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납북자 문제

지난 4월11일,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씨의 남편이‘한국인 납북자인 김영남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일본 정부의 DNA감정결과 발표를 계기로 납북자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요코다 메구미씨는 1977년 당시 13세의 나이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납치문제의 상징적 인물이다.

이번 감정결과 발표를 계기로 국제사회의 반향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에 대해 김영남씨 문제에 대한 확인요청을 했고, 납북자 문제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4월말로 예정된 요코다 사키에(요코다 메구미씨의 어머니)씨의 미 하원 청문회 증언도 납북자 문제의 국제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본의 납치피해자 단체들은 다양한 국제적 로비활동을 벌여왔지만, 미 의회에서 납치피해자 가족이 증언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특히, 위폐, 돈세탁과 관련해 미국이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가하면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 그리고 올해 들어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핵문제’에서 ‘북한문제’로 전환하고 있다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인 납치문제가 미 의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요코다 메구미씨의 남편이 김영남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가 나오게 된 계기는, 납북자가족회(대표 최성용)가 2006년 1월4일 한국의 청와대와 외교부 및 일본의 내각정보조사실과 외무성에 요코다 메구미씨의 딸 김혜경씨와 한국 내 납북자 가족 5인의 DNA 조사를 요청하는 공문서를 전달한 것이다.

즉, 요코다 메구미씨의 남편 김철준(북한측이 밝힌 이름)씨는 1977년 전남 홍도에서 납치된 이민교(당시 18세), 최승민(당시 16세), 78년 전북 군산 선유도와 홍도에서 각각 납북된 김영남(당시 16세), 이민우(당시 17세), 홍건표씨 등 중 1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가족 5인의 혈액 및 모근을 확보해 대학병원에 보관 중이었고, 이 샘플을 통해 DNA조사를 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납북자가족회의 최성용 대표는 북한이 김철준씨의 신원을 공개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2004년 9월 중국에서 만난 북한 관계자들로부터 요코다 메구미씨의 남편 김철준씨는 납북자라는 말을 들었던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납북자가족회에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한 것은 일본 정부 측이라는 언론의 보도(<월간조선> 2006년 2월호)도 있기 때문에 그 경위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경위야 어떻든, 한국의 납북자가족회의 DNA감정 요청을 받은 일본 정부는 2개의 연구기관에 DNA감정을 의뢰했다. 이 중에서 1978년 전북 군산의 선유도에서 납북된 김영남(당시 고교생)씨의 가족에게서 채취한 DNA샘플이 김혜경씨의 DNA샘플과 친자관계일 가능성이 극히 높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04년 11월 베이징 북일 실무협상 당시 김철준씨에게 DNA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를 요청했으나‘특수기관’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반면, 요코다 메구미씨의 딸 김혜경씨의 머리카락과 혈액은 2002년 9월에 이미 확보해 놓았다. 일본 정부는 확보하고 있던 김혜경씨의 DNA샘플과 한국의 납북자가족회로부터 수령한 5인 가족의 DNA샘플을 2개의 연구소에 보내 감정을 했다.

2개의 연구소에 의뢰한 것은 요코다 메구미씨의 유골감정 결과에 대한 논란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2004년 말 북한 측은 사망한 요코다 메구미씨의 유골을 일본측에 인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DNA감정결과 북한이 건넨 유골은 “가짜”라고 발표했고 이에 대해 북한이 조목조목 반박하는 입장을 발표함으로써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영국의 과학전문잡지인 <네이처> 2005년 2월2일자 온라인판이 ‘화장된 유골은 1977년에 납치된 소녀의 운명을 증명할 수 없다’라는 제하의 기사는 감정단에 참가했던 요시이 토미오(테이쿄대학 강사)씨 등의 인터뷰를 통해 ‘감정결과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유골의 진위를 둘러싼 진실공방에 파문을 던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감정결과의 발표시기와 관련된 일본의 내부 사정이다. 일본 정부의 경우 이미 3월에 김혜경씨와 김영남씨의 친자관계 가능성이 극히 높다는 감정결과를 확보하고 있었고, 감정결과의 발표시기만을 조정 중에 있었다고 한다(마이니치신문 4월11일). 일본의 언론들이 감정결과에 대한 공식발표가 있기 훨씬 전부터 일본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인 김철준씨는 한국인 납북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를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감정결과의 발표 시기와 관련해서, 외무성 등에서는 북일관계 뿐만아니라 한일관계에도 미칠 영향을 감안해 한국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우세했다. 그러나 아베신조 관방장관 등의 강력한 주장으로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가 열리고 있는 때를 택했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이후 6자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6자회담 참가국의 수석대표들이 모두 모여 세계의 이목이 토쿄로 집중되었을 때 감정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납북자 문제를 국내외적으로 이슈화하는데 효과적이라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일본의 언론들도 이러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납북자 문제를 국제정치 무대에서 이슈화하고자 하는 것이 ‘문제해결지향적 의도’만이 작용한 것이 아니라는 부분에 있다. 이번 DNA 감정 결과 발표에 의해 일본의 대북여론이 더욱 악화된다면 일본 정치권에서 아베신조 관방장관을 포함한 대북강경파의 입지가 더욱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특히, 이번에 한국 정부와의 협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외무성의 견해를 누르고, 독자적으로 일본 정부가 감정결과를 발표한 것은 아베신조 관방장관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관방장관은 납치문제의 해결사라는 이미지를 일본 국내 뿐만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각인시킨 계기를 확보한 것이다.

또한, 아베 관방장관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동북아시아 협력대화의 시기를 활용해 감정결과 발표를 강행한 것은, 차기 총리후보군 중 하나인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차기 자민당 총재 후보군 중에서 아베신조 관방장관은 대중적 지지도에 있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주를 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여론조사에서 아베 관방장관을 바짝 추격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보다 당내 세력이 확고하지 못한 아베 관방장관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베 관방장관이 김혜경씨와 한국인 납북자 가족들의 감정결과 발표에 있어 독자적인 행보를 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민당 내 원로그룹의 지지를 받고 있는 후쿠다 야스오 전 장관은 한국 및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한 전향적 외교를 자신의 색깔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일본 국내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일본인 납치문제는 9월에 실시될 예정인 자민당 차기 총재 선거(차기 총리 선거이기도 함)의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민족주의 색깔의 ‘정치적 레토릭’으로 표를 만들고 있는, 최근의 일본 정치지형과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가 고도로 정치화될 가능성이 높다. 납치문제와 독도 문제,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 ‘북방영토’(쿠릴열도) 문제 등에서 때때로 자민당보다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제1야당인 민주당의 행보는 그러한 예상을 뒷받침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말,‘납치, 일본은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문구가 담긴 포스터를 작성, 배포했다. 일본 정부의 납치문제 해결의 의지를 밝히고 정부와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밝히기 위함이라고 한다. 또한, 북한에 대한 압력의 일환이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같은 조치가 문제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누가 보더라도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자의 귀국, 특정실종자(납치피해자로 의심되는 사람)에 대한 진상규명, 납치 책임자 처벌, 실행자 신병인도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이 더욱 강화될 것은 분명하다. 갈수록 높아지는 납치피해자 단체들과 여론의 압력을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경찰과 공안기관의 조사(귀국한 납치피해자와 탈북자 등에 대한 사정청취와 조사)를 통해 신광수, 김세호, 우오모토 3인을 ‘납치 실행범’으로 지명하고 북한에 이들의 신병인도를 요구해왔다. 한편, 하라 타다아키(原?晁)씨의 납치에 관여한 혐의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전 조선학교 교장 김길욱씨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놓은 상태이다. 특히, 신광수씨는 납치사건에서 상당한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것이 일본 측의 주장이다. 일본 측의 이러한 요구는 사망자나 생사 불분명자에 대한 진상조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타협의 여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책임자 처벌, 실행자 신병인도 등에 대해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처지도 더 이상 ‘중재자’로서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 정부의 ‘미연적 태도’에 대해 불만을 가져왔던 한일 양국의 납북자 단체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정부에 대해 강력한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납북자가 ‘혈연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애초부터 납북자 문제가 북일간 관계를 넘어 남북한과 일본 3자가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납북자 문제에 대한 대처와 동시에 남북관계의 진전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납북자 문제의 제기를 억눌러 왔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시각이다. 물론, 그런 평가에 대해 일견 타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신뢰관계가 쌓이면, 어렵고 민감한 문제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정부 정책의 기조였다. 이런 상황에서 납북자 문제는 2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한국 민간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왔던 대북정책을 의도적으로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사실 남북관계의 진전이 납북자 문제를 포함한 제반의 ‘인도주의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그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그러한 지적들이 편의적으로 한 가지의 명백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납북자들은 군사독재정권, 특히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기에 자신들이 납북자 가족들이라는 점을 밝힐 수도 없는 핍박과 탄압을 받았다는 점이다. 또한, 군사정권 시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정보기관과 경찰공안당국은 기족들과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 제공도 해주지 않고, 사실을 무마하기에 바빴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납북자들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이중의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특정한 정치적 의도의 과잉은 사실을 왜곡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문제해결의 길을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한국과 북한, 일본과 북한 양자간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채널을 확보하고, 이 과정에서 납북자 문제를‘어떻게 탈정치화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준규 기자 <이준규님은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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