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폐지 연속인터뷰> '인권변호사' 민변 김승교 변호사

국가보안법(국보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4개월 여 만인 1948년 12월 1일 공포됐다. 그리고 그 서슬퍼런 칼날을 휘두른지 벌써 60년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세월 동안 국보법은 여전히 극명한 현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49년의 국회프락치 사건, 1958년의 진보당 사건, 1973년의 최종길 교수 사건, 1975년의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 등 국보법이 만들어 낸 정치적 조작사건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최근 들어 국보법 위반사범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2004년의 송두율 사건, 전교조 통일위원회 김맹규 최화섭 사건, 사진작가 이시우 사건들을 보면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만도 한총련 전 의장, 전북 군산의 통일교사 김형근 교사가 구속된 데 또 한 명의 통일운동가가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선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현아 위원장이다. 경찰은 지난 19일 송 위원장의 자택에 대한 가택수색을 하고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 혐의로 송 위원장을 서울시경 대공분실로 연행했다.
송현아 선전위원장은 3년 간 실천연대 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해왔으며, 지난 1월 결혼 후 연행 다음날인 20일 신혼여행을 앞둔 상태였다. 경찰은 신혼여행 준비로 들떠있던 이들 신혼집에 아침부터 들이닥쳐 집안을 모두 뒤집어엎고 신랑이 보는 앞에서 신부를 강제 연행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안당국들이 실적 올리기와 눈치 보기에 급급, 무분별한 연행 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보법 제2조의 `반국가단체`라는 표현은 북한을 주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2007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선언서는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국보법은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 그리고 통일로 나아가는 현 시점에서 버려야 할 낡은 유물인 것이다. 
<위클리서울>은 `국보법이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 문제를 놓고 시리즈로 각계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시우 작가, 강정구 동국대 교수, 박래군 인권운동방 활동가,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중앙대 교수, 한국외대 법학과 이장희 교수, 국민대 법학과 이광택 교수,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홍성태 상지대 교수,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회장에 이어 이번주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김승교 변호사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김 변호사는 그동안 인권변호사로서 국민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해왔다. 민변에서도 ‘국가보안법연구 특별위원회’와 ‘통일위원회’ 활동에 열과 성을 다했으며 10여년의 법조인 활동을 하는 동안 국가보안법관련 피해자들을 변호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제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국가보안법관련 인권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특히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위한 변론에 열과 성을 아끼지 않았다.

- 국가보안법이란 무엇인가. 대략적으로 설명해달라.
▲ 남한정부수립 직후인 1948년 12월 1일 법률 제10호로 제정됐다. 일제하의 치안유지법 (1926년제정)의 틀과 내용을 모방해 만들어졌다. 일제의 식민통치수단이었던 치안유지법이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데 그 제정 의도가 사실상 사상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이어서 사상탄압법, 정치활동탄압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 죄를 구성하는 요건, 예컨대 반국가단체 개념과 관련해 정부참칭(예컨대, 성화신국이라 칭한 종교단체도 기소됨)이나  국가변란이란 개념, 찬양고무죄에서의 찬양이나 고무 또는 동조라는 개념(행사참석해 박수를 쳐도 동조가 됨) 등 거의 대부분의 구성요건 개념이 그러하다. 대단히 불명확하고 추상적이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남용위험이 대단히 높다. 이에 근대형법의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있으며,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전단계의 행위(실제론 추상적 위험성- 예컨대 이적표현물소지죄는 위험한 사상이 기술된 책자를 소지하면 죄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소지탐독불온사상형성반국가적행위결심반국가적행위실행 의 단계 중 소지단계에서부터 처벌하려는 것이어서 법익침해의 범죄행위보다 훨씬 전전단계에서부터 처벌하려는 것임, 다른 처벌규정의 경우도 대개 그러함)를 처벌하려는 것이어서 구체적 법익침해의 행위 또는 결과에 따라 처벌하는 근대형법의 기본원칙인 행위형법에서 벗어나 전대적인 심정형법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또한 형량(법정형)도 지나치게 높게 규정되어 있다.

- 국보법은 단순히 북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법은 아니었던 거 같다.
▲ 당시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는 외세의존 극우세력이 정권을 유지강화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역대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그러한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대한 탄압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그 적용과정에 북한은 핑계 구실에 불과했다. 예컨대, 제정후 1년동안(1949년) 이 법으로 12만여명이 입건되었고, 132개 정당사회단체가 강제해산을 당했다. 당시 형무소 수감자의 80%가 이 법의 위반자다.
이런 법이 수십년을 거치면서 그 처벌과 남용의 폐해 후과가 너무나 크다보니, 사상이나 정치활동은 집안을 망하게 하고 자신을 망치는 첩경이라는 인식, 국민들의 피해의식, 학문예술언론분야는 말할 것 없고 사회 각분야에서 자기검열의식이 강고하게 뿌리내리게 된다. 결국 국민을 정신적 불구자로 만들어 온 것이며 비유컨대 일곱색 무지개 중 3-4개에 대해서는 보지도 듣지도 생각지도 못하게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 국보법이 폐지되면 북으로부터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 국보법 제정 이후 형법이 제정(1953년)되었고, 형법 제정당시 그 입안자(김병노 법전편찬위원장 겸 대법원장) 스스로도 국가보안법이 없이도 국가의 안전을 보위할 수 있을 정도로 형법을 만들었다. 따라서 국보법을 폐지하자고 했을 정도다. 나아가 형법 제정 당시가 한국전쟁 와중이었기에 그 국보법, 형법 내용 역시 대단히 전시형법적 성격, 국가형법적 성격이 강한 것이었기에 형법만으로도 충분했고, 또한 형법 자체가 국보법의 폐지를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국보법과 유사한 법(국가안전법)을 가지고 있던 대만의 경우도, 분단되어 있고 오랜 계엄상태(1987년 해제)였지만, 그리고 그 계엄해제와 동시에 국가안전법을 완전히 폐지했지만 아무런 혼란이나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국민의 자유가 늘고 국가의 실질적 체제보위력은 강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국보법은 주로 무엇 때문에 유지되고 작동되는가. 작동 원인의 가장 상위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는가.
▲ 국보법에 의해 기득권을 유지해왔고 강화해왔던 세력들이 있다. 그 세력이 우리사회를 오랫동안 주도해왔고 권력을 누려왔다. 50년 이상 권력층의 강력한 법적토대였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국보법이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심리적 실질적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쟁을 통해 분단이 공고화되었다는 특수상황이 있고 이에 국민들 속에 여전히 반공반북정서가 상당히 자리잡고 있기에, 이를 부채질해 그러한 여론을 등에 엎으려는 극우세력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아가 권력층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하는데 이보다 더 손쉬운 도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남용하기에 적합한 무소불위의 처벌법이 되어 있는 것이어서 이를 활용하고픈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없는 법 이라도 만들어서 정권유지를 하려고 할 마당에 기왕에 만들어져  있는 법 을 버리기는 쉽지 않지 않는가.
여전히 각 방면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존재. 미국의 한반도(남한)에서의 영향력 관철에 있어 국보법은 대단히 우수하게 작동해 왔다. 미국의 영향력을 반대하는 각종 정치적 활동을 억압하는데 국보법은 더없이 좋은 무기가 되어 왔다. 이에 미국의 대한반도 지배정책에서의 유력한 수단이 되어 온 것이다. 또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을 탄압하는데도 더 없이 좋은 무기가 되어 왔다.

- 김 변호사는 국보법 관련 많은 이들의 변호를 자처해왔다. 최근 전북지역에서 `통일교사`라고 불리던 김형근 교사 구속사건도 있었는데….
공안기관의 수사는 전형적인 우격다짐, 침소봉대이며, 숲과 나무를 함께 보지 못한 채 문장 몇 줄과 이를 짜깁기하는 수법으로 사건을 꿰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번 수사는 국가 기관으로써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내팽개친 수사라 할 수 있겠다. 수사를 진행한 공안기관은 오랜 기간 동안 통일 활동을 펼쳐 온 통일 교사들을 마치 작전 대상인양 삼아 수사를 진행했다.
정확하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수사전부터 언론에 계속 퍼트려 조합과 통일위, 그리고 우리 들을 `친북, 반미`로 몰아갔다. 경찰은 1월 12일 가택압수수색 후, 1월 22일 월요일에 자진출두하기로 합의해 놓고도 금요일 변호사와 면담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는데 이를 깨고 1월 18일 목요일에 전격적으로 긴급체포를 했다.
가택 압수수색 도중 `피의사실을 절대 외부에 알리는 일은 없다`며 공안 경찰의 명예를 걸겠다고 해 놓고도 이번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 1월 22일에 확인도 안 된 `북한 30문 30답`을 언론에 유출해 조직과 통일위, 그리고 피의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 김 교사 구속 이유가 학생들에게 통일교육을 가르친 것이라는데….
▲ 6.15 이후 통일, 학교 교육 활동, 전교조 대중조직, 그리고 인터넷 시대의 특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채 마구잡이식 수사가 이루어졌다. 6.15 이후 통일 활동이 얼마나 급성장했으며 더불어 통일 이론 분야의 성장이 어디가지 와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하고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함이 기본이 아닌가.
공안기관은 조선일보의 NK조선 통일자료실에 가면 북한 원전 자료 370여 점 정도는 받아볼 수 있다든지 통일 단체 홈페이지에는 무슨 자료들이 들어 있는지, 교보문고에는 통일 서적이 어느 수위에 있는지, 대학과 대학원의 북한 학과에서 보는 자료 수위, 그리고 통일연구기관에서의 자료 수위는 어느 정도인지 알고서 수사를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또한 이번에 공안기관에서 언급해온 `이적 자료(?)들` 이 각 통일단체의 홈페이지와 책으로 나와 있는 것인지도 충분히 확인하고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점을 다 도외시 하고  `구국전선`에서 나온 자료와 닮았고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우기는 공안기관은 통일 문제에 대한 이해가 극히 낮다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공안기관에서는 학교의 통일교육이 통일부나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서 진행되며 통일 수업을 하는 교사는 어떤 자료를 가지고 수업을 하는지 전혀 모른 채 그냥 자료만 있으면 그 내용을 `수업`하는 것으로 판단하는데, 그 단순함에 그저 난감할 뿐이다.

- 김 교사는 빨치산을 추모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무엇이 문제였나.
▲당시 김 교사는 자신이 재직 중이던 관촌중학교 내 `통일산악회` 회원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 등 180여명이 함께 회문산을 찾았다가 행사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논란이 되었던 이날 행사의 정식 명칭은 `남녘 통일 애국열사 추모 문화제`다. 분단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고 평화로운 통일의 길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전북 재야 및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1년여 후인 2006년 12월, 조선일보가 `전교조 교사, 중학생 180명 데리고 빨치산 추모제 참석`이란 제목의 기사로 이 행사를 보도하면서 김 교사에 대해 국가보안법 7조 위반 피의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조선일보가 해당 기사를 통해 이날 추모제가 빨치산 구호를 제창하는 등 과격한 친북반미를 주장했으며, 김 교사가 전북 지역의 각 고교생들과도 관련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등 주체사상을 전파했다고 문제 삼았기 때문.
이에 김 교사는 `효량통신`이라는 개인 성명서를 통해 "조선일보가 `비전향 장기수 모임인 통일광장`이 주최한 `빨치산 추모제`에 학생들을 동원해 빨갱이 사상을 주입했다고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색깔 공세를 퍼붓고 있다"며 "나는 무슨 무슨 주의자가 아니며 다만 학생들에게 통일 교육을 통해 통일 시대의 주역이 되도록 가르치고 있을 뿐"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전북지방경찰청 보안과는 김 교사에 대해 총 11차례에 걸쳐 소환조사와 압수수색을 벌였으나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7월 중순경 조사를 중단했다. 이 기간에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학부모와 학생들이 나서 `작은 성명서` 운동을 통해 김 교사의 억울함과 조선일보의 왜곡 보도를 비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어떤가.
▲이번 4월 총선에 민주노동당(도봉갑 예정)으로 출마할 계획이다. 당장 당선가능성이 높은 비례대표의 길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민주노동당의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역후보로 나서게 됐다. 선거 때만 얼굴 내미는 철새정치인이 아니라 저 도봉의 굳건한 산악처럼 변함없이 도봉구민들의 곁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그들의 권리를 지키고 빛내는데 앞장설 것이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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