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성폭력에 대한 단상



1986년이었다. 기자가 군에 입대한 게...기자는 의정부 보충대에서 2박3일 있다가 철원으로 `끌려`갔다. 11월 4일이니 초겨울이었다. 6X가 쓰여진 미니버스. 출발할 때도 도착할 때도 그곳이 어딘지, 몇 사단인지 몰랐다. 누구 하나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6X가 뭘 의미하는 지도 몰랐다. 버스는 북쪽으로 달렸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이 엄습했다. 가도 가도 끝보이지 않는 도로. 이거 정말 재수없게 걸렸구만...
간혹 보이는 표지판은 끌려가는 `개만도 못한` 훈련병의 불안감을 고도로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2시간30여분이 지났을까. 간신히 도착한 황량한 산 아래 부대. 사단훈련소였다. 연병장에 버스가 서기도 전에 무서운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옷을 입고 모자를 코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눌러쓴 공포의 조교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쏟아지는 고함, 고함들...버스 밑을 기어서 건너편 축구골대를 돌아서 다시 버스 밑을 기어 선착순 2명!!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데...완전히 혼을 빼기 위한, 그리고 그럼으로써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조교들의 얘기는 6주 교육후 퇴소식에서 들을 수 있는 얘기였다.
그리고 처음 훈련소 퇴소와 더불어 바로 배치받은 자대. 물론 같은 사단이었다. 보직은 포병. 일명 130이라고...그리고 그곳서 겪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기억들.
첫날이었을 것이다. 한 병장 말년의 신병들 호출. 목이 터져라 관등성명을 대면서 부름에 응했다. 기자와 같이 자대배치를 받은 일명 `동기`는 3명. 이 병장 왈 "지금부터 위생검사를 시작한다". 물론 위생검사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군기가 잔뜩 든 신병이라도 그 정도 쯤이야 짐작하고도 남았다. "바지내리는 데 1초." 물론 사회에서 들었으면 `골때릴` 명령이었지만 불쌍하게도 우리 신병들한텐 최소한 골때릴 여유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겨울이라 속옷(일명 빤스)에 내복, 전투복, 겨울에만 입는 전투복 위의 건빵바지에 야전상의(야상이라고 부른다)까지 겹겹이 껴입은 상태에서 1초안에 옷을 벗는다는 건 불가능 그 자체. 하지만 해야만 한다. 그래서 벗었다. 1초가 억겁의 세월인 마냥 길게 느껴지는 찰나, "동작그만." 소리가 뒤따른다. 아무도 못 벗었다. 제일 빠른 동기가 내복끈을 풀은 상태. 이제 큰 일났다는 생각만 들었다. 당근이다. 군대서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면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 연병장으로 집합!! 집합이라봤자 3명인데...옆에서 다른 고참들의 `킥킥킥`소리가 비수처럼 귓청에 꽂힌다.
쌓인 눈속에서 뒹굴기를 30여분. 다시 내무반으로 집합!! 확실히 인간이란 동물은 굴려야 한다. 다시 이어지는 "바지 내리는 데 1초." 그리고 해냈다. 벌러덩 까내려진 하의. 뿌듯했다. 쪽팔림?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위대한 고참님의 명령을 완수했다는 기쁨뿐...병장이 얘기했다. "야, 이새끼 사제서 여자들좀 울렸겠는데..."
그리고 그날밤 동기 셋은 화장실에서 모였다. 지급된 빵을 먹기 위함이었다. 재래식의 그윽한 냄새 무지하게 풍기는 화장실 속에서 서로 얼굴을 보며 빵을 먹었다.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다. 우리 열심히 해보자. 뚜껑도 없는 재래식 똥칸에선 냄새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어느덧 작대기 4개를 달개 된 기자. 신병이 들어왔다. 일렬로 세웠다. "지금부터 바지내리는데 1초!!" 웃기는 현장, 웃기는 악순환이었다. 그런 병폐가 없어졌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지금도 그런 모양이다. 우리 군대의 모습이다.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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