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이어 20일도 무산

비정규직 법안 처리가 민주노동당의 회의장 점거로 또다시 무산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경재 위원장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일단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또 다시 회의가 무산된데 유감을 표시하고 민노당 의원들이 계속해서 회의를 저지하고 나설 경우 국회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 2월 임시국회 처리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초 환노위는 이날 오후 법안심사 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어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법안 처리 반발에 대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헌정초유의 사태`를 무릅 쓰고서라도 개정안을 이달 안에 처리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경제계는 비정규직 개정안은 1년 4개월이 넘도록 처리가 미뤄지고 있어 이제는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지금의 개정안은 `개악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와 정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주장은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방법 면에선 모두 비정규직 관련 핵심사항에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노동계는 여야가 밀실 합의를 통해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통해 "기간제 사용 시 사유제한원칙, 동일노동동일임금원칙,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은 비정규직권리보장의 중요한 원칙이다. 이런 원칙이 세워지지 않은 법은 실제 비정규직의 확산과 사회양극화의 심화를 막을 수가 없다"면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비정규직 개정안에 노동계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신임장관이 새로 선출됐고, 민주노총도 선거시기인데 이 틈을 타 강행처리 하는 것은 비열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논의되지 않은 쟁점들이 많은 상황에서 당사자간 동의와 참여도 없이 날치기 처리되는 법안은 의미가 없다"며 비정규직 개정안이 처리되더라도 무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반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달 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비정규직 개정안을 강행처리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우원식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은 비정규직 개정안을 이 달 안에 마무리를 짓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쌍방간에 엇갈리고 있는 쟁점은 과연 무엇일까.

노동계와 여야(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파견 근로자의 사용 사유제한 문제다. 민주노총은 사용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남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용 사유제도에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반면에 열린우리당은 사유제한 폐지는 오히려 노동계를 죽이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우 위원장은 "사유제한을 받아들이면 기간제 노동자 370만 명 가운데 350만 명이 사유가 맞지 않아 일자리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유제한이 있었던 조건 하에서 만들어진 중소기업들도 다 문을 닫아야 한다"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우 위원장의 의견에 대해 민주노총은 `현실적 근거 없는 비약`이라고 평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천민 자본주의에 있다. 자본가가 근로자를 싸게 부려먹고 버리려는 인식이 제도와 함께 변해야 한다"며 "사유제한이 없으면 비정규직의 확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고 얘기했다.

현재 노동계의 현실을 보면 그러한 주장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상시적인 업무에 비정규직을 동원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의 경우 판매가 늘어나는 하절기에 비정규직을 동원하는 것은 노동계도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을 두고 있다"며 사유제한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임을 확실히 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남용을 막기 위해 사용기간을 2년 이하(1년+1년 사유제한)로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기업은 4년, 정부와 한나라당은 3년, 민주노동당은 사유제한을 주장하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의 평균계약기간은 26개월이고 2년 이상 근무자는 108만 명, 3년 이상 근무자는 76만 명에 이르고 있다. 정부측은 "노동권의 주장대로 3년에서 2년으로 기간을 단축시킬 경우 약 32만 명이 해고되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정부가 해고를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노사간의 관계를 인적 자원 육성 방향으로 이끌지는 못하고 사장이 돈만 주면 되는 분위기를 조장해왔다. 그래놓고 해고 인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것은 사장들에게 해고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법으로 보장된 기간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마당에 기간을 늘리는 것은 기업에만 유리하다는 얘기다. 편법이 난무해도 시정하려는 의지가 없는 정부가 `사용기간을 줄이면 해고가 우려된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노동부는 사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간제 근로자의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 전환이 쉬워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현실성 없는 발언이라며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원칙은 2년 사용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1년 9개월 사용하고 해고해버리는 식이다. 정부가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착한` 사장님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며 "천민 자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부의 발언은 순진한 생각이다"고 비난했다. 노동부가 노동계의 현실에 대한 고찰이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사용기간 뒤 고용 보장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열린우리당의 이목희 의원은 민노당과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고용 의제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자는 것과 같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 의원은 "고용의제를 하면 불법파견적발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정규직만큼의 임금청구권이 발생하면 사업장이 도산한다"며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이 10인 이하의 영세사업장에서 하고 있다. 이 사업장들이 임금 청구권 때문에 도산하면 비정규직은 어디 거서 뭘 먹고사느냐"며 고용의제가 현실상 노동자에게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 될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민주노총은 대기업의 경우는 인건비 대비 매출액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문제라는 인식은 우 위원장과 같이 했지만 해결책의 도출은 달랐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이 국제시세에 따라 부득이하게 사야 하듯이 인건비도 마찬가지다. 인건비는 노사 관계와 시장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문제다"며 "설사 멍하니 있다가 망한다면 그것은 적응력이 떨어진 것으로 결국 도태된 것 아니냐"며 고용의제를 중소기업의 몰락과 연결짓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계의 반발을 무시한 여야의 강행 처리가 성공할 것인지 촌각을 두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하나 기자 geiiov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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