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소리> 제주 4.3에서 평택 대추리까지

4.3 전야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전야제 장소인 신선공원에는 동백꽃이 붉게 피어 있었다. 탐스럽게 핀 동백꽃, 그 꽃들처럼 죽창과 총칼에 쓰러진 꽃들.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촛불을 손에 쥐고 4.3위령탑에 봉헌하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바쳐지는 여린 촛불 하나가 순백의 기도로 타올랐다.



초청된 일행들은 신선공원 행사장을 한 바퀴 돈 뒤 4.3전시장으로 향했다. 평택 미공군기지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뜨고 내리는 전투기를 찍은 사진들이 전시관 입구 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사진들 끝에는 국민의 땅을 일제 강점기처럼 강제수용해서 미군에게 공짜로 공여하려는 국방부와 한국토지공사와 한국감정원이 기세당당하게 전시돼 있고, 한 할머니가 강제수용을 거부하며 수렁논에서 절규하고 있었다.
4.3항쟁 58주년 행사를 계획한 사람들은 추스르기조차 힘겨웠던 4.3의 고통이 지금 대추리에서도 진행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었다.

58년 전 동백꽃처럼 쓰러진 영혼들을 추모하는 전야제는 그날 오후 6시30분 동백꽃이 만발한 신선공원에서 사물놀이의 여는 공연으로 막이 올랐다. 땅의 울림처럼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평화를 향한 염원처럼 하늘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평화바람 2부에서는 나팔꽃 회원인 김원중, 김현성, 백창우, 이수진 가수의 노래가 이어졌고, 평택 대추리에서 온 몸으로 싸우고 있는 문정현 신부의 연설이 그 뒤를 이었다.

“저는 지금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평택 대추리의 뿌리는 4.3입니다. 4.3에서 3만 명 가까이 학살되었습니다. 그 학살은 거창으로 노근리로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그리고 5.18로 이어졌습니다. 정부가 국민을 학살한 것입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미국이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미군함대가 제주도에 정박해 ‘레드헌트’ 빨갱이 사냥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국정부의 명령으로 시작된 4.3 학살은 지금 현재형으로 평택 대추리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총칼로 죽이는 것만이 학살이 아닙니다. 논밭과 고향을 빼앗고 가정과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 것 역시 간접학살입니다. 대추리 주민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게 고향과 집을 빼앗기고 다시 53년에는 미군에게 쫓겨났습니다. 이제 빼앗기면 세 번째입니다. 대추리 미군기지 백지화는 4.3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주도 화순에도 미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하고 있습니다. 미군이 명령한 ‘레드헌트’ 작전으로 3만 명을 죽인 그 학살자들인 미군이 화순에 미해군기지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군이 주둔하는 한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 될 수 없습니다. 화순 미해군기지를 막아내는 것이 4.3 정신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화순 미해군기지와 대추리 미공군기지 확장을 막아내는 것이 4.3을 끝장내는 것입니다.”



다음 연설자는 세계적인 평화운동가인 오다마코토가 연단에 올랐다. 제주도 출신 현순혜 여사의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1932년 일본 오사카에서 나고 스무 살 전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중략) 나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조선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전쟁의 인식은 오사카에 미군 폭격이 시작되면서부터 나의 것이 되었습니다. 오사카 시가지가 철저하게 파괴되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습니다. 아니, 죽임을 당했습니다. 내 주변의 친척과 이웃들이 죽고 불에 탔습니다. 나도 여러 차례 죽을 뻔했습니다. 그것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살육과 파괴였습니다. 일본이 먼저 죽이고, 태우고, 빼앗음으로 인해 일본인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져 빼앗기는 역사를 겪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두 번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밤 위령제를 앞둔 전야제가 세계 전체를 향한, 그것이 세계의 누구든지 간에 국가와 민족의 차이를 막론하고 인간의 평화결의를 위한 전야제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평화헌법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날마다 강화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뜻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제3부 생명평화 2006에서는 평화를 위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춤 공연이 있었다.‘4.3 그리고 기억’에서는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영상과 함께 시낭송, 소리꾼 장사익씨의 찔레꽃, 제일동포가수 이정미씨의 영혼을 울리는 노래로 이어졌다. 4.3 때 아버지를 잃은 도법 스님은 연설에서 ‘4.3 정신이 생명과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한반도의 남쪽 한라산에서 시작된 그 생명과 평화의 물결이 북으로 북으로 이어지고, 남으로 남으로 퍼져나가 동서남북의 지구촌을 생명과 평화의 우주로 만들어 가길 바란다’는 4.3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짧았지만 알찼던 제주행사를 마치고 다시 찾은 곳은 평택 대추리였다. 580회 촛불집회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집회장에는 4.3 전야제를 다녀온 이야기가 주민들에게 전해졌다. 이야기를 들으며 주민들은 한바탕 웃음으로 답례했다. 대추리는 현재 전국에서 후원하고 있는 영농자금과 양수기 보내기 후원금액이 4,000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다음날 아침 대책위위원장 댁을 방문했다. 위원장은 영농조합에 나가고 없고 칠순 넘은 노부부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분들은 속엣것을 게워내야 속이 편할 것 같다는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37년도로 기억됩니다.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열 가호 마을 사람들이 세간 하나 건지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인 52년에 다시 미군이 접수하면서 강제수용을 당했습니다. 조상님들 유골도 수습하지 못하고 쫓겨났는데 얼마 뒤 미군들이 묘를 파헤쳐 놓고 유골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폭풍한설 겨울에 세간 하나 없이 미군에게 쫓겨난 동네 사람들은 땅을 파 거적을 덮고 두더지처럼 살았습니다. 젖먹이 아이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해 폐렴으로 죽기도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바다를 메워 개간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중장비가 있던 때도 아니어서 지게와 가래를 이용해 갯벌을 매립했습니다. 돌과 흙으로 제방을 쌓아놓으면 밀물이 들어와서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그렇게 70년대까지 매립을 해서 조금씩 논을 만들어 갔습니다. 마침 아산만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간척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땅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미군들이 내놓으라고 합니다. 요즘은 텔레비전 코미디를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 약봉지 좀 보세요. 주민들이 소화가 안 돼서 위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일흔 넘은 노인이 고향에서 죽는 게 소원이라는데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강점기란 말입니까?”



밖으로 나오자 이슬비가 내리고 있는 황새울 들녘은 트랙터들이 건답파종을 하고 있었다. 국방부에서 수로를 끊는 바람에 거액의 건답파종기까지 사서 파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곧 용역깡패들과 몇 천 명의 전경을 동원한 국방부의 토지수용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이다. 저 볍씨들 푸르게 일어서듯 올해도 내년에도 농사지을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땅으로 영원하길 두 손 간절히 모은다. 최종수 신부 기자 <이 기사는 `참소리`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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