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관악산

작년 가을에 찾았던 관악산은 어느새 만춘(晩春)으로 변해 상큼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지하철 2호선 신림역 3번 출구를 나와 서울대학교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서울대입구에서 내린 일행은 나뭇가지가 우거진 기존 등산로를 따라 삼막사로 향한다. 오늘의 키포인트는 나무그늘을 따라 정상을 가는 것. 32˚C를 오르내리는 한여름 날씨 때문이다.


자연탐방지킴터에 들어서니 숨이 탁 막힌다. ‘강남순환도시 고속도로’ 공사를 하기 위해 철재 칸막이를 설치해 놨기 때문이다. 이곳에 두 개의 터널을 지하로 뚫어 남부순환로의 교통체증을 해소한다는 청사진이다. “나으리님 뜻이니 민초가 어찌 알겠소만 멀쩡한 산밑을 파서 뭘 어쩌자는 건지, 자못 저의를 모르겠나이다.”

그늘진 등산로 입구는 각종 나무로 인해 시원하기만 하다. 북한산에서도 많이 본 단풍나무 갈참나무 물푸레나무 다릅나무 리기다소나무 물오리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등 외에 때죽나무 굴참나무 물박달나무 노루오줌나무 등이 새롭게 눈에 띈다.

한 시간 여를 오르니 제1야영장 가는 길과 삼막사 가는 길의 삼거리가 나온다. 일단 일행들 이곳에서 휴식에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 지인 한 명이 배낭에서 막걸리를 꺼낸다. “아니 도중에 무슨 술? 최근 재보궐선거도 끝났는데, 왠 중간평가란 말인가. 평소 성향이 여의도 쪽은 눈길도 안주는 양반이….”

출발할 때 김치전도 함께 사왔다며 바위에 턱하니 펼쳐 놓는다. 현재 핸드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이 대단한 모 선수의 아버지다. 아드님 장래에 지장 초래할까 노심초사(勞心焦思), 이름만은 목구멍 속으로 집어넣는다. 기자가 특종을 버린 줄 알면 예의 우리 데스크 정모 국장 노발대발 할 텐데…. 하기야 그 인간성 바로 잡기가 쉽지 않지. 그래도 지난 도봉산 자운봉 등반기(記)서 자기 인간성에 대해 몇 번 ‘짖었더니’ 등산마당 타이틀에 턱 하니 기자 이름을 앞에 붙인 시그널제목을 달아줬다. 대수롭지 않은 듯 짐짓 포커페이스를 하느라 내심 힘은 들었지만, 저 인간 그러다가 언제 편집회의하면서 새로운 편성표 들이밀지 예측불허다(다분히 그동안 경험에 의하면). 산에 오르다말고 편집장 성토만 하고 있으면 안되지, 평생 안 볼 사람도 아닌데, 우리 사이 농담인줄 다 아시겠지….

냉동실에 얼려 놓은 막걸리라 넘 시원하다. 일행들 단숨에 넘긴다. 김치전 맛도 장난이 아니다. 한잔 두잔… 이러다 여기서 아예 자리 깔까 두렵다. 아무튼 정상은 다녀와야 독자제위께 명실상부한 등산마당 소개해 올리는데… 이럴 때 대략난감이라 하는가.

어렵사리 발걸음 옮긴다. 12시 30분. 마지막 깔딱고개가 술 먹은 일행들 비웃기라도 하듯 딱 버티고 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이마의 땀 훔치면서 ‘중간 술 먹고 중간평가 0:5다 0:5. 그렇다고 이 양반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그러고 보니 최근 TV서 본 듯한 뻔뻔함이 되살아난다.’


드디어 정상 가까이 있는 거북바위를 지난다. 작년 가을 때 본 모습과 전혀 변함이 없다. 암! 그래야지. 말 못하는 바윗돌도 그 모습 그대론데, 속세의 인간들 툭하면 배신 때리고 이간질하고 기만하고 못써. 그나저나 오늘 내가 더위 먹었나 꽤나 까칠해 진다. 이게 다 그 편집장 저∼엉 모씨 덕분이다. 더운 날만 골라서 등산마당 마감 날이래. 아랫것이 별 수 있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얼마 전 ‘부처님 오신 날’을 보낸 삼막사는 마당에 오색등을 화려하게 매단 채 길손을 맞이한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위치한 삼성산 삼막사는 연주암, 염불사와 함께 관악산의 3대 사찰 중 하나로 신라 문무왕 17년(677년)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시작이며 삼성산이란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중건하고 관음사(觀音寺)라 부르다가 고려시대에 왕건이 중수한 후 삼막사로 개칭했다고 한다. 1394년(태조3)에 무학왕사가 머물면서 국운의 융성을 기원한 것으로 인해 1398년 태조의 왕명으로 중건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대대적인 중건이 있었으며, 1880년(고종17)에는 의민이 명부전을 짓고 이듬해에 칠성각 등을 완공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명부전, 망해루, 대방,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중요문화재로는 마애삼존불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동종, 삼층석탑, 거북이 모양의 석조(石槽)등이 있다.

점심은 거북바위 근처에서 해결한다. 나이 제일 지긋한 지인, 한우갈비와 청량고추, 감자볶음, 황태찜을 차리고, 중간평가 어르신, 김밥과 바나나, 사과, 오이 등 각종 과일을 보탠다. 기자, 삶은 계란과 막걸리, 하의도 천일염, 여수 돌산 갓김치, 사발면 더한다. 기자의 계란 삶는 솜씨는 주변에선 정평이 난지 꽤 오래다. 비법은 다음 기회에 원하는 사람에 한 해서 이메일로 발송하겠다. 저∼엉 모 국장의 시달림에 못 견뎌 사표라도 낼 요량이면 산 밑에서 분식집이라도 차려 노후대책 해야지. 그때를 대비하여 삶은 계란의 히든카드를 공개할 수 없음을 애석하게 생각한다. 아! 오늘은 우리 데스크 제일 바쁜 날 중 하루다. 이런 날 자꾸 심기를 건드려서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다. 미련하고 융통성 없음을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 했겠다.

하산 길의 안전을 위해 막걸리는 각 한 통 씩만 하기로 했다. 이것저것 먹다 보니 어느 새 뱃속이 꽉 찬 느낌이다. 갑자기 졸음이 밀려온다. 취기도 돌고 배낭을 베개삼아 옆으로 슬며시 드러눕는다. 맑은 하늘이 해맑게 웃는다. 숲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이 눈꺼풀을 처지게 한다. 모처럼 군대시절 오침(午寢)을 맛본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무너미 능선을 따라 한없이 내려간다. 낮술로 찌 근 했던 머릿속은 땀방울에 씻게 어느 새 맑아졌다. 괜히 아까운 술만 날렸네. 이재나 저재나 그놈의 술타령…


중간 기착지인 ‘호수공원’에 오니 분수대서 시원스런 물줄기를 뿜어낸다. 그 광경이 아름다워 아마추어 작가들 사진촬영이 한창이다. 옥에 티라면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관계로 심한 악취가 코를 진동한다. 그래서 그런지 벤치로 만들어 놓은 쉼터에 단 한명도 자리를 하지 않는다. 외관만 치중하고 내실이 영 아니다. 행인들 발걸음을 붙들어 매야 재.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단면이다. 하여튼 나으리 하고는…

서울대 입구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신림동의 치킨 생맥주집을 찾았다. 일전에 들렸던 그때 그 집 ‘도드람치킨’이다. 닭과 생맥주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난 이곳에서 더위를 식힌다. 오늘도 대충 대여섯 시간을 산에서 보냈다. 뜻이 맞고 뚝배기 맛 나는, 항상 보고픈 지인들과 함께 하는 이 자리가 지상의 낙원이라면 지나친 표현인가.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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