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범여권 제3시대 열리나

열린우리당의 상황이 점입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달 전당대회에 대한 틀을 잡아놓긴 했지만 탈당 행렬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여권 내부에서는 예상에 비해 수위가 낮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위기 상황은 위기 상황`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다.
무엇보다 범여권의 움직임은 오는 연말 대선정국을 겨냥,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창당 주역인 이른바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이미 당을 떠났고 또 한 사람도 시기 결단만 남은 것으로 전해진다.
여당 관계자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치실험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면서 "범여권을 중심으로 제3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신-정은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었다.
지역구도 극복과 정치개혁이라는 두 명분을 중심으로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2004년 탄핵 정국과 맞물리며 제1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 전 의장과 천 의원은 이미 "열린우리당은 실패했다"면서 사실상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린 상황이다.
2002년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에 대해 원내에서 가장 먼저 지지를 선언했던 천 의원은 이미 탈당함으로써 주위를 놀라게 했다. 더욱이 그는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에도 원내대표와 법무장관을 지냈을 만큼 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개혁신당 움직임

천 의원은 탈당하는 이유에 대해 "열린우리당 자체가 민생개혁세력 전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자아비판하며 "창조적으로 해산해야 한다. 유능하고 신망있는 인사들을 모아 대통합 신당으로 나아가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탈당한 임종인 최재천 의원 등과 `개혁신당`을 추진할 것으로 전해진다.
천 의원의 탈당을 가장 안타까워했던 이는 다름 아닌 신기남 의원이었다. 그는 공개 편지를 통해 "우리는 생사고락을 함께 하자고 수차례 다짐했던 동지였고 친구였다"면서 "혁신을 위해 정작 필요한 사람은 나가고 나가야 할 사람들(보수성향)은 남아 있는 형국"이라고 심경을 털어놨다.
신 의원은 친노그룹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사수해야 한다는 `신진보연대`의 수장을 맡고 있다.
여당에서 가장 유력한 잠룡인 정 전 의장은 아직까지는 탈당을 하지 않고 있지만 마음이 떠난 것은 사실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의장과 가까운 현역 의원들 중에서도 "정 전 의장이 탈당하면 우리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재 정 전 의장 본인은 `탈당`을 놓고 다양하게 저울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천 의원에 대해 "대통합의 길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평가한 것을 보면 `탈당`에 좀 더 무게추가 쏠린 것으로 보인다.
한 때 `탈레반`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분명한 색깔을 보여줬던 이들은 일단 제각길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양대 그룹도 분열 조짐

천-신-정 이후 열린우리당의 주도권 싸움은 사실상 정 전 의장과 김근태 의장 그룹의 양대 대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두 사람이 장관직에서 물러나 당에 동시 복귀하며 맞대결을 펼친 지난해 2월 전대는 `경선 전초전`으로 불릴 만큼 치열했다. `개혁`과 `실용`이라는 화두가 허공을 메아리쳤고 물 밑에선 세 확산을 위한 움직임이 분주했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정 전 의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물러나자 김 의장이 수장 자리를 이었지만 여전히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권 내부에선 두 사람 모두 대권 주자로서는 물 먹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범여권 통합신당에 대한 큰 틀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공감대를 형성한 듯 했지만 이후 대응은 일정부분 차이가 있다. 정 전 의장은 `탈당불사`에 무게중심을 두는 데 반해 김 의장은 "탈당은 비민주적"이라며 전대 고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대 이후 김 의장도 탈당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레 제기하기도 한다.
천-신-정 해체 이후 여당 권력 구도를 양분했던 두 사람의 움직임은 범여권 통합신당 움직임에도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두 사람과 함께 한 때 충청권 후보로 떠 오르며 급부상했던 이해찬 전 총리도 `황제 골프` 파문으로 낙마하며 사실상 `파괴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건너 오면 선의의 경쟁"

정 전 의장과 김 의장이 한나라당의 `빅3`에 밀리고 있고, 이 전 총리도 과거와 같은 위상을 발휘하지 못하자 여당을 비롯한 민주당에서는 `제3후보`의 등장 가능성이 심심찮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이후 분위기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다.
호남이라는 확실한 지지층을 보유한 정 전 의장은 여전히 대권 도전이 유력해 보이지만 김 의장을 놓고선 `킹 메이커`로의 변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범여권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카드는 다름 아닌 손학규 전 지사 카드다. 손 전 지사는 이와 관련 한 인터뷰에서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여권의 인사들을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손학규-진대제-정운찬이 모이면 드림팀 아니냐. 한나라당을 시대에 맞게 어떻게 변화시킬 지를 생각하고 미래 지향적 시대정신을 가진 분들을 적극 모셔 와야 한다"는 게 손 전 지사의 말.
정치권에선 손 전 지사가 표면적으로는 `영입`을 언급했지만 사실상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사실상 여권 대선후보로의 변화 가능성을 암시했다는 얘기다.
정 전 의장도 이에 대해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정체성과 맞지 않아 못하겠다고 한다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천-신-정`으로 대표됐던 열린우리당의 초반 분위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당내 유력 잠룡으로 꼽혔던 정 전 의장과 김 의장, 이 전 총리 또한 무러져가는 여권의 생명을 연장하기에는 힘이 부쳐 보인다.
제3후보 연대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손-대-찬` 트리오가 현실 정치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상민 기자 uporter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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