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정권 책임 공방에 '국정조사' 임박

쌀직불금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부당신청에서 불거진 쌀직불금 파문이 10월 정국의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야 모두 쌀직불금을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여야 모두 성역없는 수사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쌀직불금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셈이다.

 

쌀직불금 문제가 연일 언론을 타면서 정치권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부당신청에서 비롯된 쌀직불금 파문이 이 차관 이외에도 한나라당 의원 2명과 추가 연루 인사들이 이름이 거론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여당이 쌀 직불금을 본인 명의로 수령한 고위 공무원이 3명이라고 밝힌 반면 야권은 의혹 대상자를 28명+  로 확대해 정밀 검증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승수 국무총리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2명은 일단 불법 수령 사실이 없는 것으로 파악돼 명단에서 제외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2008년 4월부터 9월까지 관보에 (직불금 수령대상인) 1000㎡ 이상 농지를 소유한 것으로 적시된 장차관, 공기업 기관장의 명단을 추출했다"며 "이중 불법 수령 의혹이 있는 28명의 해당 시군구에 공문을 발송해 진상조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추가 리스트` 나돌아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경기 화성)과 김학용 의원(경기 안성)이 쌀직불금을 수령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관 윤모씨도 지난해 쌀직불금 23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직 대통령의 비서관은 공무원 신분이다. 사정당국은 충청권 K 의원도 쌀직불금 수령 문제가 걸려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성회 의원은 경기 화성시 안석동 논을 가지고 있고, 2005 2007년 3년간 매년 쌀직불금 60여만원을 본인이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은 "해당 농지에는 어머니가 살고 있으며, 어머니와 사촌 동생이 농사를 실제로 짓고 있다"며 "투기 목적이나 다른 목적으로 직불금을 수령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학용 의원도 경기 안성 양기리에 있는 자신 명의의 농지에서 직불금을 받았다.
김 의원은 "부친이 2000년쯤 논 1230평을 내 명의로 매입했고, 현재도 농사를 직접 짓고 있다"며 "쌀직불금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수령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랬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관도 쌀직불금을 수령했다. 역시 해명은 "어머니가 충남 예산 현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직불금을 받아서 어머님께 드렸다"는 것이다.
K 의원은 쌀직불금 수령 사실을 부인했다. K 의원은 "고향에 아버님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계신다"면서 "내 이름으로 쌀직불금을 신청한 일도 없고,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쌀직불금을 수령한 국회의원 2명과 전직 대통령 비서관이 확인되면서, 쌀직불금 파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계속 쌀직불금을 수령한 정치권 인사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사정당국이 여야 의원 여러 명의 쌀직불금 수령 사실을 확인중이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여야 자유로울 수 없어

경제위기로 민심이 악화되고 한미FTA, 비료값 폭등 등으로 농심이 흉흉한 가운데 터진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민심 이반이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당의 `참여정부 책임론`과 야당의 `MB정부 실정론`이 맞부딪히면서 여야간 정국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권은 애초 `강부자 내각`에 이어 이 차관 문제로 또 다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을 것을 우려하던 방어적 자세에서 벗어나 쌀직불금 문제를 `참여정부 책임론`으로 몰고가며 야당을 정면 공격하고 나서고 있다. 이 차관 문제로 몰려있던 수세 국면을 타개하고 야당과 공직사회 길들이기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감사원이 2007년에 감사를 종료하고 왜 이 문제를 발표하지 않고 즉각 제도 개선에 임하지 않았는지가 의혹의 출발점"이라며 "대선을 앞둔 민주당 정권이 농심을 자극하면 악영향이 올 것을 우려해 정권 차원에서 직불금 파동을 덮은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참여정부 실정`으로 몰고가려는 여권의 정치적 의도를 대변하고 있다.
여권이 이처럼 강공에 나선 배경에는 자체 조사결과 부당 수령 고위공직자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하지만 여권은 쌀직불금 파문의 역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여당 의원 2명은 물론 현 정부 고위공직자 3~4명이 쌀직불금을 타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권 도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향후 조사과정에서 여권 인사나 현 고위공직자의 연루 사실이 추가로 밝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여권은 직불금 파문을 촉발시킨 이봉화 차관의 경질 시기와 방식에 고심 중에 있다.
자진사퇴 유도로 잠정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 차관이 MB의 서울시장 재임시절 재무국장과 여성가족정책관을 지낸 대표적인 `S라인 인맥`이라는 게 부담이다. 또한 이 차관 거취문제는 강만수 장관, 구본홍 YTN사장에 대한 경질론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S라인을 부각시키지 않고, 매끄럽게 물러나게 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데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요동치는 `농심`

요동치는 농심을 수습하지 않으면 한미FTA 비준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정부에서 쌀직불금 감사결과가 은폐된 것도 한미FTA 추진에 악재가 될 우려 때문이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한미FTA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 대표자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은 불법 수령 고위공직자 명단 공개, 관련자 전원 해임, 형사고발 등 강력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는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이 훼손되고 농지가 투기 대상으로 전락된 데 근본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11월경 농사 안짓는 사람이 농지 소유를 더 쉽게 소유하는 방향으로 농지법 개정안을 제출하려는 정부 방침도 커다란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쌀직불금 사태와 관련, `야3당 공동 국정조사 추진` 카드를 꺼내들며 총공세를 펼칠 전망이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 2명이 직불금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번 사태를 현 정부.여권 인사들의 도덕 불감증 문제로 정치쟁점화 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재성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현 사태를 `비상시국`으로 규정, "한나라당은 역시 부자정당, 땅떼기 정당, 쌀떼기 정당, 원초적 부패정당임이 확인됐다"고 비난했다.
이는 당 자체 확인결과 현재까지 민주당 의원은 해당자가 없다고 파악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전날 밤부터 1천㎡이상 농경지를 보유한 의원 11명(본인 명의 9명+처 명의 2명)의 명단을 확보, 일일이 확인 작업을 벌이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고, 당사자들도 "해당 사항이 없다"며 적극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핵심 인사는 "일단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가족 부분에 대해 본인이 모를 수도 있어 계속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판단 아래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웠다.
구 여권 관계자가 포함되거나 소속 의원이 추가로 명단에 오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데다 감사원이 제때 감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던 점 등으로 인해 전 정부 책임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국정조사`가 불가피한 만큼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진석 기자 ojster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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