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은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송추유원지→여성·오봉→도봉산유원지

"마, 진짜 쥑인데이…." 앞서 가는 남자의 경상도 사투리 진한 목소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다른 한 남자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등에 메고 있는 커다란 크기의 등산 배낭이 유난히 가벼워 보입니다.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날아가기라도 할 것 같습니다. 어디선지 휘파람 소리가 들립니다. 날씨 정말 좋습니다. 말 그대로 쥑여줍니다. 조그만 계곡에선 물이 졸졸졸 노래를 부릅니다.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하늘은 가을 하늘 그것입니다. 맑고도 파랗습니다. 들엔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납니다. 분홍색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나무들은 온통 연초록색으로 물들어갑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게 합니다.


#논 위를 가득 메운 자운영...맞죠??

행려의 입에서도 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무심코 부르다 `이게 무슨 노래지?`하고 생각해보니 산울림의 `산할아버지`입니다. "산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로 시작하는 노래 아시죠??
오늘 산행은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했습니다.
의정부까진 전철을 타고 갔습니다. 역에서 내려 동쪽 광장을 가로지르면 나오는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바로 오른쪽에 부곡동행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버스요금은 700원입니다. 푸른마을아파트 앞이나 송추유원지 입구 정거장에서 내립니다. 버스는 사패산을 오를 수 있는 안골을 지나 경민대를 거쳐 약 15분을 달립니다. 왼쪽으로 사패산의 웅장한 모습이 눈을 찔러 옵니다.
송추유원지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머얼리 여성봉과 오봉, 만장봉, 자운봉이 마치 한폭의 캔버스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능선 북쪽 끝자락은 조금 전에 보았던 사패산입니다.


#여성봉쪽에서 바라본 송추유원지

아침을 일찍 먹은 터라 횡단보도를 건너 좁은 골목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나오는 중국요리집에 들어갑니다. 실내는 허름하지만 자장면이 맛있는 집입니다. 한 번 기회가 있을 때 들러보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5분여 만에 자장면 한그릇을 뚝딱 해치웁니다. 포만감이 듭니다. 나와서 골목길을 더 걸으면 송추수영장이 오른쪽으로 보입니다. 끝자락에 송추유원지 대로와 만나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빠져나갑니다. 처음 경상도 사투리가 진한 남자 일행은 여기서 만난 것입니다.


#이름모를 야생화

오늘은 송추유원지 중간에 있는 갈래길에서 우회전, 여성봉-오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탈 계획입니다. 이 코스는 지난해에도 한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신 분들이라면 여성봉의 야릇한 바위 사진이 기억나실 겁니다.
갈래길 바로 못미쳐 슈퍼마켓에서 삶은 계란 3개와 물 2통을 삽니다. 오늘 날씨를 보니 땀 꽤나 흘릴 것 같습니다. 길 옆 논 위를 가득 메운 자운영이 행려를 향해 생글생글 미소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오봉매표소 직원이 아는 채를 합니다. 40대 중반의 아주머니입니다. 오랜만의 만남인데 얼굴을 기억하고 있나 봅니다. 기분이 더 좋아집니다. 몇몇 등산객들이 앞장을 서 걷고 있습니다. 경상도 사나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갈래길에서 송추폭포 방향으로 직진했나 봅니다.


#여성봉입니다. 야릇하죠??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서도 행려의 콧노래가 멈추지 않습니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산중전답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크기의 논과 밭이 그지 없이 정겹습니다. 이 언저리에 오두막 한 채 지어놓고 이 조그마한 논과 밭에 곡식 가꾸어 먹으면서 살았으면…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지금으로선 이루기 힘든 것이겠지만요.

오릅니다. 또 오릅니다.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안경을 적십니다. 연신 닦아 가면서 오릅니다. 등이 축축해져 옵니다. 숨이 가빠옵니다.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때맞춰 오르막이 끝납니다. 시야가 트입니다. 여성봉이 오롯한 자세로 행려를 맞습니다.


#여성봉 정상입니다.

매표소에서 30분이 걸렸군요. 꽤 빨리 오른 셈입니다. 여유 있게 걸으면 한시간 정도는 잡아야 합니다. 거리도 거리지만 급한 오르막길 때문이지요.


#주능선에서 본 오봉

등산객들이 급작스럽게 불어납니다. 이전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언젠가부터 명성을 떨치는 여성봉입니다. 여성의 심볼을 닮은 암벽을 오르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야릇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옵니다. 정말 야릇합니다. 혼자 간 행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정도입니다. 심볼을 지나면 마당바위 같은 넓은 바위가 펼쳐집니다. 송추와 올림픽부대 등 일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오봉도 보입니다. 슈퍼마켓에서 사온 삶은 계란을 까는데 단체로 온 등산객들 중 한 분이 사진 촬영을 부탁합니다. 주저하지 않고 응해줍니다. 날씨 덕분입니다.
다시 길을 나섭니다. 오봉까지는 제 걸음으로 약 20여분 걸립니다. 천천히 천천히 걸으려 마음 먹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습니다. 어느 순간 보면 빨라져 있는 발걸음을 확인합니다.
지난해 급한 오르막길에 나무계단 공사를 했습니다. 의도는 분명 좋을텐데, 왠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살려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전라도 말로 발걸음이 `폭폭` 합니다. 무겁다는 얘깁니다.
드디어 오봉입니다. 언제 와봐도 장엄합니다. 바위 위에 저 소나무도 지난해 그대로입니다. 가지 끝에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우이동이 보입니다.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도 한 눈에 들어옵니다. 오봉의 주요구성원인 다섯 개의 봉우리도 행려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변함 없는 자연입니다. 그 자연이 새삼 고맙습니다.
발걸음을 옮깁니다. 내리막길이 나옵니다. 오늘은 만장봉 쪽 능선길로 향하다가 칼바위 못미쳐 갈래길에서 우이암 쪽으로 빠질 계획입니다. 등산객들이 많습니다. 모두 다 기분이 좋아보이는 얼굴들입니다. 지치거나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번갈아 20여분 걸으면 왼쪽으로 송추폭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칩니다. 직진합니다. 한동안 말라 붙었던 이마의 땀이 다시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합니다.
벌써 몇 번을 말랐다 맺혔다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손으로 땀을 닦으면서 보니 진액이 나온 것 같군요. 일주일 내내 몸 안에 쌓였던 알콜 기운이 모두 빠져나온 것일까요?? 하산하면 다시 채워질 일이겠지만요.
오늘은 위험하니 돌아가시오, 안내판 말을 듣지 않습니다. 무작정 오릅니다. 암벽도 탑니다.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까짓거 괜찮습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거기다 행려는 나름대로 산 꽤나 탔다고 자부하는 몸입니다.
발 아래로는 절경이 펼쳐집니다. 위험할수록 아름답다?? 아름다울수록 위험하다?? 그건 자연이나 인간들에게나 모두 적용되는 말일 것입니다.
산 아래선 지고 있던 진달래꽃들이 산정상에선 많이 눈에 뜨입니다. 마치 분재처럼 자그마한 크기로 바위 틈새를 비집고 자란 진달래 나무에 그만큼 자그마한 꽃들이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모습입니다.
몇십년을 자랐을지 모를 키작은 소나무 가지에서 새로 나온 솔잎 몇 개를 따서 입에 넣어봅니다. 향긋한 냄새가 입안 가득 퍼집니다. 문득 동해안에서 심각한 상태로 퍼지고 있다는 재선충병이 떠오릅니다. 여긴 괜찮겠지….
칼바위능선 바로 아래 갈래길에 이릅니다. 과감히 우회전,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나무계단입니다. 능선길을 타고 하산하다 우이암 못미쳐 갈래길에서 좌회전합니다. 도봉산유원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완만한 하산길에서 숨을 돌립니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발을 담갔습니다. 피곤이 한꺼번에 풀립니다. 이럴 때 옆에 막걸리 한 통과 같이 마셔줄 동행이 있다면…. 오늘은 술을 참아볼 생각입니다. 유원지에 내려오니 향긋한 음식내음이 진동을 합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그래도 참습니다. 500원짜리 오뎅 두 개를 후다닥 사먹습니다. 유혹을 참기 위한 한가지 방법입니다. 꽃씨가 날립니다. 여인네의 치맛자락이 날립니다. 마지막 봄날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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