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료주의적 독재 북한 정권 미래 전망 없어, 중국식 경제개혁이 `차악`
# 현정부 극우적 포퓰리즘 차원에서 전임자들의 대북정책 망가뜨려
# 이명박의 보수대연합 장기적 저성장의 무게 감당지 못해 결국 붕괴할 것
# 한국인 다수의 내셔널리즘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국민주의` `대한민국주의`



 

- 민족문제를 두고 진보진영 내에서도 분열된 상태다. 북한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봐야 된다고 생각하나.
▲ 북한의 관료주의적 독재는 미래 전망이 없는 정권이지만, 만의 하나 남한이 이북지역을 흡수한다 해도 상황이 나아진다기보다는 그 쪽 다수의 주민들이 거의 영구적으로 `3등 국민`, 거의 외국인 노동자 신분처럼 되어 극심한 차별과 착취를 당할 것이다.
즉, `북한 정권 타도`를 외치는 것도 전혀 합리적인 대안은 아니다. 평화공존정책으로 북한 지배자들을 안심시켜 점차적인 개방 확대, 중국 내지 월남식 경제 개혁을 단행할 여지를 주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차악일 것이다. 

-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평가할 만한 정책이 없어서 문제이다. 여태까지 한 것은 일종의 극우적 포퓰리즘 차원에서 전임자들의 정책을 망가뜨리고 아무런 의미 없는 대결, 대립으로 치닫게 한 것뿐이었다. 여태까지 망가뜨린 것을 복원하자 해도 아마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때에 어느 정도 형성된 이북 지배자들과의 그 나름의 상호 신뢰의 분위기를 망가뜨린 것은 가장 큰 실정일 것이다.  

-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는 크게 변화가 없다.
▲ 격차 사회를 심화시켜 나가는 이명박 정부의 지지 기반은 점차 굳어지는 느낌이다. 지지율이 40∼50%를 왔다갔다하는 사실은, 한때 이명박을 별로 달갑지 않게 봤던 수많은 `중간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이제 그를 지지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공황의 참경 속의 극우 정권의 인기 상승, 그 비결은 무엇인가? 불가사의해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이명박 정권이 안정궤도에 진입한 데에 나름의 이유는 있다.
첫째, 저들은 본질적으로 강남공화국의 수장 층임에 틀림없지만 강남공화국 영토 바깥의 여러 중간집단과 `연대`도 꾸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건설 규제 완화와 거대형 토건 프로젝트 진행, 저금리 정책 등을 통한 이명박 정권의 `집값 떠받치기`는 일차적으로 강남 귀족들의 자산가치를 살려주는 정책이지만, 이와 동시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55%의 한국인들에게도 나름의 호소력을 지닌다.
물론 그 정책의 이면에 비싸진 전셋값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내야 하는 45%의 무주택자의 고통도 있고 1990년대의 일본과 같은 부동산 거품 빠지기와 전체적 경기 붕괴의 커다란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토건주의가 나라를 망친다 해도, 지금 당장에 주택 소유자 계층의 상당 부분은 이를 좋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일부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도 한 요인이라고 봐야 할까.
▲ 국내의 극우·보수 블록은 이명박의 포퓰리즘, 즉 반북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코드도 공유한다. 물론 그 근시안에 있어서 반북주의는 토건주의에 결코 못지 않다. 맹목적 반북주의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계속 증강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서 북한 지배계급 안에서의 강경파의 위치를 강화시켜줄 뿐이다.
북한의 군사주의적 강경 노선이 결국 한국에서의 병영사회 지속과 일본의 보수화 위험을 의미하지만, `빨갱이 거지떼에게 왜 돈을 퍼붓느냐`는 말초적 경제주의에 빠진 한국의 자만적  보수층에게 이를 설명해주기 어렵다.
가난한 동포에 대한 멸시가 섞인 혐오와 아프리카에서 대형 농장을 사서 `해외 식량기지`나 만들 만한 국력을 키운 아류 제국 대한민국에 대한 광신적 긍지야말로 이명박 극우·보수 블록의 중심적인 정서적 코드다.
이와 비슷한 정신상태를 과시했던 일본 자민당의 극우·보수 블록이 얼마전 총선에서 붕괴했듯이 이명박의 보수대연합도 장기적 저성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붕괴할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한반도의 자연과 노동자, 서민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 북미관계, 남북관계 등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어떻게 예측하고 있나. 
▲ 미 제국이 지금으로서 아프간 침략 실패의 문제 해결(병력 증파를 통한 저항 세력 토벌과 괴뢰정권의 안정화일 수도 있고 탈레반 승리를 일단 인정하고 탈레반과의 관계 정상화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아프간, 파키스탄은 일차적이다)과 `핵 문제` 강조를 통한 이란 위치의 약화(즉 중동에서의 대안적 헤게모니 세력 등장의 방지) 등 중동, 중앙아시아에서의 `작업`에 하도 매달리기에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적대 정책을 취할 여력은 없을 듯하다.
단, 북한의 핵무장 해제 의사가 사실상 없을 듯하니 북·미 수교의 가능성도 낮다. 가장 현실성이 높은 것은 현상 유지 기조 위의 약간의 북·미 `가까워짐`일 듯하다. 남북 관계의 경우에는, 적극 대결 무드로 지금 이상으로 들어가지 않을 듯하지만 이명박 정권과 한국자본이 단기적, 중기적 이윤이 없거나 낮은 북한에 큰 투자를 할 뜻이 없으니 대규모적 진전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우리 국민들에게 내재된 민족주의가 방어적 민족주의가 아닌 국수주의 내지 파시즘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례로 아이돌 그룹 2PM의 `재범이 사태`를 꼬집기도 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이 추구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평가하나. 장·단점이 두루 존재할 것 같다.
▲ 우리는 아직도 당위적으로 `민족`을 이야기하지만, 남북 통일에 적극적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사실 극소수이고 다수는 현실적으로 앞으로의 장기간, 내지 영속적 분단을 수용한 셈이다. 그래서 한국인 다수의 내셔널리즘은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국민주의`, `대한민국주의`에 가깝다.
이 `국민주의` 입장에서는 외부인(결혼 이민자 등)의 진입은 가능하지만 하위에 배치돼 암묵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된다. 단, 세계체제 상층부에서 오는 외부자(예컨대 재미교포)들은 우대되지만, 그 우대의 저변에 `군대에도 안가는 그들`에 대한 엄청난 시기심도 깔려 있다. `재범이 사태`에서 바로 이와 같은 우대와 질투의 이중 심리가 노출됐다.
 
- 박 교수는 한국고대사학을 전공했다. 오슬로대학의 한국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도 한국학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학은 어떤 학문인가. 
▲ 한반도의 역사, 문화, 문학 등을 고찰하면서 그 `한반도적` 특징에 주목하려 하는 방법론적 지향을 갖고 있는 학문이다. 원래 한반도를 침략하려는 열강들의 주문을 받아 각국 학자들이 해온 공부지만, 현지로서 주로 한국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면서 `국위선양`을 하려 하는 한국 당국자의 의지를 자의든 타의든 어느 정도 반영하는, 자율성이 비교적으로 적고 정치성이 높은 학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이 분야에 있어서의 자율성, 비판정신을 유지하려는 학자들도 없지 않아 있다.

- 박 교수는 한국어를 토종 한국사람보다 잘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려면 그 나라의 시(詩)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좋아하는 시인이나 시를 소개하자면.
▲ 밤 12 시 /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심장이었다 / 밤 12 시 /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 밤 12 시 /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 밤 12시 /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 밤 12 시 /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 김남주, 학살1 中-

김남주의 이 명작이야말로 한반도 역사의 진실을 말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고통과 죽임, 착취, 억압으로 진행돼간다는 사실을 직시케 하는 것이다.

- 얼마전 문화평론가 조우석 씨가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 박 교수를 "가장 왼편에 서 있는 학자"라며, "균형 잡힌 성찰과 눈먼 비판 사이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조 씨는 "우리 근·현대사는 숱한 상처 못지 않게 놀라운 영광·성취를 함께 이뤘는데, 박 교수가 그걸 도외시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그것은 중생마다 각자의 처지대로 보고 싶은 것을, 그리고 쉽게 보이는 것을 보고 이야기하는 이치다. 자기 집을 확보한 정규직이나 재산가에게야 대한민국은 영광의 땅일 것이고, 직장에 매일 오면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사람, 계약 만료 일자가 명시돼 있어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 자기 집이 없어 늘 오르는 전세값에 신음하는 사람, 그리고 더군다나 짐승처럼 단속이라는 이름의 사냥을 당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아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끝이 나지 않는 계급의 갈등, 모순, 투쟁에 있어서 누구의 편에 서 있느냐의 문제이니 서로 비판할 것도 없다. 그냥 서 있는 편이 다르다고 보면 그만이다.  

- 박 교수는 한국사회가 오른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이미 거의 40년 전 전태일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지 않았나. 이 말이 우리의 통념, 상식이 되면 비정규직들의 정규화의 필요성 등은 다 선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기에 존엄성과 안정성을 가져야 하고, 즐기면서 노동할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들에게 즐거움과 존엄성, 안정성을 담보하는 사회만이 조우석 씨가 이야기하신 `영광의 사회`가 될 수 있음을 굳이 확신하는 바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