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철희의 자연에 살어리랏다> 미선나무 이야기

춘변산(春邊山), 추내장(秋內藏)이라는 말이 있다. 봄 색은 변산이, 가을 색은 역시 단풍으로 붉게 물든 내장산이 좋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산의 봄을 그리 곱게 칠하는 것일까. 아마도 미선나무가 있어서일 것이다. 미선나무는 개나리보다도 먼저 꽃을 피워 일찌감치 변산의 봄을 알리는 봄 전령이다.

미선나무는 일반사람들에게는 낯선 나무일지 모르나 식물학자들에게는 각별한 사랑을 받는 나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에만, 그것도 충북의 괴산과 영동, 전북 부안에만 자생하는 세계 1속 1종의 귀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1963년과, 1968년, 1980년에는 우표로도 발행되어 우표수집가들 사이에서도 귀여움을 톡톡히 받는 나무다.

미선나무가 속해있는 물푸레나무과(科)에는 이팝나무속, 수수꽃다리속, 개나리속, 쥐똥나무속, 목서속 등 여러 속(屬)이 속해있고, 여러 속마다는 여러 형제들을 거느린 비교적 자손이 많은 대종가이다.

그러나 미선나무속에는 미선나무가 유일하다. 참으로 외롭고 쓸쓸한 집안이다. 거기에다 여느 식물들처럼 영역 확장도 못한 채 분포 지역마저 한반도 중남부 일부 지역으로 극히 제한적이어서 멸종 위험이 큰 식물이다.

미선나무가 이처럼 귀하고, 멸종 위험이 큰 식물이다 보니 자생지 전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충북 괴산군의 송덕리 자생지(제147호, 1962. 12. 3), 괴산군 추점리 자생지(제220호, 1970. 1. 6), 괴산군 율지리 자생지(제221호, 1970. 1. 6), 영동의 천리 자생지(제364호, 1990. 8. 2)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좀 늦게 자생지가 발견된 부안의 미선나무도 1990년 10월 21일 천연기념물 제370호로 지정되었다.

충북 진천의 초평리에도 일찍이 미선나무 자생지가 발견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몰지각한 사람들이 몰래 캐가는 바람에 자생지가 완전히 파괴되자 결국 지정해제 되었다.

낙엽성관목인 미선나무는 다 자라봐야 1∼1.5m 정도로 키 작은 나무다. 전체적으로 개나리와 비슷하나, 개나리보다 보름정도 먼저 꽃이 핀다는 점, 꽃의 크기도 개나리보다 작으며, 색깔은 흰색 또는 엷은 분홍색을 띤다는 점, 그리고 미선나무는 그윽한 향기를 뿜어낸다는 점이 개나리와는 분명히 다른 가문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지름 3cm 정도 되는 미선나무 열매는 특이하게도 왕실에서 쓰던 미선(尾扇) 모양으로 생겼다. 이런 이유로 미선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미선이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둥글게 펴고 실로 엮은 뒤 종이로 앞뒤를 바른 자루가 긴 둥그스름한 모양의 부채를 말하는 것으로 왕실에서 잔치나 의식에 사용되던 의장 도구의 하나이다. 사극 영화에서 임금을 가운데 두고 시녀들이 들고 서있는 부채가 바로 미선이다.



미선나무가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세계 유일의 나무라지만, 우리가 이 나무에 대해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미 국외에 반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미선나무가 처음 발견된 것은 일제 때인 1919년인데 유럽에는 1924년, 일본에는 1930년에 반출되어 값비싼 관상수로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식물자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전무 할 때 이들은 우리의 토종식물에 눈독을 들이고 이처럼 이들을 빼돌렸던 것이다.

미선나무 외에도 ‘미스킴라일락’으로 국적이 바뀐 북한산의 정향나무, 세계녹색혁명을 일으킨 ‘앉은뱅이밀’,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받고 있는 구상나무 등이 바로 국외에 빼돌려진 우리나라 식물자원들이다. 이들은 식물도 귀한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예견했던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고유종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이 요구된다. 세계 유일의 미선나무의 경우, 그러한 재인식의 요구는 더욱 절실해진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선나무를 우리나라 대표 나무로 키워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허철희 님은 자연생태활동가로 `부안21`과 `부안생태문화연구소`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