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기자> 아빠 그리고 수빈이와의 걷기여행-2탄

워낙 잠자리를 가리는 성격이다 보니 첫날 밤 잠을 설쳤다. 아빠는 벌써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계셨다. 수빈이는 처음 해보는 걷기여행에 지쳐 일어날 생각도 안했다. 아침은 미리 준비해온 쌀로 밥을 짓고, 일회용 카레와 자장을 먹기로 했다. 씻고 나와서 준비를 하고 있으니 수빈이도 부스스 일어났다. 밥을 차릴 동안 수빈이가 씻고 나왔다. 그리고 아빠가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출발을 하기 위해 큰 배낭 안에서 꺼내놓은 짐들을 다시 꽉꽉 채웠다. 전날 비가 다 내린 것인지 날이 아주 쨍쨍 했다. 전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이 날은 살이 탈 것을 염려해 선크림도 바르고 챙이 넓은 모자까지 쓰고 우리가 묵었던 변산온천을 나와 다시 걷기에 돌입했다.


#새만금전시관 인근...

날씨가 더워서인지, 전날 너무 무리해서인지 발도 아프고 몸도 무거워 걷는 속도가 느렸다. 마음은 이미 시속 100km를 넘어서고 있지만 걸음은 마냥 거북이 같았다. 선두인 나에게 아빠가 속도 좀 내라고 다그치셨다.


#새만금방조제로 발이 묶여 버린 어선들

하지만 속도도 내기 전에 작은 사고가 났다. 수빈이가 넘어진 것이다. 잘 걷고 있었는데 너무 힘이 들었는지 갑자기 다리가 풀린 모양이다. 살가 났는데 찻길인 터라 재빨리 응급조치만 하고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가면서 보니 상처에선 피가 멈추질 않았고, 내 손가락 역시 지난 번 걷기여행 때처럼 피가 통하지 않아 퉁퉁 부어올랐다. 결국 새만금전시관을 지나 바닷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곤충생태체험장`이란 곳에서 쉬게 됐다. 그곳엔 돼지들도 있었고, 강아지들도 있었다. 꽤나 규모가 컸다.
 
수빈이의 무릎에 난 상처는 아빠가 뜯어 온 쑥을 빻아 지혈을 했다. 그리고 물로 깨끗이 씻고 미리 준비해 온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그리고 힘들게 다시 출발!


#곤충생태체험장의 애완용 돼지들...니들은 정말 좋겠다

이 날은 수빈이가 전날 내가 한 말 때문인지 아빠에게 가방 들어달라는 소릴 하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뜨겁게 달궈진 차도를 걷자니 마치 극기 훈련장에 온 것 같았다. 속도는 갈수록 느려졌다. 재작년 걷기여행을 할 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이것보단 빠르게 갔는데 말이다.

부채질도 하고, 찬물도 먹고 하며 더위를 식히려 했다. 때마침 아빠가 쉬어 가자고 해서 큰 나무 밑에서 쉬게 됐다. 나무엔 그네가 달려 있었고 나와 수빈이는 그네를 타며 더위를 식혔다. 아빠는 너무 걷는 속도가 더딘 우리를 위해 원래는 점심을 먹으려 했던 격포해수욕장을 오늘 하루의 최종 목적지로 바꿔주셨다.

다시 힘을 내 열심히 걸어갔다. 짜증을 좀 내긴 했지만 수빈이도 꽤나 잘 걸었다.

걷다가 얼마 안돼 도착한 변산해수욕장. 시원한 바다에 발이나 한 번 담궈보고 가자는 생각에 냉큼 바닷물에 들어갔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 느끼는 시원한 바다였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투명한 바다 속에 보이는 둥글고 투명하고 말랑말랑한 저것은? 해파리였다. 해파리가 정말 많았다. 주먹만한 것부터 사람 머리 만한 것까지…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변산해수욕장...뭘 저리 넋을 놓고 바라보는 걸까요^^.

재빨리 바다를 빠져나와서 우린 점심으로 전날 점심 때와 같이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변산해수욕장 모래사장에 평상이 굉장히 많아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가 근처에서 횟집을 하는 친절하신 아저씨의 도움으로 자전거까지 빌려 멀리 떨어진 슈퍼마켓에 가서 라면을 사오시고 내가 라면을 끓였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무 그늘 아래인데다 바닷바람까지 불어 너무 시원했다. 라면을 끓여서 정신없이 먹고 근처 수돗가에서 깨끗이 설거지를 하고 또 다시 출발~!


배도 부르고 다시 새 마음, 새 기분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날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더워졌다. 살은 불이라도 붙은 듯 계속해서 새까맣게 변해갔다.





변산면 소재지를 지나 한참을 걷다가 잠시라도 숨을 돌리기 위해 쉴 곳을 찾다가 보니 나오는 바닷가. 고사포해수욕장이라고 했다. 해수욕장 안으로 들어서니 해변가에 커다란 솔숲이 조성돼 있었다. 솔숲에 들어가자마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버렸다. 바로 파출소 옆이었다. 아빠는 가는 길을 물어보기 위해 사정을 얘기하며 파출소 아저씨께 말을 걸었다. 파출소 아저씨도 이쪽 지리는 잘 모르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여행을 하는 중이냐며 꽁꽁 얼린 얼음물 3통과 사발면 3개를 주셨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이게 바로 시골 사람들의 정인 것 같았다.


#걷고 또 걷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쭉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지 말아야 될 것을 보고야 말았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그것. 바로 개구리였다. 게다가 비참하게 숨을 거두고만 시체…. 넓은 길이 아니다 보니 눈에 더욱 확 들어왔다. 또 어찌나 큰 지 마치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나도 놀라서 소리를 꽥 지르면서 뒤돌아서 뛰어갔다. 뒤에 있던 수빈이는 나보다 어린데도 별로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빠에게 끌려 다시 돌아왔지만 다시 개구리 시체를 보기가 싫어 재빨리 지나쳤다. 너무 소름이 돋아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손도 자꾸 털게 됐다(나만의 소름 퇴치법이다). 결국 나의 극단의 조치는 음악듣기. 음악을 들으면서 그 비참한 현장을 잊어내야 했다.


#저 뒤로 바닷길이 열리는 하도가 보인다.

참으로도 길고 긴 길이 이어졌다. 아빠는 "이 고개만 넘으면 끝이다", "이제 마지막이다", "진짜 끝이다"라며 계속 우리를 꼬드겼지만 그놈의 고개는 넘고 넘어도 격포해수욕장은 나오질 않았다. 중간, 나무로 짜여진 전망대가 나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바닷길이 열리는 곳이라고 했다. 육지와 연결되는 섬은 하도. 우리가 간 그 시간대엔 밀물이어서 바닷길이 잠긴 상태였다. 다시 출바알!

아빠의 `마지막`이라는 말을 계속 듣다보니 간신히 도착한 격포해수욕장 입구. 
수빈이의 짜증이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상태여서 격포해수욕장 인근 처음 눈에 띈 숙박집으로 바로 들어갔다. 다른 곳도 둘러볼 틈 없이 첫 번째 본 집에서 그냥 짐을 풀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 짐을 푼 우리들은 찬물 밖에 나오지 않는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2NE1 TV`를 봤다. 여행중이다 보니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볼 수 있었다. 그 시간 아빠는 밖으로 나가 횟집을 알아본다고 하셨다.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회를 먹고 싶다는 내 얘기에  최대한 싸고 싱싱한 횟집을 찾아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해수욕장에서 조금 떨어진 격포회센터. 큰 건물 안에 조그마한 횟집들이 수십개 줄을 지어 들어서 있었다. 아빠는 해수욕장 근처 횟집들이 너무 가격이 비싸 파출소에 들어가 싸고 맛있는 횟집이 어디 있는지 물어봤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곳이라고 했다.


#격포해수욕장 인근의 적벽강

우린 광어회를 시켰다. 주인 아주머니가 백고동탕까지 덤으로 끓여주셨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어느새 어두워진 바닷가를 걸어 채석강 쪽으로 향했다. 격포해수욕장 바로 옆에 위치한 채석강은 암벽의 모양이 마치 책을 쌓아놓은 것처럼 생겨서 이름이 그리 붙여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웬 일? 채석강 쪽으로 들어가는 방파제 공사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것이 아닌가.

우린 할 수 없이 채석강 바로 위 산으로 향했다. 산책로가 조성돼 있었다.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오르니 팔각정이 있었다. 우린 그곳에 올라 넓고 시원하게 펼쳐진 서해바다와 격포해수욕장의 멋진 야경을 감상했다.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그곳에서 내려 온 뒤엔 해변에서 펼쳐지는 폭죽놀이도 구경했다. 배부르고 즐겁고 편안한 밤이었다.


마지막 날. 이날은 큰아빠 큰엄마, 그리고 우리 엄마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엄마 일행이 서울에서 새벽같이 출발했다고 전화가 걸려왔다. 물론 수빈이 때문이리라. 그런데 수빈이의 태도가 전날과 달리 좀 이상해졌다. 큰아빠가 일찍 내려온다는 사실이 작용을 한 듯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빠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곁들여 맛있는 식사를 하고 숙소를 나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짜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아빠는 수빈이의 이어지는 짜증에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때마침 큰아빠도 금방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간 곳은 드라마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촬영지였다.
 

솔직히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직접 보진 못해서(?) 그닥 설레인 건 없었다. 하지만 정말 드라마에 나왔던 그 건물들이 그대로 있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드라마 촬영 후 일부러 이곳 지역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보존을 한 것이라고 했다.
 

#전라좌수영 이순신 장군이 앉으셨던 의자에서...

좌수영은 바로 바닷가로 연결돼 있었다. 나와 수빈이는 바닷가로 내려가 예쁜 돌들을 주우며 엄마, 큰엄마, 큰아빠를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흘만의 만남이었다. 마치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다가 구출당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엄마 일행을 만나서 우린 본격적인 휴가를 즐기러 우리가 지나쳤던 고사포해수욕장으로 다시 향했다. 그곳에 있는 횟집에서 큰아빠가 고생했다며 아주 비싼 회를 사주셨다. 하지만 맛은 전날 먹었던 싼 가격의 회보다 훨씬 못한 느낌이었다. 많이 걷질 않아서인가?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걷기여행은 끝이 났다. 우린 전북 고창에 있는 시골집으로 가서 잠을 잤고 이후엔 전남 신안의 증도와 시골집 근처에 있는 선운사 계곡 등에서 나머지 휴가를 즐겼다. 아빠가 한마디 하셨다. "다은이 덕분에 그래도 아빠가 힘이 덜 들었다"고. 수빈이를 잘 챙긴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면서 "다은이가 교관, 수빈이는 수련생, 아빠는 짐꾼이었다"고도 했다. 정다은 기자 <정다은 님은 경희여중 3학년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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