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분열 시나리오

한나라당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 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오랜만에 이명박 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가 추진하는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이 계기가 됐다. 영남을 기반으로 한 친박 진영에선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을 호락호락 허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짙다.
친 이명박 대통령 계열도 재결집을 시도하며 `밀어붙이기`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설은 친이계의 세력 판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한나라당은 친박 진영과 친이계로 분열돼 `한지붕 두가족`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상황이다.
분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여당 분위기를 추적했다.


잠잠하던 한나라당이 다시 한 번 들썩이고 있다.
조용히 관망하던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날린 것도 의미심장하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말 수도권규제완화정책에 대해 날선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분명한 의사 표시를 한 건 지난 총선 과정에서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말한데 이어 두 번째다.
한편에선 쇠고기 파동 및 한미FTA 등에 대해서도 일절 이야기 없다가 수도권규제완화를 놓고 비판을 가한 것을 두고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표로선 오로지 수도권규제완화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해가 되느냐 거기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남은 분명 한나라당의 텃밭이자 박 전 대표의 최대 우군 지역이다. 영남은 또 이 대통령 당선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영남 민심은 불과 1년 전의 영남 민심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영남 민심은 이 대통령에게서 떠나갔다. 이후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영남에서 이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혀졌다. 더욱이 불교계 차별을 겪으면서 영남 민심은 급격히 냉랭해진 상황이다.
현재 영남 민심은 4년 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을 내놓으면서 영남 민심은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쪽으로 흐르고 있다. 영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정부에 쓴소리를 날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박-창 연합설 `모락모락`

박 전 대표가 이번 발언을 통해 얻는 것은 상당하다는 평가다. 현재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은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방에서 반대를 하고 있다. 영남뿐만 아니라 충청 호남 등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가장 영향력이 높은 정치인인 박 전 대표가 한 마디 하면서 수도권규제완화 정책 반대 주도권을 자신이 쥐게 된 셈이다. 영남 민심을 넘어 충청 민심까지 잡을 가능성이 높게 된 것이다.
호남의 경우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지지기반이기 때문에 별개의 것이라 판단해도 충청의 경우 현재 자유선진당이 장악하고 있다고 하나 자유선진당 역시 보수정당이라 박 전 대표와 스펙트럼도 맞다.
더욱이 이회창 총재는 박 전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을 늘 열어놓았었다. 따라서 박 전 대표는 수도권규제완화 정책 반대로 인해 자유선진당과 공조 혹은 연대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영남 기반으로 충청 민심을 얻는다면 대권에 한 발 바짝 다가가게 되는 셈이다.

친이, "해결사가 필요하다"

반면 수도권 의원들 대부분이 친이 인사이기 때문에 친이와 친박의 충돌로 연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수도권규제완화 정책 자체가 이미 계파간 갈등으로 번진지는 오래다. 친이-친박은 한나라당이라는 한 지붕에 살고 있지만 이미 각방 쓴지 오래다.
두 집단은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은 이혼 도장을 찍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별거에 들어간 친이-친박 그룹으로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가능성이 있다.
친이재오계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는 것도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친이계 내부에선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적지 않다. 대권은 잡았지만 대권을 잡은 후 모래성처럼 사분오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대로 간다면 친이 그룹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상황에까지 직면했다.
친이상득계와 친이재오계로 양등분 된 것도 쉽사리 치유되지는 않을 분위기다. 더욱이 두 그룹 모두 활동 반경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상득 의원은 대통령의 친형이란 이유로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고, 이 전 위원은 미국에 있다.
친박 진영의 충성도가 고공비행이라면 친이계는 표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이 전 의원이 귀국할 경우 양대 진영은 정면 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자칫 `역풍` 맞을 수도

물론 아직까지 이 대통령이나 이 전 최고위원은 `귀국 가능성`을 일축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대선 경선 캠프였던 안국포럼 출신 정두언 이춘식 의원 등 12명과 가진 청와대 만찬에서 "상황이 어려워지면 대중으로부터 잊혀진다고 생각해 차분하게 멀리 보고 준비하는 것을 잘 못한다"며 "어려운 기간일수록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위원도 최측근에게 "당분간 귀국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이 아닐 뿐이지 연말이나 내년 초엔 이 전 위원이 돌아올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내 지배적인 분위기다.
경제 위기 등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전 위원이 돌아올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해결된 시점에서 성사될 것이라는 게 당 내 관계자의 말이다.
일단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을 놓고 친박진영과 친이계는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이전 위원의 `복귀`는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당 지도부가 서둘러 봉합에 나섰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사실상 각방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박 전 대표와 이 전 위원이 전면에 나서 싸움을 이끌 경우 분당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며 "영남 민심과 경제 상황이 중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진석 기자 ojster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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