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씩씩하기만 했던 현승이 나중엔 힘이 드는지 말도 없어지고 속도도 느려져

큰집 식구와 우리집 식구 그리고 막네 고모네 식구들끼리 망우산에 갔다. 막네 고모네 현승이는 아직 3살 밖에 안된 남자 아이다. 내게는 사촌 동생이 된다.

그런데 현승이도 오늘 등산을 하기로 결심 했나 보다. 비록 산이 높진 않지만 평소에도 개구쟁이고 장난꾸러기인 현승이가 어떻게 올라갈지 걱정이었다. 망우산 입구에 큰집 식구와 우리집 식구가 먼저 버스를 타고 가서 도착했다. 현승이네 가족을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터여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가운데가 현승이, 오른쪽은 수빈이랍니다.

기다리는 도중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다오자 현승이네가 도착했다. 현승이는 언제 봐도 깜찍하고 귀엽다. 거기다 장난꾸러기다. 날 무척 잘 따른다. 이전에 한 번은 현승이가 내가 보고 싶다고 밤 늦게까지 울어대는 바람에 고모와 고모부가 고생을 한 적고 있다고 한다. 결국 다음날 일찍 고모네는 우리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아빠와 큰 아빠, 고모부 등 남자들은 먼저 출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와 중간의 헬기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물론 현승이 때문이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빨리 가지 못하는 탓이다.

큰아빠, 아빠 고모부가 먼저 출발한뒤 우리는 현승이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 갔다.
현승이는 쌩쌩했다. 처음엔 뛰기도 하고 말도 계속 해서 조잘거려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태도가 달라졌다.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말수도 없어지고 걷는 속도도 느려지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현승이를 안았다. 물론 무거웠지만 의젓한^^ 누나로써 당연히 해야 될 일. 안고 가는 도중 현승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았다.


#잠시 쉴때...

묘지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걸어갔다. 날씨가 참 좋았다. 멀리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약수터를 지나면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계신다. 슈퍼마켓 등에서 500원씩 하는 걸 1000원에 파는데도 장사가 아주 잘됐다. 더운 날씨에 산을 오르느라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이다. 이전에 몇 번 사먹은 경험이 있는 데 날씨가 덥지 않아도 꿀맛이었다.

이번엔 막네 고모가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현승이 안고 가느라 고생했다고 하시면서…. 아이스크림은 아주 시원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이 말라버릴 정도로 시원했다.

물론 현승이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하지만 먹는 속도가 느리다보니 자꾸 녹아내리는 게 아닌가. 고모가 흐르는 부분을 몇 입 먹다 보니 아이스크림이 금새 다 없어져버렸다. 현승이가 우는 건 당연한 일. 그렇다고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 아이스크림을 사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쓰다가 큰엄마께서 묘안을 짜내셨다. 바로 물로 달래는 것이었다. 현승이도 목이 말랐는지 물 몇 모금을 마시고 울음을 그쳤다.

가파른 경사길이 이어졌다. 나무계단이 놓여져 있었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약 30여분을 지나서야 간신히 첫 번째 헬기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빠 일행과 만나려면 여기서도 한참을 더 가야 했다.

현승이는 나름대로 다시 신이 난 모양이었다. 넓디 넓은 헬기장을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겨우겨우 약속장소인 두 번째 헬기장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망우산 입구에서부터 벌써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보람도 있었다.

경치를 구경하면서 조금 기다리다 보니 아빠 일행이 오셨다. 배가 고팠다. 다시 첫 번째 헬기장에 도착해 자리를 깔고 각자 싸온 도시락을 폈다. 밥 맛은 아주 좋았다. 현승이도 정신 없이 먹어 댔다. 숟가락질을 하다가 답답한지 나중에는 밥을 손으로 퍼서 입에 넣기도 했다.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온 식구들이 배꼽을 잡고 깔깔 대며 웃어댔다. 아빠가 그런 현승이를 보고 한마디 하셨다.


#손으로 밥을 먹는 현승이. 얼마나 배가 고팠길래...쯧쯧

"야, 이거 6.25전쟁 때 피난 가다 밥 한 숟가락 얻어먹던 고아 같구나."
밥을 꽤 많이 싸온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다 없어졌다.


#헬기장에서의 가족들 만찬시간.

이제 내려가야 한다.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다가 중간에 다른 내리막길로 빠졌다. 사가정공원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사가정공원은 바로 산 아래에 있었는데 여러 가지 놀이기구와 함께 시설이 참 좋았다. 나뭇잎 위에 하얀 꽃이 별처럼 피어있는 나무가 있어서 아빠에게 물어봤더니 `산딸나무`라고 알려주셨다. 그런데 하얀 꽃은 꽃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파리인데 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아빠가 설명해주셨다. 왜 `산딸나무`라고 부르느냐고 물어봤더니 가을에 딸기같은 열매가 열려서 그렇게 부른다고 얘기해주셨다.


#사가정 공원에서 한 컷.

사가정공원에서 사진도 찍고, 놀이기구도 타며 놀았다. 울퉁불퉁 조그마한 돌들을 깔아놓은 것도 보였다. 뭔가 했더니 맨발로 걸으면서 지압을 하는 곳이었다. 수빈이와 함께 해봤는데 발바닥이 무척 아팠다. 하지만 피로가 회복되고 건강에 좋다고 안내판에 설명이 돼 있어서 꾹 참고 몇차례 왕복을 했다.


#산딸나무. 하얀 건 꽃이 아니고 잎파리래요.

올라왔던데 말고 다른길로 내려왔는데 다 내려오니 놀이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조금 놀았다. 지압하는 것도 있어서 수빈이와 해봤다.
내려오는 길, 역시나 아빠 일행은 막걸리를 드실 태세였다. 처음 들어간 곳은 오징어 횟집. 5마리에 만원씩 하는 곳이었는데 내가 안된다고 우겼다. 오후 5시45분부터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TV에서 방송하는데 그 집엔 TV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을 더 걸어내려오는데 이번엔 3마리에 만원씩 하는 오징어횟집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곳에서 먹기로 결정. 나 때문에 2마리씩이나 손해봤다고 아빠랑 큰 아빠가 놀려댔다. 그래도 할 수 없는 일. 난 꼭 TV를 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징어회는 굉장히 신선했다. 한참을 먹고 있는 현승이가 조용한 게 아닌가. 돌아보니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현승이는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다 먹고 자는 현승이를 데리고 큰집에 우르르 몰려갔다. 그곳에서 또 어른들 2차가 이어졌다. 맥주에 똥집과 과일이 안주였다.
나도 똥집과 과일을 주섬주섬 챙겨먹었는데 지친 몸을 회복시켜주는 것 같았다. 역시 피로회복에는 많이 먹는 게 최고^^. 잠시 뒤 결국 현승이와 헤어졌다. 현승이는 한사코 가져오지도 않은 자기네 차를 타야겠다고 우겨댔다. 비슷한 차 모양만 보면 전부 자기네 차라고 하면서…. 택시나 버스는 절대 타지 않겠다고 종알 거렸다. 그러면 걸어가야 한다고 했더니 걸어가겠단다. 정말 장난 많고 천진스러운 내 사촌동생 현승이다.
참 현승이 걸어갔느냐고?? 아니다. 걸어서 가려면 최소한 몇 시간은 걸릴 거리이기 때문이다. 고모와 고모부가 설득해서 택시를 타고 갔다.
다음에 또 현승이와 산에 갔으면 좋겠다. 힘들지 않은 곳으로…. 정다은 기자 <정다은님은 청량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위클리서울 어린이마당 기자로 맹활약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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