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 주민들이 얘기하는 무분별 재개발 실태

용산참사 보상금 문제가 타결됐다고 하지만, 재개발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원주민들의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제2의 용산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정부를 비롯 재개발지역 관련부서들의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방식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위클리서울>은 재개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입을 통해 재개발이 한창인 경기도 시흥시 장현지구, 서울 왕십리, 불광동 등의 사정을 들어보았다.




“목돈 없는 대다수 세입자 빚더미에”

“재개발이 되면 헌집을 새 아파트로 바꿔준다고들 한다. 이런 장밋빛 희망에 젖어있는 사이 재개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얼마나 돈이 들고 어떤 결과를 낳을지 가늠할 겨를이 없다. 실제 서울시는 임대주택, 주거이전비 등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이주대책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 이게 뉴타운 재개발의 현실이다. 한편에서는 전문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조합을 꾸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공업체 등은 물론 전문 브로커들이 나타나 조합을 흔들고 있다.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온갖 횡포와 협박, 그들에게 유리한 감정평가로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장현지구 택지개발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박철희 씨는 감정 평가의 문제점과 관련 "현재 거래되는 시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주변 지역의 지가를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정평가된 돈을 받아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원래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 탓에 집을 소유한 가옥주도 전세 세입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한 집이 이사를 하면 기다렸다는 듯 유리창을 깨고, 문짝을 뜯어내고, 돈이 되는 고물을 거둬 가느라 온 동네가 시끄럽다”며 “아침 7시가 되기 전부터 공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편안히 쉬어야 할 집에서 옆집을 부수는 소음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 됐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철거업체가 작정하고 하는 집 부수는 소리에 놀란 어린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왕십리 뉴타운 1구역 세입자대책위원장 이은정 씨는 "부모의 직장이나 자녀들의 학교 등 생활권 가까이에서 살려고 뉴타운ㆍ재개발지역 원주민이 치르는 대가는 엄청나다"며 "당장 목돈이 없는 대다수 세입자가 전세에서 월세 세입자로 전환 됐고, 그렇지 않은 경우 상당액을 빚진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성토했다.

이 씨는 "왕십리뿐 아니라 대다수 뉴타운 지역의 사정이 비슷하다“며 ”이전에 3000~4000만원 정도 하던 전셋집이 지금은 1억원 넘게 줘도 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세입자들과 사정은 비슷하다. 이 씨는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뉴타운 덕분에 대박이 났으니 한 턱 내라고 한다”며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르니 작은 평수를 가지고 있던 이웃들은 앞을 다퉈 투기세력에게 집을 팔고 이사를 갔다”고 밝혔다.

왕십리뉴타운 지역에 사는 가옥주 정진영 씨는 “세입자를 몰아내는 방법으로 조합은 용역 깡패를 활용했다”며 “무이자 이주비 대출업자와 용역 깡패가 비슷한 시기에 출몰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낮에 동네에 어슬렁거리는 용역 깡패들이 늘어나자 하루에도 몇 대씩 이삿짐 차가 줄지어 나갔다”며 “동네 주민들의 이주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밝혔다.

정 씨는 “서둘러 이사하지 않으면 이사 갈 집을 구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연일 보도되는 전세대란 뉴스는 주민들의 이사를 더욱 부추겼다”고 성토했다.



쉬쉬 하는 권력층과 지식층

정 씨는 재개발 문제 대책과 관련해 몇 가지를 제안했다. 그는 “우선 서면제도 결의서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씨는 “지금처럼 서면결의서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한 뉴타운 문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며 “조합설립 동의서 및 서면결의서 조작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게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하고, 나아가 서면결의서의 비중을 절반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씨는 이어 “지역에 기반을 둔 시민단체, 종교단체, 정당 관계자들에게 제발 부탁 드린다”며 “세입자, 상공인, 영세 가옥주인 원주민들이 철거민이 되기 전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나눠주고, 주민들의 교육을 맡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또 “건설사나 정비업체는 돈을 벌기 위해 용역 깡패를 고용하는 무리들”이라며 “서민이 기댈 방법은 법과 공권력 밖에 없다. 공무원들은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국민을 위해 사용해 달라”고 성토했다. 정 씨는 “현재 가장 급한 곳이 왕십리”라며 “용산 다음은 왕십리”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일부지역의 경우 조합도 조합원들과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있다. 불광 4구역 조합장 강혜성 씨는 “재개발을 하더라도 원주민들이 현재 살고 있는 주거 면적과 같은 새 생활공간을 받을 수 없다거나, 재개발에 추가 부담금이 들어간다면 경제상의 이유로 재개발을 찬성할 주민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로, 상하수도, 공원, 공용주차장, 하천, 광장 등의 정비기반시설 부담금과 세입자 주거이전비, 임대주택건립과 학교건립 등은 조합원들의 몫”이라며 “따라서 세입자 대책은 근본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이기 때문에 조합이나 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닐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세입자 문제가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그 기본적인 원칙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발제도개혁전국행동 강사근 대표는 “정부와 관료, 그리고 지식인 계층들은 재개발 문제의 폐해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진실을 언급하기 꺼려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용산참사도 사실 삼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며 “이런 과정에서 삼성 눈치 보는 권력층들이 있는가 하면, 대학 교수와 같은 지식인층은 이 연구비 지원 등에서 누락되거나 학교로부터 곱지 않는 시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쉬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가올 지방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후보자에게 공약을 제안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들이 적극 나서야 재개발 문제의 해결에 어느 정도 진전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용산참사 해결은 표 의식한 정치 행보”

지난 19일에는 ‘용산참사 1년’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우리 사회 재개발 사업의 문제와 대안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충돌을 극복할 방안으로 ‘공적 개입과 조정’을 요구했다. 조명현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업기획팀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며 “정비업체-설계업체-조합 설립인가-시공사 선정 등 재개발 과정을 공공기관이 지도·관리하는 공공관리자 제도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영우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상임이사는 “용산참사가 극적으로 해결됐지만, 이는 올해 지방자치선거에서 표를 의식한 정치 행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대다수”라며 “재개발정책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김남근 변호사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표를 의식한 무분별한 개발공략이 난무할까 염려된다”며 “‘묻지마식’ 개발공략을 남발하는 후보는 공약 실천 결과를 분석해서 국민에게 알리는 방법을 추진하겠다”고 얘기했다.

참여연대 김남근 민생희망본부장은 “재개발, 뉴타운사업이 시행되는 지역의 상가세입자들 요구 사항 가운데 하나가 종전과 같은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임시 이주상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며 “서울시 등 공공의 주도로 이주상가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발생 원인에 대해 경제위원회 권정순 대표는 “용산참사는 정부가 상가 임차인들의 권리금보호와 이주대책을 마련해주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 대표는 이어 “현재 서울과 경기·인천 지역 재래시장에 뉴타운 지구를 재개발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어 재개발 정책이 개선되지 않으면 용산참사를 능가하는 상가임차인의 대규모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뉴타운 사업과 관련 "국지적인 대체 주거의 공급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광역적으로 역세권 복합지구나 보금자리주택과 같이 소형이면서 저렴한 주택의 공급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사업과 시기적으로 연계된 뉴타운사업 진행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그는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주거환경개선보다 성장을 우선시하는 정부 정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개발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형평행정 ▲세입자들을 위한 복지행정 ▲철거 시 폭력을 지양하는 인권행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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