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중동 재편 전쟁' 뒤 미국의 이중작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으로 중동에 다시금 전운이 감돌고 있다. 최근의 중동 사태는 우발적인 충돌의 결과라기보다는 중동 밑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던 거대한 기류가 레바논이라는 약한 지대를 뚫고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동은 돌이키기 어려운 충돌과 대결의 길로 접어 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중동 재편 전쟁`이며 미국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정밀유도폭탄을 지원하는 한편 최근엔 레바논에 구호물자를 보내는 이중의 작태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을 통해 반미 반이스라엘 기치를 들고 중동에서 확산되고 있는 급진 이슬람주의와 이란이 주도하는 시아파 영향력 확대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나섰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레바논, 美 우호국과 위협세력 맞붙는 대리전 전쟁터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이스라엘-일부 아랍국가들과 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등장한 헤즈볼라와 이란이라는, 중동의 지각판 밑에 흐르던 거대한 용암이 레바논에서 분출했고, 레바논은 다시 한번 대리전 전장이 되었다.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 이후 중동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숙적이던 사담 후세인이 사라진 `권력공백`을 타고 이란은 급속하게 영향력을 확대했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한 분노로 중동 민심은 급격하게 급진 이슬람주의로 기울었다. 이런 새 바람 속에서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선거를 통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시리아, 이란과 연대를 강화했다.

미국의 주요 동맹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이집트 정권은 점점 더 `미국의 꼭두각시`로 몰렸고, 초조해진 이들 아랍 정부는 이란-이라크-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초승달지대 등장`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직후 열린 아랍 긴급 정상회의에서 이들 국가들은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이 아닌, 헤즈볼라를 비판해 초조감을 드러냈다.

美 `레바논 침공` 깊숙한 개입 `증거` 속속 드러나

즉각 정전 호소를 무시하며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침공 뒤 미국 정부에 지난해 체결한 무기공급계약에 따라 정밀유도폭탄을 신속하게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미 정부는 즉각 이 무기들을 이스라엘에 보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요청을 받고 며칠 만에 정밀무기를 내준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이란이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해온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 중동 지역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중동 곳곳에선 이에따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략과는 거리가 먼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

이슬람권 전역에선 헤즈볼라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시위가 연일 열리고 있다. `BBC`는 이스라엘이 단기적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군사적 능력시킬 수는 있지만, 강력한 풀뿌리 지지를 받고 있는 이들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며,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이슬람권과 서구의 긴장을 높이고, 극단 이슬람주의에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안에서도 이번 사태가 미국의 패권 자체를 위협할 수 있으며, 미국이 이란, 시리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1일 신아메리카재단 연설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무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중동사태는 미국의 `전지구적 지도력` 행사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우리가 실패한다면 이 리더십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한편 헤즈볼라의 저항이 예상 밖으로 강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스라엘과 레바논간의 무력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레바논간 무력분쟁 장기화

이스라엘은 지난 12일 레바논 공격을 시작한 이후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기 위해 헤즈볼라 근거지에 대한 공습을 계속해 왔지만 헤즈볼라의 미사일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26일 레바논 남부 빈트 즈바일과 마룬 알라스 마을에서 벌어진 교전에서는 이스라엘군 9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이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공격한 이후 가장 큰 피해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로켓포 발사대의 50%를 폭파했으며 1~2주일이면 헤즈볼라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장담했었다. 또 헤즈볼라의 무기고가 곧 바닥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지만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은 계속되고 있고 지상군에 대한 저항도 예상보다 강력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레바논에서 더이상 확전을 하지 않는다고 결정했지만 헤즈볼라가 무장해제될 때까지 전투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3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할 수 있도록 군 당국에 허가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다만 지상공격을 확대해야 한다는 군의 요구는 거부했다.

그동안 지상군 공격 결과지형지물에 익숙한 헤즈볼라에 유리한데다 헤즈볼라의 게릴라전이 이스라엘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에 대해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주쳤던 어려움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또 유엔 감시단 건물 폭격 등으로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스라엘에게는 전투를 확대하는데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진보 근대화 노력 세력과 친미 보수 두 기류 각축

그렇다면 이번 레바논 사태로 표출된 밑바닥 변화의 진원지는 무엇일까?
1, 2차 대전 이후 중동·이슬람 사회는 두 가지 기류가 각축했다. 하나는 케말 파샤-나세르로 이어지는 진보적이고 세속적인 근대화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로 상징되는 친미보수적 왕정 흐름이다.

73년 4차 중동전의 패배를 전후하여 전자의 흐름이 좌절되고 중동 전체가 친미 기류에 빠져드는데 이에 대한 엘리트 사회의 반발이 전통 이슬람으로 회귀하려는 보수적인 흐름으로 나타났다. 이란에서 호메이니옹이 주도하는 이슬람 혁명이 성공한 것과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이슬람에 기초한 극단적인 반미세력이 성장한 것이 비슷한 맥락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역사적인 계보로 보면 케말 파샤-나세르의 근대적인 노선을 계승하는 세속적인 흐름이다. 이집트의 나세르가 범아랍통합이라는 진보적이고 이상적인 전망을 위해 분투했다면 후세인은 70년대 중동 사회의 친미, 패배주의를 배경으로 자국, 정권의 이익에 급급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은 미국과 보수적 왕정 국가들이 진보적 성격을 상실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부를 사주하여 이란을 발원지로 하는 이슬람의 확장을 막으려는 대리 전쟁, 반혁명공세였다. 이란-이라크 전쟁을 통해 이란 혁명은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고 성공적으로 저지되었다.

이란의 공세가 저지되면서 이슬람주의의 확산이 외연상 지체되었지만 미국의 패권주의,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가속화되면서 이슬람주의는 내면적인 확산의 길을 걷고 있었고 이는 조만간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이단아와 9.11이라는 충격적인 시도로 나타났다.

미국 이라크 침략으로 라덴과 알-카에다 강경세력 전면 부각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70년대부터 확장하기 시작한 강경 이슬람의 일파이지만 당시로 보면 지류에 불과했다. 지류에 불과하던 라덴과 알-카에다 계열의 강경 이슬람을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킨 것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다.
미국의 강경 세력은 때마침 터진 9.11사건을 숙원이었던 이라크 침략에 악용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중동 사회 전체가 반미와 강경 이슬람에 동조하기 시작했고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세력은 이를 배경으로 급속히 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9.11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진행되고 있고 테러 공포는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의 결정적인 결과는 중동의 중심 국가 이란에서 강경 이슬람 정권이 출현한 것으로 귀결됐다.

2005년 6월 치러진 이란 대선에서는 하타미류의 온건 개혁파 대신 아마디네자드의 강경 이슬람세력이 집권에 성공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빈 라덴 계열의 테러 네트워크 수준의 변방, 지류적 반발이 아니라 인구 7000만의 큰 규모의 중간 국가에서 반미와 이슬람을 표방하는 정권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첫째,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중동 민심이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출현했으며 둘째,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반면교사로 이란의 군비 확장에 대한 정치적 부담에서 자유롭고 셋째, 이라크와 같은 중동 내부의 강력한 견제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등장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은 이 세 번째 측면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는 이란발 이슬람주의 확장을 저지시킨 일등공신이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함으로써 강경 이슬람에 대한 가장 튼튼한 견제 세력을 스스로 해체해 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중동 전역에 만개해 있는 반미주의를 배경으로 곳곳에서 강경 이슬람이 세를 확장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선거를 치를수록 시아파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고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선거에서는 각각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영향을 확대하거나 집권했다. 그밖에 이집트 선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중동사회를 가르는 또다른 변수는 소말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빈 라덴 계열의 이슬람 군벌의 약진이다. 소말리아에서는 `이슬람법정연대`가 수도인 모가디슈를 장악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계열이 재기에 들어갔다. 소말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빈 라덴 계열이 테러 단체, 테러 네트워크 수준을 뛰어 넘어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태이다.

중동은 거대한 지각변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거대한 지각변동의 양 극단을 차지하는 세력은 이라크를 침공하고 이를 발판으로 중동 전역을 장악하려는 미국-이스라엘의 보수강경파와 79년 이란 혁명으로 시작해 2005년 아마디네자드 정권으로 집중된 중동의 강경 이슬람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은 양 세력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대결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갑작스레 레바논 난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중작태`를 보이고 있다는 원성을 사고 있다.
지난 26일 영국 타임스는 "미국의 레바논 구호품이 도착한 25일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모인 2,000여명의 레바논 난민들이 미국의 태도에 거세게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4일 미국은 레바논에 3000만달러 상당의 구호물품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25일 긴급 공수에 나섰다. 이날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구호품 전달 기념식이 끝나자마자 이스라엘은 기다렸다는 듯 레바논 남부 지역 공습을 재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레바논 국민들은 미국의 태도를 두고 이스라엘에게 더 많은 무기를 팔기 위해 자신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집을 잃은 한 레바논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한 남성은 "부시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수십만달러의 무기를 제공하면서 우리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더 많은 폭탄을 팔기 위해 우리를 살려두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순애 기자 lees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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