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연재> 고홍석 교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일기-6일째

드디어 안나푸르나 당신의 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우리 대원은 강철원 대장을 포함하여 9명입니다. 그런데 셀퍼인 ‘장부다이’(그의 이름이고 한국원정대와 함께 히말라야 8000미터급을 여러번 이끌었던 유명 셀퍼이다)가 이끄는 포터들은 15명이나 됩니다. 카메라 포터를 하는 막내둥이 ‘까타’는 형이 네팔에서 유명한 쿡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음식을 맡고 있는 쿡은 셀퍼 다음의 2위 서열인데 한국말도 잘 할 뿐 아니라 얼굴도 잘 생겼습니다. 셀퍼나 쿡은 네팔에서는 수입이 적지 않은 직업입니다. 얼굴도 잘 생기고 수입도 짭짤해서 부인이 무려 세 명이라고 합니다. 남성 대원들로부터는 무언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나 여성 대원들에게는 질시의 대상이었습니다.


▲  강철원 대장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참게장


강 대장이 한국에서부터 갖가지 반찬을 가지고 와서 트레킹 내내 반찬거리는 각자 자기 집에서 먹는 것보다 좋았고, 게다가 쿡이 매 식사마다 별미식을 제공합니다. 열거하면 미역국, 김치국, 된장국, 김치찌개, 잡채, 닭도리탕(트레킹 기간에 닭 일곱 마리가 죽음을 당했다), 김치부침개, 계란탕, 수제비, 라면, 북어해장국, 고추잎 조림, 더 나아가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는 참게장까지 나와서 입맛이 꺼칠한 대원들을 밥도둑으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양고기 수육과 탕으로, 카트만두에 도착해서는 양 바베큐까지 먹었으니 양 두마리가 우리들을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식사 때마다 우리 대원들은 쿡에게 `대리니또챠`(겁나게 맛있다)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산에서는 잘 먹고 잘 올라가는 것이 서로를 도와주는 일입니다.

고된 산행에서는 자신만을 돌보는 것도 힘들어서 동료들이 힘들어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도울 수 없습니다.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제 자신을 챙기는 것조차 힘이 드니 마음 씀씀이가 인색해집니다. 그런 사정을 서로 이해하여야 하고, 인색한 마음 씀씀이에 대해 섭섭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또한 고된 산행에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입니다. 저 역시 표고가 높아지면서 산소가 부족하니 숨도 가파르고 날마다 7시간 정도를 계속 걸으니 무릎이나 발목이 시큰거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살 많은 제가 가급적 얼굴에 내색을 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롯지

이제 3000미터를 넘어서면서 아내 뿐 아니라 저 또한 고산증세를 예방하기 위해서 이뇨제인 다이아목스를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이아목스를 먹으면 소변을 자주 볼 수밖에 없으니 밤에 거의 2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합니다. 그러니 숙면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래도 화장실을 가려고 나선 롯지 마당에서 올려다 본 별밤은 숙면을 취하지 못한 괴로움보다 오히려 내 영혼에 각인되는 감상으로 남을 것입니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내 손안에 들어올 것만 같은 그 별들의 향연을 소변 때문에 잠 설친 것과 비교하겠습니까.

다이아목스를 먹고 수분 섭취를 게을리 하면 손발이 저리는 증세가 나타납니다. 그럴 때는 즉각적으로 물을 마셔야 합니다. 또한 허리 지병이 있어서 관절염에 좋다는 게토톱을 3장씩이나 산행 시작할 때부터 매일 붙이고 무릎에는 내 또래인 가수 양희은이 CF로 등장하는 노란색 파스(이름이 생각나지 않음)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어쩌면 그러고도 꼭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나서야 하는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으나, 먹고 붙여가며 약 힘이라도 동원하여 갈 수만 있으면 지레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  마차푸차레를 촬영하고 있는 쉼표

오늘은 히말라야 롯지(Himalaya Lodge, 2920m)에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achhapuchhre Base Camp, 3,700m)까지만 쉬엄쉬엄 올라가면 됩니다. 비가 간혹 비치면서 날씨는 그리 좋지는 않지만 오늘 트레킹 일정이 짧은데다 이제 고산증세가 우려되는 3000m 이상을 오르기 때문에 발걸음을 더욱 천천히 내딛습니다.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연봉들의 숨결 소리조차도 들을 수 있을만큼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을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쿵쾅거리면 가빠집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는 약자로 MBC이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약자로 ABC입니다. 내일 새벽의 MBC-ABC를 잇는 트레킹이 이번 트레킹의 절정이 될 것입니다.


▲  마차푸차레


▲  마차푸차레


약간 늦은 점심 시간에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아서는 안 됩니다. 도착하자마다 털모자로 머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두툼한 우모복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기 기운이 슬며시 찾아오더니 결국은 목이 잠기고 말았습니다.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나마스테’ 인사말도 탁한 허스키로 하니, 내일 새벽에 별탈이 없을런지 걱정이 밀려옵니다. 마차푸차레가 바로 코앞에 보이고 안나푸르나 연봉이 한발 건너서 보이니 그런 중에도 카메라는 바쁘게 움직입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촬영을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3시에 기상하여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엠피쓰리를 귀에 꼽고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베사메무쵸>를 듣습니다. 내일은 안나푸르나 발에 입맞춤을 할 것입니다.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 당신에게 복종하며 평생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할 것입니다. 베사메무쵸 안나푸르나…. 



 ▲  노을 속의 마차푸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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