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진단 연속인터뷰> 배우 권해효-2

- 사회·정치적 문제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나.

▲ 여러 가지 기억들이 있다. 과거 민가협 어머니들이 양심수 석방을 위해 행사를 한 적이 있다. 김영삼 정권때 전교조 선생님들의 스승의 날 행사가 무산된 것들도 봐왔다. 이처럼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기억들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독서가 저를 좀 변화시킨 것 같다.

90년대 후반이 되어서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불안감이 생겼다. 우리의 학교, 우리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늘어갔다. 그래서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이르렀다.

작지만 참여하고 뜻을 모으고, 이렇게 해서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이익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반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그게 소위 말해 현실적인 일이더라.

저는 운동가도 아니고 대중적인 연기자다. 생활인이고 학부모다. 다만 대중의 권리로서 참여할 부분이 있으면 다수의 대중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인과 일반 대중들의 차이를 굳이 꼽으려면, 참여에 있어 각자 몫이 조금 다르다고 할까. 연단 밑에서 촛불 드는 사람들이 있으면 때론 위에서 마이크 잡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정도?

- 권 씨는 지난 6.2지방선거 기간 중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 당연히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한 표를 행사한 것이다. 곽노현 당선자가 곧 서울시교육감에 취임한다. 향후 교육감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순조롭게 이루어질지 내심 고민도 된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게 되고, 조직문화에 대해 어떤 확신이 있는지 노파심이 든다는 얘기다.

확실한 건 곽 당선자가 취임한 이후, 돈으로 ‘주고받고 사고파는 일’ 따위는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물론 교육감이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부패와 일선 교사의 어려움 등이 해소 될 수는 없으리라 본다.

어쨌든 진보성향의 당선자들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에게 빚진 게 많아 보인다. 다수의 정치세력이 ‘김상곤’이라는 의제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했고, 김 교육감은 외롭게 싸워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물꼬를 튼 것 같다. 서울, 경기도 교육감들에게 기대가 크다.

- 배우 김여진 씨는 얼마 전 조계사에서 열린 4대강 사업 반대 및 소신공양한 문수스님 추모 행사에 수차례 참여한 자리에서 “이번 참여로 인해 배우 생활에서 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개인적으로 피해를 본적은 없다고 여기는지.

▲ 문제는 무엇이냐. 문화예술인들이 그런 상황을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유독 현 정권 들어서만 그렇다. 저는 아직까지 피해를 본 적이 없다고 믿고 싶다.(웃음)



- 현 정부 들어 왜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 정권을 장악한 사람들의 마인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겠나. 시대와 동떨어진 듯한 인상을 많이 받았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부터 4대강 사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각종 현안들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법치와 동떨어진 사태들이 많이 벌어졌다. 과거 경험에 없었던 폭압적인 부분들도 있었다. 마치 2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문화예술인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많은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방에 촬영 갈 일이 많아서 남한강 방향으로 자주 다닌다. 여주를 지나가다 보면,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불가능한 일들에 대해 가능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 참 어이가 없다. 모든 국민이 사교육을 받지 않고 모두가 원하는 대학을 갈수 있다? 모두가 원하는 대학? 그게 가능한가. 그건 아니잖나.

예를 들어 모든 청소년과 학생이 단순히 한 가지로 평가 받는 사회를 지양하겠다든지,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그 학교에 가서 만족할 수 있는 그런 학교를 만들어 보겠다든지… 뭐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하는 얘기들 보면 거짓말이 너무 보여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사교육을 안 받아도 서울대를 갈 수 있게 해주겠다라는 식의 말은, 이제 좀 하지 말아야지 않나.



- 자녀들 때문인지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는 부분에 기준을 맞춰 아이들 줄 세우고, 순서대로 정확하게 반영하는 게 그게 정말 경쟁력을 키우는 일일까. 아이들을 전부 ‘루저’로 만드는 일이지 이는 절대 경쟁력을 키우는 게 아니다.

최소한 정치권이 이런 부분을 억제해주고 교육이 잘 되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정부나 학교는 제 역할을 해오지 못했다. 더 나은 것을 가르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게 학교여야 하고 국가나 정부여야 하는데, 이와는 반대의 현상들이 지속되도록 계속 부추겼던 게 학교고 국가였다. 자성해야 한다.

- 얼마 전이 ‘6.15 공동선언’ 10주년이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이지만, 6.15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풀어본다면.

▲ 2004년부터 진행해 왔던 민간교류사업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게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권해효 씨는 이 사업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이었다. 하루 1만 여개의 빵이 만들어져서 북한 아이들 점심 식단에 올랐었다.

그런데 한 동안 모든 게 중단됐었다. 최소한 남북관계 경색이라고 하더라도, 유아·어린이 관련해서는 시각을 달리해야 하지 않았나. 대외적으로는 아이들만은 포용하겠다고 말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이어서 크게 문제시 되진 않았지만 상황은 이렇듯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최근 들어 다시 재개해 논란이 될 여지는 사라졌지만 굶고 있는 아이들을 정치 문제와 연관시켰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지난 6년 동안의 이 사업을 하면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현 정부 들어 사업이 잠시 중단됐었다. 언제 또 중단시킬지 누가 알겠는가. 아직도 답답한 심정이다.

- 최근 한상렬 목사의 방북이 논란이 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천안함, 선거, 월드컵으로 이어지면서 정말 중요한 6.15에 대한 관심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런 시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10년 전 남북한이 지향했던 화해와 평화를 환기시키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 배우는 사회참여의 뜻을 작품을 통해 연기로 표현해 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배역을 통해서는 아닌 것 같다. 배역에 있어 스스로 결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작가나 연출가 영역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고를 수 있지만, 배우들은 선택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사회참여적인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해서 출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애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 캐스팅되는 특별한 케이스가 있지만, 극히 드물다.

- 사회적 의미에서 배우란 무엇인가.

▲ “혁명이 멈추면 예술이 앞장선다.” 백기완 선생의 말씀이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일상인이고 생활인이지만, 배우란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직업이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현안들에 대해 일반인들보다는 보다 정확하게 묘사하고 깊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백기완 선생의 말씀이 새겨들어야 할, 정말 급박한 시기가 오면 그 큰 뜻을 새겨들어야 하지 않겠나.

- 혼탁한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우리사회는 가장 계급적인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계급사회가 아닌 척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조금이나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이익, 나의 이익에 준하는 사람들을 뽑을 수 있고 행복해 할 수 있다.

이 자본주의는 통제하지 않는 한 한 번도 제대로 간 적이 없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자본과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가치를 구현해냈으면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문화예술인들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웃음)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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