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용산참사 발생 345일만의 극적 타결 그 뒤

지난달 30일 345일 만에 `용산참사` 보상·장례 문제 등이 극적 타결됐다. 용산참사범대책위원회(범대위)와 용산 4구역 조합 간 합의가 이뤄졌고 정운찬 총리 역시 정부의 참사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길고도 지리했던 사건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용산참사의 원인이 됐던 재개발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오는 23일 참사 발생 1년 하고도 이틀을 맞아 유족들은 참사현장인 남일당 빌딩에서 철수할 계획이지만 검찰 수사의 부당성, 용산참사의 또다른 원인인 뉴타운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 등은 여전히 제2, 제3의 용산참사 발생 가능성을 예견케 하고 있다.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중재를 자처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운찬 총리는 용산참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정운찬 총리는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총리로서 책임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유족 여러분들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희생자 유가족 권명숙 씨는 이번 합의와 관련 "공식적으로 타결이라고 말씀드릴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쳐왔지만, 타결되지 않은 채 일단 장례가 급하다고 생각했다"며 "냉동고에 1년 넘게 희생자 분들을 둘 수는 없어 유가족이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범대위와 유가족들이 내건 최소한의 조건은 충족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정부의 책임 의식은 여전히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유감 표명과 보상금 등을 통해 명분만을 내세운 게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이유다.
범대위의 한 관계자는 "이 문제를 새해에도 계속 끌고 가면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라며 "올해는 지자체 선거가 있는 해인데,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이 선거를 앞두고 같은 당의 원희룡 의원, 민주당의 이계안 의원 등이 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비판을 가하고 있으니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산참사가 1년 가까이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다가 지난 12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2주간 급물살을 타며 합의에 도달했다는 점은 이같은 상황을 뒷받침해준다. 사인간의 문제라며 `요지부동`이었던 유력 인사들이 연내에 해결되기를 바랐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범대위 관계자는 "연말 굵직한 사안들 속에서 용산참사를 해결했다는 부분을 `극적 타결`이라는 형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여론을 물타기 하려는 `여론전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합의에서는 유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지만, 사실상 사건의 본질을 숨기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범대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정부는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유족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덜겠다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얘기"라며 "용산참사에서 손 털고 나왔다는 해방감이 이번 합의에서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정부는 도의적 책임을 진 것일 뿐, 수사기록 3000쪽 공개 또는 구속자의 석방 등 법적 책임을 진 것은 아니다. 정부가 문제 해결의 근본적 의지가 있다면, 재개발 정책과 구속된 철거민들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보여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주원 나눔과미래 지역사업국장은 "왜 경찰특공대 1600명이 농성 하루만에 긴급 투입됐고, 가이드라인까지 어겨가면서 진압을 했는지에 대해선 밝혀진 사실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용산 4구역은 관리처분까지 2년밖에 안 걸렸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며 "지난해 2월 착공이 목표였기 때문에 금융권 이자부담 등을 신경써야 할 시공사는 물론 조합 용역업체 입장에서도 다급한 상황이었다"고 얘기했다.
이 국장은 "이런 사실들을 충분히 고려해 볼 때 용산참사는 경찰특공대와 용산4구역 철거민 사이의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분명한 배경이 있을 것"이라며 "삼성물산 등 건설업체들이 정치권에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속도전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이해 당사자들의 역할 등에 대한 진상 규명이 빠진 채 경찰과 철거민 간의 단순한 갈등 요인만이 부각되다 보니 이처럼 문제 해결이 늦어졌다"며 "그렇다고 완전히 해결이 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않아 용산참사는 사실상 해결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발 문제 대책 없어

시한폭탄은 여전히 잠재돼 있다. 현재 서울시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은 봉천, 미아, 왕십리, 흑석동 등 수십여 곳에 달한다. 전국적으로는 100여 곳이 넘는다. 용산참사로 인해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 대한 중단 및 전면적인 재검토 요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서울시는 오히려 뉴타운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서울시의회에서 다뤄온 `도지재정비 촉진을 위한 조례 개정안`은 뉴타운사업의 건축공사비, 추진위원회 운영자금, 세입자 주거이전비 및 과거 흔적 조성사업비 등을 사업시행자에게 보조, 융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청장이 시행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과거 흔적 조성 사업비 전액 보조`, `건축공사비의 80% 이내 융자`를 하고 구청장 외 민간조합이 사업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건축공사비의 40% 융자`, `세입자의 주거이전비의 예산 범위 내 융자`,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운영자금의 80% 이내 융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주원 국장은 "서울시는 조례안을 통해 침체된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지만 실제 건설업체나 용역사가 신규 대출이 어려워져 뉴타운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자 이에 대한 지원책을 만들어서 뉴타운 사업의 속도를 내려는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 국장은 "아직도 재개발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미완의 해결에 머문 용산참사 합의도 여전히 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발업자들과 조합에 오히려 면죄부를 씌워주고, 추진속도를 더 빠르게 해 주민들을 더 빨리 내쫓게 만드는 독소적인 요소가 여전히 많다"며 "정부와 서울시가 제2의, 제3의 용산참사를 예방하려면 국면전환용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이며 대대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재발 문제 대안의 핵심은 `재정 문제`"라며 "합동재개발이 나온 것도 재원이 없어서인데, 연간 2조원 정도를 투입하면 민간이 나서지 않아도 재개발이 시급한 지역에 한해 단계적으로 공익성을 보장하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재개발사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공공재정이 투입되지 않은 채 공공개발을 논의하는 것은 선언적 구호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부동산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씨도 "용산참사가 기존의 재개발 문제가 곪아터진 것이라면 현 정부는 이것을 더 악화시키는 규제 완화를 하고 있어 문제를 더 덧내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며 "용산참사 유가족과 정부의 합의는 근본적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손 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주택정책 논리는 건설업체들이 집을 많이 짓도록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에 올인하자는 것"이라며 "집을 많이 짓기로는 이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신도시보다 도시 재개발을 통해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이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계획수립 단계에서의 공공성, 사업집행 투명성, 조합운영의 민주성이 재개발 대안"이라며 "우선 공공성은 시공사가 장난치는 문제를 없애고 자치단체가 개입하고 보증까지 서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씨는 "재개발 이후 발생할 세수를 앞당겨 투입하는 방식도 필요하다"며 "개발방식도 전면 철거를 할 것이냐 부분적 개량과 재개발을 혼합할 것이냐 등을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자체에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공식기구가 생겨야 하며 재개발과 관련한 모든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해야 한다"며 "재개발추진위와 총회 등은 공공 부문의 책임 하에 진행되어야 용역깡패가 동원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투명성을 위해 재원문제도 공공이 관리하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1년 가까이 끌던 용산참사 문제가 타결되었다고는 하나, 재개발 문제의 근본적 처방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제2, 제3의 용산참사를 막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정부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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