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까비떼 노동자지원센터 활동가 라울라, 아델 전북방문

 
사진/참소리
 
27일 필리핀의 노동운동단체인 노동자지원센터(Worker`s Assistence Center) 활동가 2인이 전북을 방문해 지역 노동단체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는, 필리핀의 수출자유지역인 까비떼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 중 45%를 차지하는 한국기업의 노동탄압 문제에 대해 연대를 호소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앞서 한국여성학대회 행사에 참가하고 25일 전북 익산을 방문해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 이주여성 가족들로 구성돼있는 익산필리핀공동체사람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기도 했다.

이날 민주노총 전북본부, 익산시지부, 익산노동자의집 활동가들과 함께 간담회를 가진 활동가 라울라, 아델 씨는 “필리핀 노동자들 사이에서 한국기업이 노동탄압, 폭행과 성희롱 등 인권유린, 정경유착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는 부끄러운 진실을 전하며 말문을 텄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필리핀 노동자들

필리핀 정부가 전략적으로 유치한 수출 자유지역 네곳 중 가장 큰 규모의 지역인 까비떼에는 약 285개의 한국, 일본, 대만 등 외국기업이 진출해 있고 이중 128개가 한국기업으로 약 45%를 차지한다.

농업중심사회에서 공장이 들어서게 된 것은 90년대이고 ‘노동자’라는 개념이 자리잡힌 것도 불과 15년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일반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로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249페소(약 4천5백원)이지만 이마저 지켜지지 않아 대다수가 약 170페소를 받고 있다. 노동시간은 10~14시간이 보통이고 물품을 선적할 때는 24~48시간 장기근무를 할 때도 있다. 대다수가 17~25세의 젊은 여성노동자이다 보니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5개월을 최장기간으로 한 계약근로가 법으로도 허용돼 있고, 선적기간에는 계약없이 1개월 고용도 가능하다. 흔히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필리핀에는 최적으로 구성돼 있는 셈이다.



사진/참소리

이러한 노동현실에서 필리핀 노동자들은 “모든 외국기업이 노동자를 위하지 않지만, 한국기업은 정말 너무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고 한다.

제조업 중심으로 형성된 공단에는 의류공장이 많고, 그러다보니 여성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 기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관리자의 폭행, 폭언, 성희롱이 한국기업에서는 아주 일상화돼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폭행은 증거가 남기 때문에 노동자지원센터 등이 서류를 작성?제출해 법적으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폭언, 성희롱은 증명이 힘들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유독 한국기업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문제를 제기하면 회사를 폐업시킨 후 기업주는 똑같고 회사명만 다른 새회사를 만든다고 한다. ‘위장폐업’이다. 이들은 공장도 기업주도 모두 같은데 노조만 사라지는 새회사가 생기는 경험을 까비떼에서만 다섯차례에 걸쳐 경험했다.

라울라씨에 따르면, 까비떼 지역에 기업주연합회(우리나라의 상공회의소 격) 회장이 한국인이다. 라울라씨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간의 정경유착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한다. 지역 도지사급 선거에는 ‘무노조, 무파업’을 조건으로 기업들에게 공공연하게 돈을 요구한다. 이미 까비떼 자치단체와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기업같에는 아주 긴밀한 유착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노동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 그 노동법마저 개악하려

물론 필리핀에도 노동법은 있다. 그러나 산업발전을 중심에 두다보니 지방자치단위에서 노동법을 지키지 않아도 관여하지 않는다는게 라울라씨의 설명이다. 노동법에서 노조단결권과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까비떼 지역은 수출자유지역이라는 이유로 이 권리가 제한돼 있다. 한국의 경제자유구역 등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렇다보니 노조조직율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됐는데, 2004년까지만해도 40여개의 노조가 있었지만 현재는 10개정도만이 남았다. 2002년 도지사 선거후 엄청난 압력을 받았던 것이 이유다. 정부측 관계자가 노조원을 찾아가 심지어는 총까지 들고 협박하며 노조불참 서약서에 사인하기를 강요하는 일도 있었고, 이들이 활동하는 노동자지원센터가 공산당과 연결돼 있다고 흑색선전을 하는 일도 있었다. 또 근로계약을 할 때는 노조를 가입하면 해고하겠다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필리핀 정부는 노동자 보호의 요소를 줄이고 해외투자를 늘리기 위한 노동법 개악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라울라 씨는 “정부의 극렬한 노동탄압에 반해 필리핀 노동자 단체는 힘이 미약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단일 노동조합연대기구가 아니라 노동자조직이 크게 약 5개가 있는데 제각기 다른 정당, 정치조직에 속해 있어서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자지원센터 등은 까비떼 지역의 노조 결성을 위해 밖에서 지원하고 노동법위반사례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현행 5개월 근로계약을 연장하는 것을 필리핀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한국-필리핀 노동자연대가 절실해

그리고 한국을 방문한 이유가 “한국정부와 노동단체들이 필리핀 진출 한국기업의 악행을 통제할 수 있는 연대”를 요청하기 위해서임을 밝혔다. 특히 한국기업 중 전북지역에 모기업을 두고 있는 공장이 있다면, 전북의 노동단체들이 이 모기업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활동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두시간 가량의 대화를 마친 후, 지역 노동단체들은 적극적인 협조와 연대를 약속했다. 필리핀 활동가들은 29일 서울로 올라가 다른 노동단체들을 만난후 내달 2일 필리핀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간담회를 마치며 아델 씨는 “전북지역에서 따뜻한 대접도 받았고, 익산필리핀공동체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자국에서의 노동탄압이 오히려 나은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며 전북방문의 소감을 밝혔다.

<참소리=최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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