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직장동료들과 떠나는 산행 후기-불곡산편


295m 정상부의 보루성, 흔적 사라지고 남은 건 조그만 돌무더기 뿐
푸른 창공 수십개로 분할해놓고 있는 송전탑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나무그늘 아래서 주변경관 구경하며 들이키는 시원한 막걸리 맛은 산행의 보너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백화암 마당의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정취 더해

 

이번 달에는 어느 산을 오를까? 등산지도를 편다. 다녀온 산들을 지워나간다. 서울시내 거의 모든 산이 지워진다. 인근을 훑어본다. 이름이 특이해 유독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불국사, 아니 불국산이다. 경주 불국사처럼 이곳에도 불국사가 있나? 인터넷으로 검색해본다. 역시나 없다. 대신 공식명칭은 불곡산이고 신라시대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백화암이라는 사찰이 있는데,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기 전까지는 불곡사였다고 전한다.

서울 근교에 있는데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단다. 결정했다.

불곡산에 가는 길은 가능역이나 주내역까지 전철로 와서 버스로 이동하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이다. 양주시청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주내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라니깐 걸어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맘씨 좋은 김동성 주임이 그런 수고스러움까지 덜어준다. 즐겨하는 알코올 섭취까지 마다하고 손수 차량을 가져온단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집결지인 노원역에 도착하니 이른 8시 30분. 전화벨이 울린다. 벌써 도착했나보다. 어…근데 인원이 너무 적다. 필자를 포함해 4명이다. 급작스레 일이 생긴 두 분이 불참이다. 아쉽지만 불곡산은 단출하게 다녀와야 될 듯 싶다. 양주시청에 주차를 하고 현충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큰일이다. 물을 준비 못했는데 가게가 없다. 여느 산처럼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산행들머리가 이렇게 황량하다니…. 누굴 탓하리오. 미리 준비 못한 나의 잘못인걸…. 물 대신 막걸리로 목을 축이기로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현충탑 입구 등산객들이 열댓 명 모여 있다. 어느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모양이다. 현충탑을 지나면서부터는 웃자란 풀 때문에 등산로가 잘 뵈지 않는다. 앞서간 산악회원들의 뒤를 좇는다. 풀섶을 지나 공사차량용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이정표에서부터 본격적인 등산로를 밟는다.

30여분을 쉬지 않고 오르니 240m 봉우리에 다다른다. 우측으로 돌아보니 멀리 양주시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목도 축이고 잠시 숨도 돌릴 겸 적당한데 자릴 잡는다. 신문지에 하나씩 싼 막걸리가 제 위력을 발휘한다. 꿀꺽꿀꺽 목울대를 넘어가는 시원함이란…. 한잔 쭉 들이키니 "캬~쥑인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시원한 막걸리의 맛이 바로 산행이 주는 보너스이다.

30여분을 오르니 보루성이란 푯말이 나온다. 295m 정상부에 있는 평평한 공간인데 지금은 거의 흔적이 없고 조그만 돌무더기만이 보루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보루성을 지나 능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푸른 창공을 수십개로 분할해 놓은 송전탑이 나온다.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는 것이건만 이렇게 산에서 발견하는 송전탑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나의 또 다른 이기심은 아닐는지….

360m 봉우리를 지나니 이정표가 나온다. 백화암 쪽과 산북동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자형 교차지점이다. 정상인 상봉까지는 400m정도 남았다.

150여 미터를 오르니 철계단이다. 등산객을 위한 인공구조물로서는 처음으로 나온 것이라 반갑기까지 하다. 철계단 아래서 나무들 사이로 시원스레 펼쳐진 유양동 쪽과 방성리 쪽을 렌즈에 담고는 앞서간 동료들의 뒤를 밟는다.

정상인 상봉 아래에 간이매점이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벌써 두서너팀이 자릴 잡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다. 매점에서 정상 오르는 길은 25m 바위슬랩 구간이다. 로프가 있으나 이용하지 않고도 오를 수 있다. 슬랩을 지나자 4m정도 높이의 암벽이 가로막는다. 역시 로프가 있으나 직접 정복하니 정상인 상봉(468.7m)이다.

정상의 표지목에서 증거사진과 사방으로 트인 조망을 렌즈에 담는다.
원래는 상투봉을 지나 임꺽정봉을 거쳐 암릉길을 내리거나 부흥사 쪽으로 하산하는 게 제대로 된 불곡산을 맛볼 수 있다고 하는데, 시간 여건상 아쉽게도 다시 4m 암벽을 내려와 물개와 펭귄을 닮은 바위 앞 나무그늘 아래 자릴 잡는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시원스레 트여진 조망과 함께 기울이는 막걸리잔은 신선이 부러울소냐~!! 40여분을 그렇게 신선놀음을 즐기다 하산길을 서두른다. 백화암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다. 20여분을 내리니 불곡산 중턱에 소담하게 자리 잡은 백화암을 만난다. 신라시대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백화암 마당에는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정취를 더한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백화암부터 시작되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15분 여를 내리니 임꺽정 생가와 갈림길에 닿는다.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유명하다는 순대국집을 찾기 위해 도로를 따라 10여분을 내려온다. 유양초등학교 앞 여기저기 순대국집 간판이 보인다. 차량이 많이 주차되어 있는 집을 찾아 든다. 아직 소화 덜 된 배가 부담스럽지만 싸고 푸짐하면서도 맛깔스런 순대국에 기어이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서야 숟가락을 놓는다. 이 순대국맛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찾아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차가운 바람이 슬슬 일기 시작하는 아스팔트 위를 밟는다.

정기룡 기자 <정기룡님은 서울 성동구청 지적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1-2회  동료직원들과의 산행 후기를 독자님들에게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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