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한 노무현 대통령 '울란바토르 발언' 그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이 수많은 추측과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에 나돌아온 `10월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이 수면위로 부상한 양상이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을 앞둔 시점이어서 실현 가능성은 더욱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있었던 건 지난 9일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 한 음식점에서 가진 동포간담회 자리였다.
노 대통령은 "미국하고 주변국가들과 여러 가지 관계가 있어 정부가 선뜻선뜻 할 수 없는 일도 있는데, 김대중 전대통령이 길을 잘 열어주면 저도 슬그머니 할 수 있고요"라며 6월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을 통해 자신과 김정일 위원장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를 희망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북한에 대해 완전히 열어놓고 있어"

노 대통령은 이어 "저는 북한에 대해 완전히 열어놓고 있다"며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해보자, 우리 국민들은 북한 체제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어떻든 함께 안정적 토대 위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수십번 얘기했다"고 공식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직접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아직도 우리가 예를 들어 한미 연합훈련을 하고 있는데, 훈련 내용이 북한에서 보기에 불안한가 보다. 반격이긴 한데, 반격이 원체 단호해서 보기 따라 불안하게 볼 수 있고, 어찌 보면 시비일 수도 있고, 실제로 불안할 수 있는 여러 사정이 있다"며 "이런 사정 때문에 북한도 마음을 선뜻 못 열고, 내부에도 복잡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면 북한도 가볍게 융통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상당히 기대를 가지고 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한다"며 "양보를 원칙 없이, 국민 보기에 따라 자존심 상하게, 원칙 없이 양보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모든 것을 북한 뜻대로 하자, 북한에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이런 방식으로 양보할 수 없지만, 본질적인 정당성의 문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것을 양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제도적 물질적 지원 이런 것은 조건 없이 하려고 한다"고 남북정상회담시 대대적 경협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많은 양보`를 언급한 이유에 대해 "서로가 옛날에 싸운 감정이 있고 불신이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고 자연히 군사력이 세니까 혹시 북한 정권이 무너지기 바라거나 그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데, 그 불신이 있는 동안 어떤 관계도 제대로 진전이 안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상대방과의 대화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많은 형식의 문제가 있지만 불신, 불안감을 제거해주고 `해칠 생각이 없다, 흔들 생각이 없다, 같이 손 잡으면 우리도 발전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 때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의 북한 변화에 대해 높은 평점을 주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개성공단을 열었다는 것은 소위 옛날식으로 말하면 남침로를 완전 포기한 것이며, 금강산도 서로 싸움하면 대단히 중요한 통로인데 열었다"고 북한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우리도 조금 믿음을 내보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대북 특사??

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자연 끝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중 하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특사로 2차 정상회담의 물꼬를 트는 분위기를 조성하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최성 의원의 발언은 이와관련 주목할 만하다. 최 의원은 10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의 전화인터뷰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남한 내의 정서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어렵기 때문에 10월 개천절을 전후해 노 대통령이 평양에 가는 방향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흐름과 분위기가 있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을 사실상의 남북 정상회담 제의로 본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과는 `질적 내용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몽골 발언`의 경우 김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이 예정돼 있는 상황이고, 장관급 회담도 10여 차례 이상 이루어져서 남북간의 교류가 거의 전무하던 베를린 선언 당시와는 객관적인 조건에서 부터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점도 있다. 바로 그동안 줄곧 남북정상회담의 전제로 내걸었던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김대중 전대통령이 길을 잘 열어주면…"이라고 말한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다시 말해 `김 전 대통령이 잘 열어주는 길`이 바로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뭐니뭐니해도 `6자회담의 답보와 지체`라고 할 수 있다. 6자회담은 작년 11월 이후 6개월째 공전되고 있고 언제 열릴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금융제재에 이어 탈북자 수용 등 위폐와 인권 정책, 납북자 문제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사안을 동원해 북한에 대한 공세를 계속 강화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태대로라면 한반도에서 불투명한 구조가 자칫 고착화 될 가능성마저 높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몽골발언은 이같은 한반도의 불확실한 정세를 고려해봤을 때 현재 처한 난국을 타개함과 동시에 향후 어떤 방향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정책을 이끌어 나갈지에 대한 방향지도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노 대통령은 현시점에서 불안정한 상황 타개를 위한 중요한 진전을 다음달 평양을 방문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선긋기?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대북 정책에서 `미국과의 선긋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현재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미 관계는 최악의 갈등 국면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 예가 지난 4일 미 백악관이 주한 미대사관을 통해 국내언론에 배포한 `부시 대통령과 제이 레프코위츠 대북인권특사의 환담사진`이다. 전문가들은 대단히 이례적인 이번 사진 배포와 관련 부시 대통령이 레프코위츠의 강경한 대북 인권 압박공세를 전폭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동시에, 한국정부에 대해 대북 인권압박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레프코위츠는 "개성공단이 북한정권의 최대 돈줄이 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미국이 금융제재를 통해 북한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데, 한국이 이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백악관의 사진 공개는 이런 레프코위츠의 발언에 이종석 통일부장관 등 정부관계자들이 `내정간섭`이라고 강력히 반박하고 있던 와중에 이뤄진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부시 역시 레프코위츠와 생각을 같이 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최성 의원은 이와관련 "남북 관계의 진전이 북미 관계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며 한미 관계를 훼손시키겠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며 "북핵포기, 6자 회담 복귀를 유도하는 쪽으로 노력한다면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윈윈할 수 있다"고 답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냄으로써 긴장이 높아 가는 한반도 정세를 다시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제 공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넘어갔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모두 나서 대화를 요청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의 태도다. 김 위원장은 현재 부시 대통령에 대해 절대적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하순 후진타오 중국국가주석이 방미해 부시대통령과 정상회담후 극비리에 특사를 보내 6자회담 복귀를 주문했음에도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한 바 있다. 이라크에 이어 이란 핵문제로 사막의 늪에 깊숙이 빠져 북한에 대한 직접공격의 여력이 없는 미국과 굳이 아쉬운 대화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인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정상회담의 실현 여부는 철저히 김 위원장에게 달려있으며, 이에 김 위원장이 과연 정상회담을 수용할지, 수용한다면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무엇을 내걸지에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 `북풍?` 들썩

한나라당이 벌써부터 노 대통령 제안을 비난하고 나선 것도 남북정상회담 실현시 몰아닥칠 후폭풍의 파괴력을 감지한 때문일 것이다.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몽골까지 가서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며 “이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로 남북문제를 순전히 지방선거용으로 이용하기 위한 의도적 파문 발언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는 당의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이 대변인은 2차 남북정상회담 장소와 관련, “합의했던 답방도 없이 재차 남북정상회담을 북에서 하려 한다면 이는 한반도에서의 국가정통성 주장에 정부 스스로 굴복하는 결과가 된다”며 “남북정상회담의 구걸은 매우 중대한 일로 대통령은 남북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대폭 양보를 언급한 부분에 대해선 “(노 대통령은) 인도적 현안 하나 근본적으로 해결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국민 혈세가 노무현 대통령 사유재산도 아닐진데 국민 공감대 형성도 없이 어떻게 무분별한 대북지원을 공개적으로 약속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방호 정책위의장, 김용갑 의원 등 보수성향의 한나라당 중진의원들도 가세하고 나섰다.
이 의장은 “남북관계에는 협상할 많은 일들이 있다”며 “협상은 우리가 숨겨놓고 지렛대로 이용하는 건데 정부가 미리 모든 걸 양보하겠다는 식으로 발벗고 나서면 정상적인 협상이 되겠느냐. 남북관계가 건전하게 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 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길을 잘 열어주면 나도 슬그머니 할 수 있다”고 한 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나라의 격을 떨어뜨리는 발언”이라고 지적하면서 “임기 말에 쫓기듯 한건 하겠다는 초조감에 젖어 정상회담을 하려는 것은 좋지 않다. 국익 위주의 남북관계 해결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김 의원은 당 홈페이지에 올린 ‘노무현 몽골 발언, 북풍 이용한 대선전략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민들은 먹고 살 길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북한에 또 다시 퍼주기를 하겠다는 것이니, 화투판에 미쳐서 집문서까지 들고 나가는 아버지와 무엇이 다른가”라며 노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김 의원은 또 “북풍을 이용한 새로운 대선 전략”이라며 “계속해서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돌파할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자, 또 다시 ‘북한’이라는 카드를 들고 도박판을 벌이겠다는 것이고 국민들의 엄청난 저항과 역풍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창환 기자 kim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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