다시금 확인해주고 있다. 김우중은 재벌이 어느 정도로 죄를 지을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재벌은 한 나라의 경제를 이를테면 ‘물회’로 생각한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저 말아먹을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이다. 세계 최악의 도둑 김우중을 ‘실패한 영웅’으로 비호하며 나서는 재벌들의 행태를 보며 우리는 재벌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병역기피용 국적포기에 대한 비판을 ‘개떼같이 덤벼드는 여론재판’이라고 비난하는 거짓말장이 보수세력과 재벌들의 행태는 얼마나 비슷한가?

김우중은 ‘실패한 기업인’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잘 먹고 잘 살고 있기만 하다. 부인이나 자녀는 여전히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호텔이며 문화관을 보유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살고 있다. 전두환이 그런 것처럼, 정태수가 그런 것처럼, 김우중은 돈이 없을지 몰라도 그의 가족들은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죄벌’의 범죄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죄를 짓더라도 돈만 잘 빼돌린다면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지금의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재벌보다 이런 짓을 잘 하는 자들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재벌이 아니라 ‘죄벌’인 것이다.

김우중의 죄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는 ‘실패한 기업인’이 아니라 나라의 경제를 나락으로 몰아넣은 ‘세계 최악의 도둑’이다. 그의 죄에 합당한 벌을 주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처럼 엄청난 죄를 지을 것으로 예상하고 만들어진 법은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하거나 ‘사면’을 한다면, 그 순간 이 나라의 법은 모든 권위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김우중의 죄는 하늘을 찌르고 땅을 파고든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우중이 ‘실패한 죄벌’의 대표적 사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나라의 모든 재벌은 언제라도 똑같은 죄를 저지를 수 있다. 이미 이 나라의 모든 재벌은 대우와 비교해서 아주 작은 크기라고 해도 실제로는 엄청난 크기의 똑같은 죄를 저지른 상태이다. 재벌개혁이 이루어졌다면, 김우중 같은 도둑은 나타날 수 없었다. 세계 최악의 도둑 김우중은 재벌개혁의 중요성을 그 어떤 사례보다 명확하게 확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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