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혼혈인들에 대한 무시·폄하…국내부터 신경써야"

한국계 혼혈선수인 하인스 워드(Hines Ward·30세) 열풍이 미국에 이어 국내에도 이어지고 있다. 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에서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MVP의 영예까지 안은 워드는 현재 미국에서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 각종 광고섭외가 들어오고 있고 연봉(한화 25억여원)의 5배가 넘는 보너스를 받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부와 명예를 한손에 움켜쥔 셈이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의 MVP인만큼 이런 상황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국내에서 불고 있는 워드 열풍은 어딘가 어색하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워드 열풍에 휩쓸려 있지만 미식축구의 룰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워드 열풍은 그야말로 워드가 한국계 혼혈아라는 이유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다. 흑인 혼혈로서 편모 밑에서 자라 성공을 일궈낸 워드의 스토리는 분명 감동적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정말 혼혈아들의 어려움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워드가 아니라 국내에 있는 혼혈인들에 대한 편견의 눈부터 버리는 것이 순서라는 의견이 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는 한국에까지 불고 있는 워드 열풍의 어두운 단면을 지적했다. 진 씨는 칼럼을 통해 "혼혈이라 해서 실컷 무시할 때는 언제고, 무슨 낯으로 이제 와서 그가 `한국인 피`라고 하느냐"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워드가 우승을 이끌어내자 `한국인의 혼으로 달렸다`는 식의 반응이 낯간지럽다는 것이다.
진 씨는 "같은 혼혈인이지만 워드에 대해서만 한국이 열광하는 것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독특한 한국식 인생철학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는 그간 혼혈인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흑인이나 동남아시아계 혼혈인에 대한 눈은 더 차가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명예 시민증`을 주는 예우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출세한 혼혈인만 대우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진 씨는 국내의 혼혈인에 대한 차별경향에 대해 "사람이 가축인가? 순종을 따지게"라고 비난했다. 진 씨는 "아무쪼록 워드 선수의 방문이 이 땅의 순혈주의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혼혈인들이 모두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 한국인으로 불리는 시대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한겨레>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왜 워드가 조국을 잊지 않기 위해 팔에 한글로 문신을 새겼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는가? 이 땅에서 태어나 한국말 밖에 모르고 치즈 대신 김치를 먹고 자란 혼혈인들의 정체성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조 교수는 `만일 워드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과연 이 정도의 성공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조 교수는 "미군 주둔에 따라 필연적인 산물로 발생한 혼혈인에 대해 우리는 `더러운 피` 취급을 했다. 오랫동안 단일민족 신화에 사로잡혀 혼혈인들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문화 속에서 워드 같은 성공사례가 국내에서도 나올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국내의 문제는 외면하고 극히 부분적인 성공사례에만 눈을 돌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워드 열풍을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MVP가 되고 나니까 호들갑을 치는 언론과 정부의 반응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pilgrim` 네티즌은 미국인으로 성공한 워드를 지나치게 띄우는 여론을 비난하며 "난 워드 100명보다 내 이웃, 우리나라 가수 박일준이 더좋다"고 했다. `gntcjswp` 네티즌은 "피 한방울만 섞이면 한국인인가? 해외에서 힘겹게 사는 조선족, 고려인 다 무시하면서 성공한 미국인에만 주목하는 게 부끄럽다"고 했다. `seo0817` 네티즌은 "우리 내부부터 살피지 않고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까지 포용(?)`하는 모습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열풍`적인 언론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인간승리는 존중하되 너무 오버하지는 말자`고 말하고 있다. 국내 혼혈인들에 대해 차별적인 관행이 계속되고 있으면서 외국에 있는 사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워드는 이미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갖고 있다. 우리 정부가 굳이 나서서 명예 시민증을 주고, 우리 기업들이 나서서 거액의 광고료를 쥐어줄 필요도 의미도 없는 것이다. 워드의 성공스토리에 자극 받았다면 국내에서도 제2의 워드가 탄생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그만인 것이다. 지금 보여주는 열풍은 진중권 씨의 견해처럼 `억울하면 성공해라`라는 논리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국내에는 3만 5천명 가량의 혼혈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서 제2의 하인스 워드가 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와 언론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과제로 보인다. 최옥연 기자 redpins@hanmail.net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