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연재> 고홍석 교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일기-3회

`Weekly서울`이 연재하고 있는 `쉼표 찾기`는 오랜 학교생활과 사회활동 후 안식년을 가졌던 전북대 농공학과 고홍석 교수가 전북 진안군 산내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고 교수는 2004년 3월 전북 전주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 한적한 산내마을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갔다. 고 교수의 블로그에도 게재된 이 글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쉼표` 찾기가 될 것이다. 고 교수는 `Weekly서울`의 연재 요청에 처음엔 "이런 글을 무슨…"이라고 거절하다가 결국은 허락했다. 고 교수는 <쉼표 찾기>를 통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들려드리고 있다. `Weekly서울`은 고 교수가 부인과 함께 산내마을로 이사를 가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모든 글과 사진들을 순서대로 거르지 않고 연재해 왔다. 지난호부터는 특집으로 고홍석 교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고 교수는 부인 그리고 다른 일행들과 함께 지난 10월 11일부터 22일까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셋째날(10. 13) 

마이아걸츄 안나푸르나!(우리말로 `사랑합니다. 안나푸르나`)
우리가 묵었던 카트만두 호텔이 유럽풍 외양으로 반듯하였으나 내부 시설은 엉망이었습니다. 냉난방 시스템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후에 틀어놓은 에어컨으로 저녁나절에는 실내 온도가 낮아져 냉방을 난방으로 바꾸었는데도 여전히 찬바람만 나옵니다. 견딜 수 없어서 결국 냉난방 시스템 전체를 끄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내의 찬 기운은 그대로 남아있어 혹시라도 트레킹을 앞두고 감기라도 걸릴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욕조에 더운 물이라도 받아서 몸을 담고 있으려고 했으나 욕조 바닥의 물구멍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산에서 입으려고 가져간 우모복을 꺼내 입고서야 겨우 잠을 청합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Pokhara)까지는 30인승 소형 프로펠라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국내선 공항은 완전 시장 바닥이었습니다. 앉아 있을 의자도 별로 없어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기다립니다. 그나마 대부분의 승객들이 등산복 차림이라 오히려 어울립니다. 우리 일행이 타고 갈 비행기가 10분, 30분 지연된다고 하더니, 1시간이 넘어서부터는 아예 언제 떠난다는 공지도 없습니다. 그저 무작정 기다리다보니 3시간이 지나서야 포카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에 타니 여승무원이 접시에 목화솜과 사탕을 담아 탑승객들에게 나눠줍니다. 목화솜의 용도는 비행기 소음에 대비한 귀마개입니다. 그래도 상공에서 히말라야의 장엄한 산맥들을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은은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합니다. 이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목화솜, 사탕, 그리고 바로 커피입니다. 문득 성남아트센터 사진동호회 회원들과 자주 드나들며 마셨던 커피 전문점 <커피와 사람들>의 무겁고 진한 ‘케냐’ 커피 맛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동호회 회원들의 얼굴, 그들과 나누었던 숱한 얘기들이 히말라야 산맥에 겹쳐 흐릅니다. 사람 사이의 정이란 것이 결국은 떨어져 있어야만 더욱 그리움으로 승화되는 것 같습니다.

1시간도 못 미쳐 도착한 포카라는 카트만두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었습니다. 트레킹 기점인 나야풀(Nayapul, 1,070m)까지는 버스로 이동합니다. 도중에 과일을 구입하려고 시장에 주차를 하였는데, 짝퉁(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시계로 몸 전체를 휘감은 장사치가 접근합니다. 경상대학교 정교수 4000원을 주고 시티즌(Made in Japan) 시계를 삽니다. 이 시계는 트레킹 내내 화제의 중심에 있었는데, 우선 고장 없이 작동하느냐와 시간이 맞는가에 대한 우려와 의문이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돌아오는 인천공항까지 시간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 정교수를 만나게 되는데 여전히 그 시계의 작동여부는 확인해야 할 사항입니다.


▲ 짝퉁시장에서 시계를 흥정하고 있는 정교수


시장에서 망치와 낫이 그려진 깃발을 든 시위대를 만났습니다. 네팔의 게릴라 세력인 마오이스트들입니다. 아직까지도 <자주, 민주, 통일>을 이 시대의 강령으로 고집스럽게 믿고 있는 저로서는 숨겨두었던 가슴의 열정이 뛰면서 오랜 동지를 만난 듯 연대감이 발동합니다.

곳곳이 패인 포장도로를 버스는 거칠게 달립니다. 운전석이 오른쪽이라서 좌회전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회전이기 때문입니다. 몸에 밴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게 그때 그때마다 어김없이 드러납니다. 도로 좌우에는 계단식 논배미가 보입니다. 계단식 논배미를 보니 유홍준 교수(문화재청장이지만 나에게는 교수라는 직함이 친근하다)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의 구례 연곡사 편에서 피아골의 계단식 논배미 글이 생각납니다. 

"완만하게 굴곡진 먼 들판의 모습은 자연과 가장 어울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예술품, 바로 그것이다. 어디도 모나지 않은 논배미는 순한 농군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 논은 절대로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우리 선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따라 물결 같은 논두렁을 그리면서 중심 바닥만은 공평을 잃지 않은 것이다. 나는 들녘을 바라보면서 생존의 고단함을 무심히 달랬고 거기 넘실대는 나락을 보면서 생의 의지를 돋우었을 농민을 생각해본다." (가톨릭대 안병욱 교수의 글을 따옴)




▲ 계단식 논배미

이곳 네팔 사람들은 피아골보다도 훨씬 표고가 높은 곳에 엄청난 규모의 계단식 논배미를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고산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이곳 농민들의 삶의 절박성을 엿보는 같아서 숙연해집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계단식 논은 농민들의 땅에 대한 무서운 사랑과 집념을 남김없이 보여 줍니다. 트레킹 내내 표고가 높아질수록 이 계단식 논배미는 치열함을 더했습니다. 선조 대대로 계단식 논배미를 만들어 마을을 이루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계단식 길을 닦고, 그 길을 따라 타국의 트레커들은 히말라야를 향해 걷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을 만나기 위해 나는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 비렌탄티에 도착하여 입산 신고 

트레킹 기점인 나야풀에 도착하고, 비레탄티(Birethanti, 네팔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입산 신고를 한 다음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포카라까지 오는 비행기의 3시간 지연으로 오늘 묵어야 할, 안나프르나 연봉을 볼 수 있는 간드룽(Ghandrung, 1,940m)까지 서둘러 올라가야 합니다. 나야풀에서 간드룽까지 표고차가 870m이니 3시간 정도 오르면 됩니다. 고산 산행은 무조건 천천히 걷는 것이 고산병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천천히 오르면서 고도 적응(산소 부족에 대한 적응)을 하여야만 고산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동료들이 모두 카메라를 지니고 있어서 저마다 촬영을 합니다. DSLR은 저를 포함하여 세 사람이, 게다가 저는 포터를 개인적으로 고용하여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왔으니 멋진 사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장비가 거창하니(Two Body 사건은 나중에 언급) 사진에 대한 실력도 대단할 것이라는 오해 때문입니다. 그래도 ‘서툰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번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만은 실력이 부족하여 카메라에 담지 못할망정 가슴에 그리고 영혼에 꼭 보듬을 각오입니다. 마이아걸츄 안나푸르나….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마을 길을 걷다가, 점심은 라면에 밥을 말아서 반찬 5가지에 게걸스럽게 먹었습니다. 아침에 호텔에서 양식 뷔페로 먹었던 것보다는 우리네 음식으로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산행에서 먹는 것과 관련된 학점평가제가 있는데, 적게 먹고도 산을 잘 오르는 사람은 A학점, 많이 먹고 잘 오르는 사람은 B학점, 많이 먹고 잘 오르지 못 하는 사람은 C학점이랍니다. 적게 먹고 산도 잘 오르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산에 올 자격이 없다고 하니…. 이번 산행에서 최소한 B 학점은 되어야 한다고 끄응 힘주어 다짐해봅니다. 나중에 우리가 산행 중에 먹었던 음식들을 언급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매 식사 때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잘 먹었다”라는 찬사(니또차 : 맛있다, 대리니또챠 : 겁나게 맛있다)를 네팔 쿡에게 하였는데, 사실은 아내에게는 눈치 보이는 찬사였다는 것을 미리 귀뜸합니다.

구들장 돌처럼 납작하고 평평한 돌로 쌓아 올린 계단식 길을 3시간 이상 가파르게 오르자 간드룽 마을에서 거의 별장이나 다름없는 아름다운 롯지(Lodge)에 도착하였습니다. 야크 젖으로 만든 ‘짜이’라는 밀크티를 마시고 샤워도 하고, 돼지고기 양념구이를 상추쌈으로, 게다가 김치찌개까지 먹고 나니 ‘행복’이라는 단어가 온몸을 감싸옵니다. 그러나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전망 좋은 간드룽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구름이 잔뜩 몰려와서 풍요의 여신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이른 시간에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니 안나푸르나 품에 안긴 듯 졸음이 밀려옵니다. 곤한 잠을 자다가 문득 낙숫물 소리에 깜짝 놀라서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치고 있는데 새벽이 되니 비가 그칩니다. 


▲ 트레킹 3일째,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저물어가고 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고 합니다.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못한 사람. 이제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의 부류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앞으로 히말라야를 갈 사람’이라는 제3 부류도 있다고 억지로 우겨댑니다. 그 억지 우겨댐이 현실화되기를 마음 속으로 깊이 기원합니다. 마이아걸츄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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