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시행 앞두고 증권업계 재벌 힘겨루기 스타트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증권업계에서 재벌 힘겨루기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이 최근 신흥증권 인수를 공식화하면서 향후 증권사 인수합병(M&A)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신흥증권은 신흥증권이 상장사라는 점이 KGI증권이나 한누리증권의 매각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여태까지는 비상장 증권사였지만 상장 증권사인 신흥증권이 매각되면서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실질적인 기준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두산과 롯데그룹도 증권사 M&A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증권계열사가 있는 삼성, 한화, SK 등 대기업도 점차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 신흥증권 인수 증권업 진출

현대차그룹과 신흥증권은 지난 14일 매각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신흥증권은 최대주주인 지승룡 대표이사와 특수관계인 4인이 보유중인 지분 29.76%를 현대차그룹에 넘기기로 했다.
현대차그룹과 신흥증권은 실사 이후 최종 주식양수도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번 신흥증권 지분 매입에는 현대차를 포함,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인 현대캐피탈이나 현대카드가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구조개편이 전망되는 증권업계에서 신흥증권이 현재의 수익구조와 규모로는 독자생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중소형사 경영권 프리미엄이 높아진 상황에서 매각을 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증권업 진출을 위해 그동안 증권사를 신규 설립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지점 확보와 전산망 구축에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제반 비용을 감안, 최근 증권사를 인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이 시행됨에 따라 올 8월부터 금융투자업자 인가 등록 신청이 시작되는데, 증권사를 신설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에서 인수협상이 급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금융업 진출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정몽구 회장의 둘째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즉 정태영 사장의 그룹 내 입지가 지금보다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정 사장은 지난 2003년 현대카드·캐피탈 사장으로 발탁된 이후 현대차그룹 금융의 수장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현재 향후 증권업 진출을 위한 실무 작업을 현대카드.캐피탈에서 주도하고 있고, 또 정 사장이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처럼 정 사장에 대한 역할론이 대두되면서 재계 일각에서는 그룹의 승계구도와 관련돼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장기적으로는 현대차의 그룹 분할도 염두에 두고, 산업분야는 아들인 정의선 사장이, 금융분야는 사위인 정 사장이 각각 맡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차의 증권업 도전장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09년 자통법 시행을 계기로 수신업무 등 증권사의 업무 영역이 크게 넓어지고 기능도 강화됨에 따라 기존 현대카드·캐피탈 등과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증권사를 통해 계열사들의 자금 조달이 한층 용이해지고 금융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현대차가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면서 재계 2위로 올라섰지만 삼성, SK, 한화 등이 계열사로 증권사를 두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금융의 꽃`이라 할 증권사가 없어 아쉬움이 많았던 형국이라 증권업 진출에 박차를 가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매각 또는 M&A 증권사 6∼7개 매물나와

현대차그룹이 신흥증권 인수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현재 매각을 추진중이거나 M&A 대상으로 거론되는 증권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6∼7개가 매물로 나와 있는 상태다.
대부분이 중소형 증권사로 자통법 시행으로 독자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곳이 다수를 차지한다. 또는 금융그룹 계열 증권사로서 그룹의 자체적인 사업구도에 따라 매각을 추진하는 곳도 있다.
현재까지 M&A 대상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은 증권사는 시가총액 5000억원 이하인 한양증권, 골든브릿지증권, 유화증권, 부국증권 등이다. 또 M&A 거론 대상 증권사는 교보증권과 SK증권 등이 꼽힌다.
한 증권회사 관계자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앞두고 대형화 필요성이 부각돼 중소형 증권사에 대한 매력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교보증권은 최근 유진그룹으로의 매각설이 불거졌지만 교보증권과 유진기업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교보증권이 지난해 말 교보투신 지분을 모회사인 교보생명에 넘긴 것을 두고 증권업계에서는 교보생명이 교보증권을 매각하기 위한 사전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양증권도 창업주의 상속과정에서 매물화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고 부국증권도 줄 곧 M&A 대상 증권사로 꼽혀왔다.
특히 부국증권의 경우 자사주가 전체 지분의 23.5%로 최대주주 지분(20.9%) 보다 높아 M&A 매력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장 변화 M&A 추가 성사 가능성 높아

증권업계의 M&A 가능성은 지난해에도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주식시장이 예상을 뛰어 넘는 활황장세를 맞으면서 증권사들의 몸값이 크게 뛰면서 M&A를 추진하던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고 실제 인수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었다.
일부 은행을 포함한 기업은 인수 작업에 드는 비용 등을 감안, 신규로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었다.
현재 증권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거나 추진할 의사가 있는 곳은 금융권을 포함 7∼8곳에 달한다.
은행에서는 SC제일은행과 부산은행이 거론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미래에셋증권과 유진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이 M&A를 통한 덩치 키우기에 관심이 높다.
대기업중에서는 두산그룹(두산캐피탈), 롯데그룹, 아주그룹(대우캐피탈) 등이 증권사 인수 또는 신규 설립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증권사 인수를 희망하는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의 의욕이 큰데다 시장 환경도 크게 변화될 것으로 보여 올해안해 추가 M&A가 성사될 가능성은 높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매각을 희망하는 쪽보다는 인수를 희망하는 쪽이 좀 더 유리한 환경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현재 매물로 거론되고 있는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매각가격을 높이기 위해 버티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인수 희망 기업들은 큰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인수할 의사가 없다는 식으로 버틸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이 신규 증권사 설립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줄 경우 증권업 진출 희망 기업들의 경우 신규 증권사 설립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도 있다.
결국 매각을 바라면서도 버티기에 나서는 증권사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벌이 증권업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내년 2월 자통법 시행으로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가 부여되면 금산분리 원칙으로 막혀 있는 은행업에 간접 진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캐피탈, 카드 등 기존 금융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기존 재벌계 증권사는 시장선점 효과와 그동안 경험을 앞세워 `신입 재벌계 증권사`에는 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환위기 이후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했던 삼성증권은 올 들어 자기자본투자 및 해외진출 강화 등 투자은행(IB) 업무에 중점을 뒀다. 그룹 내에서도 대표 계열사 삼성전자의 성장 동력 둔화 등을 감안할 때 금융 쪽으로 사세를 펼칠 때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한화증권도 최근 몸집을 불리기 위한 유상증자를 검토 중이다. 또 증권업 철수 루머가 돌던 SK와 CJ그룹은 최근 증권업 강화 쪽으로 지침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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