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파문속 들불처럼 번지는 폐지 목소리

전북 임실교육청의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조작 파문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게다가 일제고사가 특수학급, 운동부 등이 배제된 상황에서 치러졌다는 사실(본지 151호. 1월 10일자 보도)도 도마 위에 올라 일제고사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과 학부모, 시민사회단체들은 일제고사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참교육학부모회 등 55개 교육시민단체는 "서울 고교 9곳에서 운동부 학생들이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며 "이는 학교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일제고사는 폐지돼야 한다"며 대대적 폐지 운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최근 몇 군데 교육청과 학교에서 나온 실수는 인정하지만 일제고사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교과부는 "학교간 경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방침이다.
전교조 정진후 위원장은 `일제고사 폐지` 입장을 표명하고 2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더불어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청소년들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릴레이 농성에 들어가 일제고사 논란은 더욱 증폭될 양상이다.    

"교과부, 아직 정신 못차리고 있어…"

일제고사 당시 특수학급, 운동부 학생들은 출석하지 않거나 출석을 하고도 시험을 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일례로 서대문구의 한 고교는 바둑, 골프, 탁구, 농구부 등의 학생이 평가에 참여하지 않았다. .
지난 25일 청와대 앞에서 1인 단식농성에 돌입한 전교조 정진후 위원장은 "운동부 학생들이 학업성취도 평가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염려해 학교들이 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제고사에 전국의 특수학교는 참여하지도 않았다"며 "이는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수평가가 필요하다는 교과부 주장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성적조작이 있었던 이번 일제고사는 당연히 무효화해야 한다"며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서열화된 성적 공개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참교육을위한학부모회는 "서울시내 한 고교에서 백지답안을 내거나 한 번호로 답안을 적어낸 경우를 제외하고 기초학력자를 줄여서 보고한 사례에 대가 있다"고 밝혔다. 학부모회 장은숙 회장은 "특히 특수학급 학생에게는 응시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이는 특수학급 학생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장 회장은 "서울 강남지역에선 학교장이 학습 부진아 부모에게 전화해 시험 당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집에서 체험 학습을 하도록 권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이같은 개별적인 사례까지 포함한다면 일제고사를 둘러싼 비교육적인 사례는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 주 방문한 경주와 나주 지역의 학부모들은 일제고사 성적 발표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다`며 참담해 했다"며 "학부모로서 더 이상 우리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가는 일제고사를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숙 회장은 "당장 3월부터 각 학교에선 학생들의 성적 높이기에만 급급한 왜곡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일제고사 반대 불복종선언`을 조직화하고 체험학습을 안내하는 학급 통신 보내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과부에 따르면 특수 학급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치더라도 어차피 학교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다. 교과부 김동오 교육연구사는 "설사 일제고사가 학교간 경쟁을 부추긴다 할지라도 `특수 학급` 학생들의 성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설명했다. 
그러나 교과부의 이러한 입장은 `교육과정`과 모순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교과부 앞에서 농성에 돌입한 선사초등학교 송용운 교사(일제고사 관련 파면)는 "특수학급 학생들은 일반학급에서 하루 중 몇 시간은 교육을 받고 특수학급에 이동한다"며 "특수학급 학생들도 기본적으로 일반학급에 속한 일반 학생"이라고 주장했다. 
송 교사는 "특수학급 학생들은 일반학급 소속들로 당연히 일반학급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한다"며 "교과부에서는 학교 자체에서 일제고사를 치렀던 2007년까지 특수학급을 이미 차별화해 왔다며 사태 본질을 흐려놓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이미 교육과정에 위배되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과부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며 "교과부 논리대로라면 조작과 관련된 사람들은 당연히 파면돼야 하며 특수학급과 운동부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 또한 중징계에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일부 고교에서 운동부 학생들이 평가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성적을 부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학교에서 운동부 학생들이 평가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당시 평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지 성적을 조작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며 "일부 학교는 평가일이 전국체육대회와 겹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앞서 단식농성중인 전교조 정진후 위원장

정부여당은 확신범?

결과적으로 일제고사 배후에는 학교간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으로는 3불제도(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의 부활을 꾀하려는 시도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기에는 기여입학제나 고교등급제를 확대하는 것과 평준화 해체가 자리잡고 있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을 자와 도태되는 자가 공존한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 10년간 영국과 미국이 고수해오던 정책이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폐지단계로 접어들었고, 미국의 경우 일제고사는 시행하지만 학부모 선택권이 보장되고 있다. 한국은 이들 두 국가가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는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제고사를 고집해 국가적 차원에서 얻는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 어떤 명확한 답변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정부여당의 태도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저 전근대적 신념에 사로잡혀 일제고사의 필요성을 맹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진후 위원장의 "확신범이 더 무서운 것"이라는 우려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정부여당은 경쟁을 통해 학생들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하고 아울러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전근대적인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꼬집었다. 또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일제고사를 고집하는 자체부터 교육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없는 정치집단"이라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인수위 시절 이주호 차관이 디자인해놓은 것을 교과부가 색칠을 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이주호 차관은 경제학자이고 안병만 교육부 장관은 정치학자인데 이들에게서 나오는 교육정책은 뻔한 것 아니겠냐"고 혀를 찼다. 정 위원장은 "일제고사는 경제적으로도 문제"라며 "최악의 경제 위기에서 일제고사를 통해 학부모와 서민들이 얻을 것은 폭등하는 사교육비뿐"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정치권도 정부여당의 태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진보신당은 논평을 통해 "안병만 장관이 이 사태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아니라 단순히 기술적인 보완사항만 얘기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이번 사건의 본질이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점방식, 집계방식 개선 등만 얘기하는 것은 사교육비 고통, 성적경쟁 고통, 성적공개와 서열화로 인한 자존심 상실 등 총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논평은 "마치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 앞에서 `어떤 장갑을 끼고 수술할까`를 물어보는 것과 같은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들도 들고 일어났다. 89년 전교조 교사 해직을 반대하기 위해 농성한 이후 처음으로 다시 농성에 돌입한 것. 청소년들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올해 들어 처음 치르는 일제고사일인 3월 10일까지 농성을 이어갔다.
청소년 모임인 `무한경쟁 일제고사 반대모임 Say-No`는 지난 23일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일제고사와 그에 따른 정보공개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일제고사를 추진하는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청소년과 청소년단체활동가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Say-No`는 "이명박 정부가 청소년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일제고사를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일제고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를 중단하고, 일제고사를 인한 해직교사 등을 복직시켜야한다"고 밝혔다. 각계의 날선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일제고사에 대한 정부여당의 행보는 여전히 묘연하기만 하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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