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이야기 두 개

이야기 하나: 취미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유치원 선생님이던 큰 이모께서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해 주신 이후로 그림 그리는 것이 가장 즐거운 놀이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재능이 있어서 재능이 있다고 해주셨는지, 아니면 그냥 어린 아이 기분을 맞춰주신 건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모의 그 말이 없었다면 아마 내 취미생활은 다른 것이 자리를 꿰차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 때 학교 마스코트 그리기 공모에서 몇 번이나 상을 받고 난 후엔, 정말로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믿게 되었다. 어린아이답게 칭찬 받는 일이 너무나도 즐거웠다-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거운 건지 아니면 그로 인해 칭찬 받는 것이 즐거운 건진 몰라도, 계속 그리다 보니 정말로 그림 그리는 것이 소중한 취미가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이 소중한 취미라는 것이 꽤나 머리가 아팠다. 흰 종이만 있으면 참지를 못하고 뭔가 그려대는 통에 내 교과서나 노트, 연습장에는 필기보다 낙서가 더 많을 때가 많았고 만화부에 들어가면서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림 그리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엄마는 이런 내가 탐탁지 않으셨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첫 시험은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만큼 어이가 없는 성적이었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초등학교때 나는 아예 시험의 개념이 없어서 줄곧 ‘기도’로 시험공부를 대신하곤 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조상님! 내일 시험인데 잘 치게 해주세요!’ 시험공부를 못해 후회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다. 그야말로 시험공부 ‘대신’인 기도였다. 어떤 때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교에 갔는데-심지어 조금 늦었다- 책상 배열이 이상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오늘 시험이잖아”라는 대답을 들었던 적도 있다. 더 어이 없는 건 내가 당황하지도 않고, “아 정말? 몰랐네”하며 태연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는 점이다. 내게 시험이란 건 그냥 ‘신체검사’와 비슷한 행사였다. 이런 상태로 중학생이 되고 나니, 뭔가 착한 말, 들어본 것 같은 말을 요령껏 찍으면 꽤나 높은 정답률을 보이던 초등학교 시험만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다가 피를 보고 만 것이다.
엄마는 성적에 크게 연연하는 분은 아니시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매를 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다만, 내 태도를 고쳐 주셔야 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중학교 첫 시험에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으니, 아이가 혹 적응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레 책이나 노트 등을 살펴보니 온통 낙서투성이에, 제 방에서 조금 조용하기에 공부를 하나 하고 들여다보면 만화부 과제 같은 것을 그리고 있으니. 성적이 떨어진 게 적응 문제라기보다는 정말 하나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시고는, 당신의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그림은 그만 그리고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쓴 소리를 하셨다. “또 만화나 그리고, 공부는 대체 언제 할래?” 내게 그 말은 잔소리였지만, 그래도 역시 첫 시험의 성적은 나 역시 큰 충격이었던 터라 그림 그리는 시간을 좀 줄이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1학년 2학기부터는 성적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해서 동아리도 들고, 공부시간이 늘고 그림 그리는 시간이 줄었다고 해도 꽤 많은 시간을 그림 그리는 데에 사용하고 있었다. 학원 하나 다니지 않았던 나는 남아도는 시간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수업시간과 공부할 때만큼만 낙서하는 것을 참아 내는 것이 힘들었을 뿐, 그래도 내 중학교 시절은 마음껏 취미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때였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란 건 쉬는 시간에 친구와 필담할 때정도 뿐이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내 취미생활은 봉인 되어야만 했다. 특히 마지막 고3때는 그나마 하던 낙서할 시간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그림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었고, 엄마는 그림 좀 그만 그리라고 잔소리를 하시고, 고등학교 때는 스스로도 지금이 그림이나 그릴 때냐 하며 공부하기 바빴으니 내 취미 활동이라는 것이 당장 즐겁긴 하지만 길게 보면 항상 문제인, ‘성적 하락 요인’인 것이었다. 마치 당장은 입에 즐거운 패스트푸드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내 취미는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천대를 받았다.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도, 어쩐지 한번 정착된 생각은 잘 바뀌지 않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마치 시간을 낭비하는 일처럼 여겨졌다. 차라리 텔레비전을 보고 의미 없는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이 가책이 덜 했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림 그리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간간히 단체 티셔츠의 디자인을 맡는다든지 하는 일 아니면 시험 공부할 때 연습장 귀퉁이에 그리는 낙서 정도가 전부였다. 뭐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했냐면, 그건 아니었다. 내 성적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도 이제 ‘고학번’딱지가 붙을 때쯤 문득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졌다. 사실 그림 그리는 것은 건전한 취미고, 이게 그렇게 시간낭비는 아니지 않을까, 술 마시고 영양가 없는 잡담을 하거나 멍하게 포털사이트나 뒤적거리는 것 보다 훨씬 생산 적인일 아닌가.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난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지만, 그저 손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 낭비라는 가책을 벗고 나니, 아주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것이 그저 즐거웠던 때의 느낌처럼 아이같이 설렜다.
놀랍게도, 그림을 그리고 또 다른 취미활동을 찾아 거기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이런 것들이 생활에 활력을 주면서 ‘공부할 수 있는’ 힘도 생긴 것 같다. 머리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전에는 힘들기만 했던 시험공부도 거뜬한 느낌이었다. 공부한 시간은 줄었지만, 공부한 양은 비등한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이 공부한 느낌이다. 아직도 그림을 그리거나, 인형을 만들거나, 칵테일을 배우고, 악기를 배우고 있노라면 친구들이 “넌 법대를 왜 갔냐?”며 놀리곤 한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공부에 방해만 되는 것들은 아닌 것 같다. 취미 생활은 스트레스를 없애고 또 삶의 이유를 느끼기에 가장 쉬운 방법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되, 또 그만큼 해야 할 일에도 화끈해지면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생산적인 느낌에 놀라게 될 거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참지 말자. 즐거운 인생이다.

이야기 둘: 타블렛

항상 비싼 물건만이 소중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이라면, 그 물건 자체의 가격을 떠나서 가치 있는 것일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생애 처음 내 노력으로 얻어낸 씨디 플레이어라든지, 영화, 전시회 티켓을 모아둔 스크랩북이라든지, 사실상 그닥 쓸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가진 이야기가 너무나도 소중해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낡은 타블렛도 그런 물건 중 하나이다. 나에겐 타블렛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낡디 낡은 구모델이고, 하나는 매끈한 까만 바디에 파란 불이 들어오는 버튼이 세련된 최신모델이다. 타블렛을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타블렛이란 쉽게 말해서 펜형태로 된 마우스 정도로, 펜과 패드로 이루어진 장치다. 컴퓨터로 그림을 그릴 때는 이 도구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우스만으로 딸각대며 그린, 마치 왼손으로 그린 듯한 그림은 모양도 실망스러울뿐더러 그리는 데에 굉장한 집중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그림 하나 그리고는 지쳐버리고 만다.




내 낡은 타블렛은 중학교 때부터 나와 쭉 함께하던 녀석이다. 그림에 취미를 가지고 포토샵이니 오픈캔버스니 하나씩 배워갈 때, 타블렛은 내게 손 안 닿는 꿈과도 같은 것이었다. 당시엔 타블렛이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을 때였고(물론 지금도 많이 보급된 것 같진 않지만) 너무나도 비싼 가격을 중학생인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째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은 것을 ‘이것 사주세요’ 하고 조르는 것은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탓에 내가 타블렛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일찍 체념하고 말았던 것 같다.
마우스로 어설프게나마 클릭을 연발해 만들어낸 작품들은 들인 시간에 비해 너무 초라했고,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마우스 커서에 화가 났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내 그림에  ‘와, 마우스로 이 정도라니 놀랍네요!’라는 코멘트만이 날 위로해 주었다.
마우스에도 어느덧 조금씩 익숙해지고, 갖가지 프로그램들을 다루는 요령도 어느 정도 생기고 나니 마우스로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웹상의 ‘고수’들이 만들어낸 일러스트에 다가가려면 마우스로는 어림도 없었다.
고민이 되었다. 내가 하는 이 ‘낙서’ 같은 것에 이 큰 돈을 버려도 되는 걸까? 그냥 갖고 싶다고 해서 다 가지려고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난 아마도 계속 그림을 그릴 거고, 비싸지만 지금 꼭 갖고 싶은 것이니 사도 괜찮지 않을까? 마치 내 수중에 그만한 돈이 있는 것 마냥 고민을 한참 했다. 그 후에 용돈을 아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 달 용돈도 또래 아이들보다 적었던 내가 용돈을 모아서 이렇게 비싼 물건을 사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어느 정도 돈을 모아 엄마에게 부탁하면 엄마도 아마 사 주실 거라는 생각이었다. 저금통에 이번 달 용돈을 몽땅 집어넣고는 자꾸 자꾸 흔들어 보았다. 그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기분이 마냥 좋았다. 벌써부터 타블렛이 생긴 것처럼 설레어했었다. 사실, 어릴 때는 교육상 큰돈을 용돈으로 주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판단 하에 내 용돈은 친구들이 놀랄 만큼 적었었다. 만원이 안 되는 돈을 한 달 용돈으로 받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은 보충해 주시는 것으로 많이는 부족하지 않게 배려해 주셨다. 이런 상태였으니 그 얼마 안 되는 돈을 몽땅 저금통에 넣은 그 달은 “용돈 아직 안 모자라지?”라는 엄마의 질문에도 기다 아니다 확실히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했었다. 
내 평상시 씀씀이로 생각했을 때 아직 용돈이 다 떨어질 때도 아닌데, 갑자기 우물쭈물 하는 것을 보신 엄마가 내 저금통의 존재를 눈치 채시곤, “뭐 갖고 싶은 것 있니?” 하고 물어오셨다. 어째서인지 나는 상당히 변명조로, “타블렛이라고, 아니 그게 있으면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막 만화가들도 이걸로 그림 그리고, 인터넷에서 사람들도 다 갖고 있고, 그리고 또…”하고 늘어놓았다. 얼마냐는 엄마의 물음에 주저하며 가격을 이야기 했다. ‘그건 너무 비싸잖아, 안돼!’ 하고 말씀하실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 했었다. 내가 돈을 좀 모으고 난 뒤에 당당하게 “내가 절반을 모았으니, 엄마가 절반만 보태주시면 안 돼요?”하고 묻고 싶었는데….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그게 갖고 싶어?”였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엄만 웃으면서 그럼 알아봐, 하셨다. 아마 어떻게든 스스로 사보려고 했던 것(사실은 절반뿐이었지만)이 꽤 기특해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내 것이 된 꿈의 타블렛은, 동아리에서 팬시를 만들어 팔 때도, 얼굴도 모르는 웹상 사람들과 오픈캔버스로 그림을 그릴 때도, PPT자료를 만들 때도, 처음으로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을 때도, 대학교에 와서는 포스터와 단체티를 디자인 할 때도 쭉 함께였다. 손때로 꼬질꼬질해진 내 낡은 타블렛을 보고, 생일 선물로 새 타블렛을 받았지만, 새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낡은 타블렛으로 작업을 했다. 몇 년을 손에 익은 덕에 새 것보다 더 편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지금 쓰고 있는 새 타블렛으로 갈아탔을 때에도, 도저히 옛날 타블렛을 남을 주거나 할 수가 없어서 서랍 속에 모셔놓기만 했다. 사용하지 않아도 내겐 정말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웹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 ‘타블렛’을 사야하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 중학교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타블렛이 생기면 정말 소중히 생각해줄 것이었다. 문득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옛날 타블렛이 생각났다. 내 소중한 물건이지만, 이렇게 서랍 속에서 빛도 못보고 있는 것 보다는 다른 사람이 유용하게 사용해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 사람이라면 내 낡은 타블렛을 ‘낡은 구식 타블렛’이라고만 생각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 사람에게, “정말로 낡은 타블렛이라 사실 누굴 주기에도 민망할 정도이지만 성능에는 이상이 없으니 혹시 갖고 싶으시면 보내 드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새 주인을 찾아간 내 타블렛. 타블렛의 작은 흠집 하나하나까지 다 추억으로 얽힌 타블렛과의 작별이 조금 쓸쓸하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 또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하니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부디 아껴주셨으면 좋겠다. 새로운 주인 만나서 잘 지내렴! 그럼 안녕!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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